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투자 고심 깊어진 국민연금…"인재 떠나고 목표는 더 높아지고"
입력 2019.01.25 07:00|수정 2019.01.24 18:35
    주식‧채권 수익률 '뚝'…전체 수익률도 첫 마이너스
    대체투자 8%대 수익률, 투자비중 15% 확대키로
    인력 이탈은 심화, 외부 인력수혈은 無
    대체투자, 규모 늘고 사람 줄고 '이중고'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대체투자 의존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자산만으론 목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다. 대체투자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과 함께 투자규모와 수익률 목표치도 늘었다.

      하지만 정작 이를 감당할 사람이 없다. 투자에 나설 전문가의 외부수혈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내부 인력 이탈은 심해졌다. 글로벌 경기가 하향국면으로 접어들어 '글로벌 대체투자 위기론'까지 확산하면서 국민연금 대체투자 확대 기조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대체투자 분야의 적극적인 투자확대 기조를 밝힌 국민연금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국민연금은 올해 전체 투자자산 중 대체투자의 비중을 지난해 대비 1.3%포인트 이상 늘릴 계획이다. 향후 5년간 대체투자의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현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채권부문 투자비중을 40%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체투자의 확대는 저조한 수익률 때문이다. 지난해 기금운용본부의 국내주식 투자 수익률은 -16.6%(10월말 기준)로, 시장 수익률(벤치마크; BM)에도 못 미쳤다. 해외주식 수익률도 1.6%에 그치며 벤치마크를 하회했다. 국내외 채권 부문에서 3~4%대의 수익을 거뒀지만, 전체 수익률은 설립 이래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나마 믿을만한 자산은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10%가량을 차지하는 대체투자부문이었다. 대체투자 부문은 작년 약 7.6%, 지난  5년간 연평균 8.8%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투자자산 중 가장 높은 수익율을 보였다. 국민연금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에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투자 성과였다.

    • 수익률 제고가 제1의 목표가 된 국민연금의 선택지는 결국 '대체투자' 확대였다. 이를 위해 대체투자 조직을 투자 자산별(사모투자실‧부동산투자실‧인프라투자실)로 세분화했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도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대체투자부문 확대를, 특히 국민연금의 해외 직접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기금운용본부가 대체투자 조직을 재편한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문제는 인력이다.

      전체 6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전문 인력의 이탈은 이미 화제가 됐다. 지난 5년간 대체투자 부문(기존 대체투자실‧해외대체실)의 인력 중 40여명(약 20%)이 자리를 떠났다. 지난해에만 8명의 전문 인력이 그만뒀고, 현재는 3개의 대체투자 관련 부서에서 56명의 투자 인력이 근무 중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연말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인력을 충원한다는 계획이지만 성사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전주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터는 외부 전문가 영입은 어려워졌고, 투자자와 기업인들과 소통은 더 힘들어졌다.

      국내 주요 연기금 한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CIO(최고투자책임자) 자리가 공석이었고, 대체투자를 총괄할만한 책임자급 인사가 없었던 탓에 사실상 제대로 된 투자를 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더불어 대체투자부문에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하는데 현재의 인력 상황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위탁운용사에 전권을 주고 자율적인 투자를 유도하는 환경은 마련하지 못했다. 한 해 국민연금이 투자를 제안 받는 거래(Deal)만 수십~수백 건 이상인데, 현재의 인력으로 완벽한 투자 검토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초 국민연금의 프로젝트펀드 출자를 제안했던 한 금융기관은 연말이 다 지나도록 어떠한 피드백도 받지 못한 채 결국 포기하기도 했다.

      비단 국민연금의 내부 인력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감사와 국회의 지적으로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은 상당히 경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직된 출자 과정 속에서 사모펀드(PEF)를 비롯해 투자자들에 대한 수시출자는 활성화하지 못했다. 매년 콘테스트를 거쳐야만 출자가 가능한 상황 속에서 대체투자 부문의 확대 발표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는다. 국민연금의 관리 감독, 인사 등 전 분야에 걸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정치권의 요구사항과 지역 유력 인사들의 민원을 들어주기도 바쁜 실정이라는 씁쓸한 현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결국 대체투자 부문의 확대, 적극적인 투자의 전제에는 이사회 구성을 비롯한 독립성을 보다 강화하는 조직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경기가 하락세로 접어든다는 점은 변수다.

      이미 지난 수년간 국내 주요 기관들과 전세계 주요 투자자들은 대체투자 비중을 크게 늘려왔다. 부동산, 기업 직접 투자 등 대체투자 분야에 자금이 쏠리다 보니 자연스레 밸류에이션(가치)은 높아졌다. 가격은 올라가는데 글로벌 경제에 대한 위기감까지 확산하다 보니 국민연금의 과감한 대체투자 확대에 대한 불안함이 언급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연기금 한 관계자는 "이미 대체투자를 열심히 하던 기관들이 리스크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대체투자 리스크 단계를 위기 상황 단계까지 올린 곳도 있다"며 "대체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이 그간 못했던 투자를 지금 하겠다고 나섰다가 자칫 꼭지점을 잡게 되면 연금의 수익성 문제는 더 심각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