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 모두가 박삼구 회장을 위해 뛰는 거래?
입력 2019.04.25 07:00|수정 2019.04.25 09:54
    부실회사 매각이지만 오너 일가는 수천억 현금 확보
    산은ㆍ정부서 매각 압박~박 회장 몰아냈다 명분에 취해
    증자에 오너 구주까지 팔아줘야…비용 모조리 새 주인이 부담
    •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매각이 결정됐다. '박삼구 회장의 백기투항', '산업은행의 용단과 과감함', '대기업들이 선호할 매물' 등의 평가가 나왔다.

      정말 박 회장의 '눈물겨운 용퇴'일까.

      거래의 실질을 따져보면 진정한 승자는 산업은행도, 금융위원회도, 혹은 다른 대기업도 아닌 '박삼구 회장'이다. 오히려 모두가 박 회장의 엑시트(Exit), 즉 그에게 최대한의 현금을 챙겨주려고 움직여야 할 상황이 됐다.

      ◆경영 실패 책임 묻는다면서 대주주가 수천억 현금 챙기는 유일한 사례

      사태의 출발점은 삼일회계법인의 감사의견 '한정'을 계기로 '아시아나항공 = 한계기업'으로 낙인찍히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산은과 정부는 "아시아나에 자금을 투입해서 회사를 살리자"보다 "박삼구 회장이 이제 물러나야 한다"에 초점을 맞췄다. 이 둘은 연관된 사안이지만 '무엇이 먼저냐'에 따라 실행방편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과거 다른 한계기업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해진다.

      일례로 2012년 웅진그룹은 대주주의 오판과 과다한 부채로 위기에 처하자 알짜회사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려 했다. 대신 매각대금은 회사인 (주)웅진으로 유입되는 구조였다. 그렇게 대주주 등이 직접 알짜회사를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은행과 채권자들의 빚을 원만히 갚는 형태다. 즉, '웅진'의 빚을 갚기 위해 '코웨이'를 희생했고 웅진과 윤석금 회장 일가가 비용을 치렀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오너들의 방만 경영으로 은행들이 파산위기에 처했다. 이에 김석동 금융위원장 중심으로 새 주인을 영입해 저축은행을 살려서 피해자가 없도록 했다. 이때 방식은 100% 순수 제3자배정 증자형태였다. 기존 대주주에 대한 직접적인 '감자'가 실행되지 않더라도 증자로 인한 신주 물량이 워낙 많아 구주주는 자연스레 경영권을 상실되도록 했다. 기존 저축은행 오너는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졌고 단 한푼의 현금도 챙기지 못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회사'를 팔도록 하는 대신 대주주에 대한 배려는 일절 없었다.

      그런데 이번 아시아나 사태는 달리 돌아가고 있다. 수십년간 경영부실의 책임이 박삼구 회장 일가에게 있다고 최종구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선언했다. 그래서 '아시아나'가 어렵고 빚 갚을 돈이 필요한데 정작 파는 매각 대상이 '아시아나'다.

      이 과정에서 매각대금은? 아시아나가 아니라 부실경영의 책임자로 낙인찍힌 박삼구 회장에게 돈이 지급된다. 시가로 5000억원은 넘는 주식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 팔린다.  "이제 아시아나에서 물러난다" 라는 선언을 제외하고 나면 박삼구 회장은 은퇴에 도움될 수천억원대 현금을 챙길 수 있다. 부실한 채권단의 도움으로, 그리고 새로운 인수자가 잘 경영해주면 된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박삼구 회장은 웅진그룹보다 더한 수준의 과다 M&A를 단행했고 그로 인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4개 계열사를 각각 워크아웃ㆍ자율협약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보유지분(금호석유화학) 주가가 폭등하면서 4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벌었고, 이를 회사에 투입하면서 다시 회장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약 10년간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 등을 팔고 사면서 그룹을 다시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러나면서 다시 원래 투입한 현금만큼 많은 현금을 갖고 은퇴하게 된다. '용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태가 박삼구 회장 스스로 벌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계속해서 '박 회장이 물러나야 하고 경영권을 팔아야 한다'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냈다. 그래서 박 회장이 물러난다. 행여라도 박삼구 회장 측이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나는데...뭐가 문제냐"라고 따지면 정부와 산은이 뭐라 답할지 궁금해진다.

