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규제, 총수 지분 20% 불허, 19% 허용…실효성 '의문
입력 2018.11.22 07:00|수정 2018.11.23 09:47
    사익 편취한 내부 거래 막기 위해
    박근혜 정부 때부터 도입된 제도

    개정안 통과되면 규제기업 607개
    총수 일가 지분 축소로 '편법'해결

    '상당히' '부당한' 등 애매한 표현
    규제 자체 힘 잃을 수 있다 지적
    • 재계를 다시 달굴 이슈 중 하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다. 국회가 정상화되면 강화된 규제를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상법 개정안과 함께 논의된다.  '공정경제'와 '경제살리기'를 내세울 여야간 충돌이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총수 일가들이 지분을 팔아야 할 회사가 어마무지하게 늘어난다.

      원래 이 제도는 박근혜 정부가 마련했다.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집권 첫 해인 2013년에 공정거래법에 손을 댔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정부입법'으로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정확히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를 추진했다. 그해 7월 법이 통과됐고 이때 근거법령인 공정거래법 '23조의 2 항목이 신설됐다.

      이어 2014년부터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기업집단(현재 '공시대상기업집단'), 재계 60위권 이내 그룹 가운데 총수일가가 지분을 30%(상장사 기준ㆍ비상장사는 20%)이상 보유한 회사는 규제 대상이 됐다. 이런 회사가 그룹에서 받은 일감 물량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또는 전체 매출의 12%를 넘기면 규제가 가해진다.

      초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가 예고됐다.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없애고, 기업총수와 일가를 형사처벌까지 가하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각 계에서 위헌논란과 과잉입법 비판이 쏟아지며 한발 양보한 것이 지금 제도다.

      일단 도입되긴 했지만 비판이 적지 않았다. '상당히', '부당한' 등의 애매모호하고 법적 처벌근거로 쓰기 어려운 대목들로 법령을 구성했다는 점이 자주 문제시 됐다. 입법 과정에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법안심사소위를 열면서 당시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현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불렀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김상조 교수도 "(총수일가) 지분율을 요건으로 해 단지 (일감몰아주기에) 관여했다고 추정해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부당한 내부거래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지, 총수 일가 지분 처분이 핵심이 아니다"란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도 그랬고, 김상조 위원장이 수장이 된 지금의 공정위도 마찬가지다.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내면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공정위 간부들은 "총수일가가 지분을 팔라는 얘기가 아니며, 거래행태만 개선하면 된다"라고 다시 언급했다.

      하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런 정부 시각이 '탁상공론'으로 다가온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보면 재계가 느끼는 답답함이 쉽게 이해된다.

      역시 박근혜 정부 마지막 공정위원장인 정재찬 위원장 시절인 2016년말. 공정위는 '사익편취 금지 규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도 어떻게 적용되는 것이냐 문의가 많다보니 낸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법령에는 계열사간 내부거래라고 전부 금지되는 것이 아니며, 효율성ㆍ보안성ㆍ긴급성이 요구되는 거래는 예외가 있다고 설명돼 있다.(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8조 별표4)

      그러나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내부거래가 '부당한지 않은 거래'라는 점을 기업이 직접 증명하라고 했다.

      또 예외적용을 받기도 쉽지 않다. 일례로 경쟁입찰을 거쳐서 계열사를 선정했다면 괜찮을까? 공정위는 그것만으로 부당거래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외형상 경쟁입찰을 거쳐도 실질적으로 낙찰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제품 출시시기에 맞춰 급하게 광고기획사를 선정해야 하는데, 계열 광고사는 이미 검증됐으니까 선정했다면? 그것도 부당거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업무 능력이 검증된 외부 광고회사와 거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긴급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가 인정한 '긴급한 사안'은 '경기급변ㆍ금융위기ㆍ천재지변ㆍ해킹' 등에 국한된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 정보보안이 중요해서 계열 광고사를 쓴다면? 그것도 위법한 내부거래가 될 수 있다. "외부 광고사와 거래하더라도 비밀유지 계약서만 쓰면 되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매번 이런 식이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모든 내부거래를 일일이 증빙하기 어려우니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총수 지분을 줄이는 일이 된다. 2014년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현대차ㆍSK등 다수의 그룹들이 총수일가 지분을 사모펀드에, 혹은 계열사에 매각했다.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규제대상이 되는 기업이 231개에서 607개로 늘어난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법도 통과되기전에 지분 매각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총수일가에게 이익을 몰아주지 말아라"라는 의도에서 시작된 규제가 "총수일가 지분을 줄여라"라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때부터 발생하는 문제는 규제의 실효성이다.

