뭉칫돈 다시 몰리는 회사채 시장, 투기등급도 없어서 못산다
입력 2018.04.27 07:00|수정 2018.04.30 10:13
    LG화학·SKT·KT 등 우량 기업
    사상 최대 규모 회사채 발행 성공
    부동산 규제로 묶인 자금 몰려와
    고금리 수익 좇는 투자자도 증가
    • 회사채 시장에 자금이 쏠리면서 주요 기업들이 불패(不敗)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리 상승기 속에서도 회사의 신용등급이나 업황과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강화된 부동산 대출 규제로 고금리를 좇는 자금이 회사채 시장으로 흘러 온 것으로 보인다. 우수한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한 회사 뿐 아니라 투기등급의 기업까지 러브콜을 받자 회사채 시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LG화학은 올해 초 1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수요예측을 통해 들어온 청약금만 무려 2조2000억원에 이른다. LG화학이 지난해 세운 사상 최대 청약금 1조7700억원의 기록도 다시 깨졌다.

      LG화학뿐 아니라 현대제철과 KT, SK텔레콤도 수요예측에서 1조원이 넘는 청약금이 모이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들 3사의 희망모집액은 3000억원 수준이지만 투심을 확인한 후 증액 발행했다.

      금리 상승기를 앞두고도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해 기업들의 만족도도 높다. 우량 기업들은 개별 민평 금리보다 3~10bp(1bp=0.01%포인트) 낮은 발행 금리로 확정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시장 분위기에 비해 올해는 양호한 분위기"라며 "하반기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던 한 기업들도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규모 뭉칫돈은 우량 회사에만 흘러간 것이 아니다. 투기 등급을 보유한 기업들에도 자금이 몰리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달 1200억원 규모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한 대한항공은 목표액보다 4배가 넘는 물량이 들어왔다. 대한항공은 2400억원으로 발행 규모를 수정했다. AJ네트웍스와 ㈜한진 역시 희망 모집액의 2배에 이르는 청약금이 들어와 증액 발행을 결정했다.

    • 회사채 시장의 '상고하저(上高下低)' 기조는 매년 반복됐지만 올해 투기등급 회사채까지 흥행하는 기현상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채권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가 공모 회사채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었다는 게 중론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와 가계부채 축소를 목적으로 정부가 부동산 대출을 억제하자 자금을 소진하지 못한 자금이 손쉽게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채 시장으로 투자처를 옮겼다는 것이다.

      한 채권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으로 흘러가야 할 자금이 갈 곳을 잃자 기관들은 고정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로 투자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며 "단위 농협, 수협을 비롯한 리테일 기반의 제 2금융권의 참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투기등급을 보유한 회사가 흥행하는 이유도 고금리 수익을 좇는 투자자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건설업을 담당한 한 애널리스트는 "사모시장에서 건설사의 회사채 뿐 아니라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STB)도 수요가 높다"며 "금리가 높은 반면 상환 일정이 짧아 업황과는 무관하게 흥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상반기 수요에 힘 입어 투기등급 회사채 발행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BBB+)도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BBB+이라는 낮은 신용도에도 최근 사모 전환사채(CB)가 리테일에서 대부분 소화된 점을 미뤄봤을 때 공모 회사채 발행도 리테일 수요를 기반으로 무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