      ◆구주+제3자배정 증자…산은도, 정부도 오너 일가 최대 이익 위해 움직이게 될 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실 아시아나항공을 과거 다른 한계기업이나 저축은행들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다. 당장 '법정관리' 혹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연히 회사는 운영 중이고 코스피에 상장된 주식이 정상거래되는 회사다. 다만 한계상황이 뻔히 예고되어 있을 뿐이다.

      산업은행과의 관계도 애매모호하다.

      그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문재인 정부와 관계부처를 대신해 한국의 '구조조정 전담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아시아나에 대해서는 빌려준 돈도 많지 않다보니 직접적으로 관여할 명분이 적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오죽하면 작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태가 벌어졌을 때 산업은행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아시아나가 기내식 사업자를 바꿀 때 산업은행과는 이미 자율협약이 끝났다"(2018.7.5 산업은행)라고 설명했을까. 더 개입하면 아시아나에 경영간섭이 되니까 자신들의 책임을 묻지 말라라는 게 산은의 논조였다. 그러니 거래가 이런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남은 사안은 매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다. 박삼구 회장은 '구주+제3자배정 증자'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그리고 산은과 정부가 이 카드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따져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매우 빠르게, 그리고 흔쾌히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

      '특혜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매각은 어느 정도 경쟁입찰을 통해서 진행돼야 한다. 매각의 주도권을 순전히 박삼구 회장에게 넘기지 않고 산은도 참여하는 방안이 마련되겠지만 실질은 변함없다. 산은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안전장치'를 거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의미는 "박삼구 회장이 진성매각을 안하고 파킹하는 거래"를 막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박 회장은? 오히려 진성매각을 선호할 상황이다.

      이때부터 어느 대기업에게 아시아나를 넘길 것이냐는 기준은 결국 '매각가격'이다. 게다가 2011년 하이닉스 경영권 매각 당시에 나타났듯이 '구주+제3자배정 증자'는 구주가격과 신주 배정가격이 연동되고, 각각의 의사결졍권자가 다른데다가 할인발행 가능성에 대한 배임이슈를 피해야 하는 등 오만가지 난제가 숨은 구조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이 구조에 대한 경험을 확보한 이들도, 또 명쾌히 해결할 이들도 드물다.

      그렇다고 매각구조에 대한 기준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어느 특정후보에게 아시아나를 넘기려고 그러느냐"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회피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사안을 모두 따져보면 결국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의 구주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형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박삼구 회장에게 돌아간다.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경영권 매각을 직접 나서서 주도해주는 산업은행이 고마울 상황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문제의 본질, 즉 아시아나로 현금이 많이 유입되도록 노력도 같이 해야 한다. 물론 용퇴하는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는 이걸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방만경영의 주역인 오너도 재산 피해 없이 수천억원을 벌고, 한계기업인 아시아나도 살아나고. 금융위와 산업은행은 "역대 누구도 하지 못한 박삼구 회장 몰아내기와 아시아나 새 주인 찾기에 성공했다"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다. 박삼구 회장ㆍ 박세창 사장 일가는 원한다면 이번에 받게 될 수천억원의 현금으로 저가항공사라도 인수해 다시 재기에 나설수도 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거래에 필요한 비용은? 모조리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떠맡아야 한다.

      결국 아시아나의 새 주인이 박삼구 회장과 아시아나 임직원 그리고 정부ㆍ채권단을 위해 조단위 현금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해당 회사의 주주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인해 웬만큼 시너지가 증명되지 않는다면 길길이 날 뛸 사안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막을 방안도 뚜렷하지 않다. 산은이든, 금융위든 과감하게 박삼구 회장 지분에 대한 감자를 단행할 명분이나 의지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순수 유상증자를 고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매각 결정이 나온 후 기자들 앞에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결단에 채권단은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이동걸 회장이 감사인사까지 내놓은 마당에 이런 강제적인 순수 증자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금융위도, 산업은행도 이런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 일가를 몰아냈다'라는 명분에만 취해있다가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오히려 '모두가 왕의 병사들' (All the king's men)들처럼 원하든, 원치 않든 모두 박삼구 회장을 위해 움직이고 뛰어주게 될 상황에 처했다.

      심지어 이 상황은 정부와 산은 스스로 만들어냈다. 거꾸로보면 박삼구 회장은 적절한 타이밍에, 오로지 단 한 번의 '매각결정'으로 모두가 자신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유도해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4월 23일 07:00 게재  04월24일 18:38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