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대형항공기 시대...대응력 차이나는 양대 국적사, 경쟁 심화될 LCC
입력 2019.02.27 07:00|수정 2019.02.28 09:30
    항공업 트렌드 변화로 중소형기 선호도 증가
    항공기 투자에서 엿보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사업 역량
    대형항공사도 중소형기 선호하며 LCC와 경쟁 심화 전망
    • ‘하늘의 호텔’로 불린 에어버스 A380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에어버스는 최대 고객이었던 에미레이트항공마저 주문을 취소하자 2021년 인도를 마지막으로 A380의 생산을 중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호주 콴타스항공도 A380 항공기 8대 주문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 보잉의 B747 기종 역시 빠르면 2022년경에는 생산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항공기 시대의 막이 내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국내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A380은 4개의 엔진을 장착했고 5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여객기로 에어버스가 약 32조원을 투입한 야심작이었다. 2007년 전세계 항공사들이 앞다퉈 주문을 했지만 10년여가 지난 지금은 항공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A380 실패의 원인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항공 트렌드의 변화를 꼽는다.

    • 보잉과 에어버스는 항공업 트렌드를 정반대로 예측했다. 에어버스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가 향후 트렌드가 될 것으로 내다본 반면 보잉은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로 변화를 대비했다. 허브 앤드 스포크는 대형비행기로 많은 승객을 한 번에 허브공항으로 수송한 뒤 서브공항으로 환승하는 시스템이다. 포인트 투 포인트는 환승 없이 공항과 공항을 직접 연결한다. 항공업 트렌드 예측에 입각해 에어버스는 A380, 보잉은 B787을 경쟁적으로 동시 개발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보잉의 예측이 유효했다고 분석한다. 일례로 ‘공항 산업 연결성 보고서 2018’에 따르면 유럽의 메인공항이 10년간 36.5% 성장할 때 서브공항은 74% 성장했다.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2013년 18.7%에서 2014년 16.0%, 2015년 15.1%, 2016년 12.4%, 2017년 11.8%로 해마다 줄고 있다. 허브 공항에서 환승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공항끼리 연결이 많아진 것이 원인 중 하나다. 공항을 직접 연결하는 B747를 주력으로 하는 LCC가 등장하면서 허브앤드스포크 시스템 의존도는 하락했다.

      중형기인 B787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댈런 헐스트 보잉 총괄 디렉터는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한국의 LCC가 B737기종을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앞으로는 많은 LCC가 B787을 구입해 활용할 것”이라며 “기존 단거리노선 외에 신규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선에 투입 가능한 B787기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A380이 몰락한 이유는 더 있다. 기술 발전으로 장거리 운항에 엔진 2대로도 충분해지자 엔진 4대가 달린 대형기 수요가 감소했다. A380 개발이 시작되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유가가 2배 가량 상승하기도 했다.

      대형항공기 시대가 끝나가면서 대형항공사와 LCC에 미치는 영향에 시장의 관심이 주목된다.

      A380 도입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업 역량 격차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A380을 2011년에 들여온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해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항공업계 전문가들이 A380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3년간 A380을 들여왔다. 아시아나항공이 A380을 도입하던 2015년 대한항공은 창사 50주년으로 B737, A321NEO 총 100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두 항공기 모두 중소형기 규모로 비행 효율성이 높아 중거리 이상 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재무적 부담으로 투자결정을 뒤늦게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을 뒤쫓아 항공기 투자를 조급하게 진행하느라 A380에만 쏠린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시아나항공이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A380, A350 등 최첨단 신기종 도입을 통한 장거리 네트워크 항공사로의 변화를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기 위한 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7년부터 A350을 도입하면서 A380보단 효율적인 장거리 기재를 확충하고 있다.  A380 도입 결정이 늦어지면서 지속적으로 한 발 늦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트렌드 변화를 빨리 따라잡지 못해 대한항공과 사업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대형기 사이클(주기)은 일단락됐고 당분간은 중소형기 교체 주기가 돌아왔다"며 "대한항공이 중소형기 100대 주문한 것 중 일부는 기체 교체에 쓰이지만 전체적으로 중소형기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중단거리를 LCC에 뺏긴 것에 대한 대한항공의 방어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항공기의 종말이 LCC에 그리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포인트 투 포인트로 항공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이에 적합한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 LCC에 일견 유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항공업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앞으로 경쟁이 더욱 심화되면서 항공업 시장이 혼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형항공사와 LCC가 선호하는 항공기가 비슷해지면서 노선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LCC업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항공기 대신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B737은 취항거리가 제한적이고 그나마도 주변 공항의 슬롯(항공기 이착륙 허용 능력)이 거의 찼다. 최신 기종인 B737 MAX 8은 운항거리가 1000km 이상 늘어나면서 치열한 노선 경쟁에서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무적 부담 때문에 B737을 최신기종으로 바꾸기 어려운 LCC는 점점 더 순위가 밀려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항공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대형항공기 종말 시대에 노선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LCC보다는 상대적으로 대형항공사들이 대응하기 유리하다”면서도 “대형항공사에도 리스크가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항공은 최근 A380을 퇴출했는데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엔진과 기타 부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항공기 자체가 분해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380이 대형항공사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