      사실 그간 국내 기업들이 총수일가 이익을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자행한 사례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산관련 서비스, 식자재 서비스 등이 대표적인 경우로 꼽힌데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제도의 논리대로면 총수일가 지분 20%인 회사는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19.999%인 회사는 제재를 피하게 된다. 동일한 내부거래가 있더라도 그 거래가 부당한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지분율 0.001% 차이로 '위법'과 '불법'의 차이가 만들어진다.

      이는 2014년 처음 제도가 마련될 때는 물론, 이번 개정안에서도 재계와 시민단체들이 동시에 비판했던 부분이다. 규제의 의도와 목적이 시행과정에서 희석된다는 의미다.

      제도가 오히려 힘을 잃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른바 '도덕' 이나 '윤리'에서 다뤄질만한 '부당한' 등의 애매모호한 표현이 엄정한 집행이 필요한 '법령'에 실리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지금은 '법'이 아닌, '시행령' 별표에 실려있는 '부당한 이익'이란 표현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아예 별도의 법조항으로 포함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9월 열린 개정안 관련 공청회에서 이런 애매모호한 표현이 규제의 근거로 법령에 담기면 자칫 규제 자체가 힘을 잃을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일감몰아주기 사례를 예로 들었다.

      작년 11월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계열사(싸이버스카이ㆍ유니컨버스)에 대해 내부거래를 통해 조양호 회장 등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과징금 14억30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이 사례가 부당한 이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거래규모나 귀속되는 이익규모가 '부당한 이익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라고 결론 내린 것.

      박 교수는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사익편취를 위한 공정거래법 조항이 사문화될 수 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더 원천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지분 매각을 유도, 총수 일가에게 돌아갈 이른바 '부당한' 이익이 줄어들면 그만인가"라는 점이다.

      총수일가들은 규제 회피를 위해 지분을 사모펀드(PEF), 특히 해외 사모펀드에 파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대차그룹만 해도 광고기획사 이노션 지분의 인수자로 KKR을 선택했다.

      제도의 논리대로면 계열사 내부거래에서 발생한 이익은 '부당한 이익'이다. 그리고 이런 이익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현대차 오너 일가가 독식하던 부당이익이 KKR, 정확히는 KKR에 돈을 댄 해외 연기금들에게 나눠지는 결과만 나온다.

      기업공개(IPO)로 지분이 분산된다고 해도 마찬가지. 총수일가가 독식하던 부당이익이, 이 회사에 돈을 댄 주주들에게 나눠지는 결과만 나온다. 그러면 이 제도가 규정하는 '부당이익'은 여전히 존재해도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해외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한다. 미국 회사법(State Corporate Law)등에서는 '회사기회 유용행위'(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로 이를 정의하고 규제한다. 즉 회사가 누려할 이익이나 사업기회를 임원 등이 가로챘다고 판명되면 발견된 재산은 전부 회사로 반환시켜 버린다.

      국내에도 근거 조항이 있다. 상법 제397조2(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금지)에서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 이익과 사업기회를 본인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면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일감 몰아주기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로 추가 신고하도록 유도된다.

      다만 기존 제도에 대해서는 불신이 강한 분위기다. 공정위는 현재 사외이사 등의 감시체계가 내부거래와 일감몰아주기를 막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들이 새 규제를 정당화는 논리로 쓰인다.

      정작 기존 근거조항으로 위법거래ㆍ부당거래 자체를 금지시키는 움직임은 찾기 어렵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채이배 위원은 일감몰아주기 상속증여세 신고가 있었지만 공정위는 관련 위법사실을 1건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상당수 내용은 올 3월부터 구성된,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 및 민간 전문가 등 총23인이 참여한 '특별위원회'가 마련했다. 공정위가 이를 수용해 개정안에 반영하기로 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