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이동걸 '교수'의 차이
입력 2019.03.04 07:00|수정 2019.03.05 10:41
    동국대 교수 시절 보인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
    노조에 대한 훈계 급급…쏟아지는 의문들
    • "대출액이 수십조원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기업부실이라면 거액 대출을 해준 채권은행들이 모를 리 없고 몰라서도 안 된다...산업은행도 조선사에 대한 여신총액이 12조8천억원을 넘고 그중 대우조선해양 여신액도 6조5천억원에 달했다...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이런 거액의 여신을 제공한 조선사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상황을 전혀 모를 정도로 무능했나?...아니면 알고 숨겼던 것인가? 알았다면 왜 4월13일 총선 전까지 숨긴 걸까?"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기업부실, 몰랐나 숨겼나'] 한겨레 칼럼 (2016.06.05)

      "대우조선 부실은 중복으로 이중 계산이 된 것도 많고 중간에 회수된 부분들도 있다. 13조원이라는 말은 택도 없는 규모다. 여기저기 확인을 할 필요가 있어서 산은이 구체적인 규모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 대우조선 M&A는 현대중공업 주가가 오르느냐에 따라 산은이 투입한 자금을 전액 회수할 수도 있고 손실이 날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공적자금 회수 논란이 의미 없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기자간담회 (2019.02.26)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노조와 지역ㆍ시민단체의 반대, 글로벌 독과점심사 등의 변수를 맞이했다. '한국 조선산업의 운명'를 운운하는 판인데, 이 와중에도 기획재정부ㆍ산업자원부ㆍ해양수산부는 끝까지 입도 뻥긋 안한다. 한국 구조조정 역사상 이렇게 장관과 공무원들 입이 무거운 경우는 처음 봤다.

      역시 이번에도 이동걸 산은 회장이 총대를 멨다. 다급히 기자들을 불러다놓고 "대우조선 M&A가 잘못되면 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각오를 다지겠다는 의지는 이해되지만…사실 그가 산은 회장 직을 내려놓든지 말든지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하루 만에 회사 매각을 통보받고 이제 직장에서 짤릴지 걱정해야 하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이나 협력업체들을 불러다놓고 이 말을 했다면…"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요?"

      그렇다고 산은 회장 자리가 국민이 뽑은 선출직이거나,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국가 공무원도 아니다. 본인에게만 중요하다. "공명심이 센 사람일수록 실제로 맞든 틀리든 자기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 착각하길 좋아하고 자기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는 망상에 빠지기 쉽다" ('창조경제, 안에서나 잘하시지요' 이동걸 칼럼 2013.09.08)

      어쨌든 기자들을 다급히 불러다놓고(그것도 이번 사안에 비판적인 언론은 쏙 빼놓고) 한 첫 마디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대우조선 M&A와 관련해 거짓정보, 억지정보, 흑색선전이 많다"였다. 국회의원 선거철에나 나올 거친 언사였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대우조선해양 실적이 완전히 어려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정성립 사장 등이 이번 매각논의에 논의에 참여할 대상은 아니다" 정도가 내용의 전부다.

      매각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상실, 현대중공업 특혜시비를 정공법으로 반박하는 용기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우조선 노조나 지역이 걱정하는 구조조정에 대해 가타부타 답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레토릭(Rhetoric)만 나왔다.

      사실 산업은행 본사 어린이집에 계란까지 던진 대우조선 노조의 행보는 거칠었고 욕먹을만 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어떤 예고도 없이 "당신네 회사 경쟁사로 넘어가요"를 통보받은 이들이다. 마음의 준비도, 실질적인 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밥벌이를 잃을 위기에 처한 절박한 상황이다. 인수자인 현대중공업은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겠다"란 구체적인 플랜은 커녕, 이 사안에 대해 입도 뻥끗 안하고 있다. (그래야 조용해지면 슬슬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 수 있어서일터다). 기껏해야 금융위원장이 "아마 대우조선 구조조정 많이 할 필요는 없겠죠?"라는, 본인이 책임도 못질 추임새만 넣고 있다.

      이러니 오죽 답답하고 화가 날까.

      그렇다면 지금 산은 회장이 할 일은?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고용보장이 가능한 수준은 어디인가"를 현대중공업과 협상하고 공론화하는 일일까, 아니면 벼랑 끝에 몰린 노조와 지역사회에다 "반대를 위한 반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형식적인 대화"란 거친 언사로 훈계(?)를 하는 일일까.

      노조가 진솔한 대화를 할 생각이 있어야 지역을 방문하겠다고 했는데...사실 경쟁입찰도 생략하고 설 명절 연휴 이틀 전에 "다음달에 현대중공업에 회사 팔거에요"라고 선언하며 창구를 먼저 닫은 것은 산은이다. 더 냉정하고 비열하다는 민간기업이나 사모펀드 M&A도 이렇게는 안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노조가) 제시해야 협상이 가능하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테니 너희가 알아서 기업을 살리라는 자세는 안된다"라는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물론 회사 살리기에 노조와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양보할건 해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다. 하지만 그러니 노조가 무엇을 할지 먼저 제시하라고? 낙하산 인사와 방만한 관리로 무려 13조원을 날려먹고 대우조선을 저 모양으로 만든 책임이 대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잔뜩 펼친 뒤, 마무리는 "지금을 놓치면 20년뒤에나 기회가 찾아온다, 그때까지 산업은행 밑에 또 있을거냐.",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서 구조조정을 할지 말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라는 협박성(?)과 미래지향적(?) 설득 논리를 내놓았다.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지난 70~80년대의 암울하던 한국사회를 수놓았던 프레임이 엿보인다.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 '과거를 따지지 말고 미래를 먼저 생각하자'.

      사실 불가피한 희생이라면 희생을 최소화하고 희생의 대가가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따져묻고 사회적 합의도 마련해야 한다. 대우조선 매각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답은 "우리가 이미 연구 많이 해봤어요".

      "성공한 CEO라는 자부심에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것은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최면이기도 한 것 같다. 따라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성공한 CEO, 실패한 대통령' 이동걸 칼럼 2011.08.14)

      이동걸 회장은 2017년 9월 산업은행 수장이 되기전 약 10년간 '야인'(野人) 비슷한 시기를 보냈다.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5년ㆍ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5년이었다. 참여정부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ㆍ증선위원장ㆍ금융연구원장, 그리고 더 젊었던 DJ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이었던 화려한 이력들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10년간은 싹 단절됐다.

      이렇게 객원교수로 보낸 시기에 그는 5년간(2011~2016) 한겨레에 '이동걸 칼럼'이라는 타이틀로 기명칼럼을 냈다. 1달에 1회 정도로 약 80개의 칼럼이 실려있다.

      주된 제목들이 '대통령 당신부터 적폐입니다' , '박정희를 부활시키려는가', '박근혜식 정치ㆍ경제, 그 끝은?', '창조경제, 안에서나 잘하시지요', '비겁한 대통령의 궁색한 변명' , '박근혜, 잘못된 경제인식도 문제다' , '대한민국은 재벌사회주의 국가다' 등이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 대한 경제학자로서의 개탄과 탄식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이나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여러 속내를 담기도 했다.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산업은행 회장이 아니었던 당시 이동걸 교수는 구조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절절히 부르짖었다. "노동자ㆍ자영업자들의 몫을 가져가야 기업이 성장하는 정책, 중소기업 몫을 앗아가야 대기업이 성장하는 정책…이런 것이 착취형 성장정책이다.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여서 기업을 살찌우는 궁핍화 성장정책이다. 모두를 궁핍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그런 성장이 지속가능할까" ('착취형 성장정책의 파국적 종말' 2015.12.27) 

      재미있는 점은 '재벌사회주의'를 꾸짖던 그였지만 이번 대우조선 매각이 '특혜시비'를 극복하고 완료되면 정몽준 회장 소유 '재벌'인 현대중공업의 재계순위는 7위까지 오른다는 사실이다. 향후 정몽준 회장 일가의 상속ㆍ승계과정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또 이동걸 교수는 대우조선 매각에서처럼 현행법이 무시되는 일에 대해서도 크게 분노했다. "법을 뛰어넘는 시행령을 만들어 제멋대로 행정을 하는 것은 '법치'고 시행령을 법에 맞게 하자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박근혜 만능법' 2016.03.27 )이라고 분개했다.

      이런 과거 그의 글들과 지금 산은 회장으로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공적자금의 낭비를 준엄히 꾸짖던 그가 이제는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계제(階梯)가 아니다"라며 기자들을 불러놓고 '미래'를 논하자고 한다.

      슬슬 궁금증도 발동하기 시작한다.

      왜 하필이면 10년간이나 조용하던 거제도의 대우조선 매각이 공교롭게도(?) 예상치 못했던 김경수 경남지사 법정구속 딱 이틀 뒤에, 단 한마디 예고도 없이 뚝딱 발표됐을까. 마치 이동걸 회장이 동국대 교수 시절인 2016년에 4.13 총선 직전까지 대우조선 부실이 숨겨진 것을 칼럼을 통해 궁금해 했듯이.

      이쯤되면 요즘 여당과 정부 부처 행태를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4글자가 슬슬 머릿 속에 떠오른다. 'OO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