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경험·브랜드 모두 부족했던 한화…닮은꼴 두산 면세점 미래는?
입력 2019.05.03 07:00|수정 2019.05.07 09:41
    서울 시내면세점 라이선스 남발, 관광객 감소로 '치킨게임'
    사업성 검토 없이 뛰어든 한화그룹도 책임 회피 어려울 듯
    "입지, 유통경험, 브랜드와 연관성이 중요...두타도 우려"
    • 한화그룹이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를 보였다. 정부가 면세점 라이선스를 남발한 결과라는 아쉬움과 함께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든 한화의 책임도 있다는 평가다. 2015년 허가를 받은 시내면세점 중 한화가 가장 먼저 사업을 접게 된 것은 이미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한화그룹의 철수로 여러 면에서 닮은 두산그룹의 면세 사업은 어떤 전철을 밟을지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별에서 온 그대’ 등이 방영된 후 중국인 여행객, 이른바 유커(游客)가 몰려올 것이란 기대감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면세점 양강 구도를 허물었다. 2015년 7월 HDC신라면세점, 한화갤러리아가 신규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고 같은 해 11월에 두산과 신세계가 합류했다. 2014년 6개에 불과했던 서울 시내면세점은 현재는 13개에 달한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짧은 기간 동안 시내면세점이 2배 이상 증가하도록 라이선스를 남발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시내면세점 추가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시장에서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쟁을 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면서 사업성을 판단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뛰어든 한화야말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63빌딩 면세점은 오너 일가의 판단이 많이 개입됐다고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63빌딩에 면세점을 넣고 싶어했다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면세점 특허 획득을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한화그룹은 63빌딩 내 쇼핑·엔터테인먼트·식음료 시설과 연계해 아시아 최고의 문화쇼핑센터로 꾸민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면세점을 필두로 여의도와 한강 일대 관광 아이템을 발굴해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강력한 청사진을 제시했던 만큼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배경에 있었다는 평가다. 또 김 회장의 삼남 김동선 팀장의 경영능력을 시험하는 무대로도 활용되기도 했다.

    • 그러나 한화갤러리아의 면세 사업은 영업기간 동안 누적 적자가 10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나며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면세점 위치를 꼽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면세점 구매고객 중 중국인의 비중은 26.9%지만 이들의 매출 비중은 73.4%에 이른다. 큰손 따이공(중국 대량 보따리상)이 면세 사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에 입점한 것이 크게 불리했다는 설명이다. 따이공은 명동에서 제일 먼저 물건을 구매하고 그 다음 잠실 거쳐서 강남 일대로 넘어가는 동선대로 이동한다.

      명동, 잠실, 강남에 위치하지 못한 면세점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수수료를 많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 계열이라도 신규 진입한 일부 면세점들은 20%에 가까운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 자체적으로도 매출이 많이 안 나오는데 수수료 부담이 ‘제살 깎아먹기’ 수준으로 과중하다 보니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는 평가다.

      유통 경험 부족도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판매 물량을 선(先)매입하고 후(後)판매하는 면세점 특성상 재고 관리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물량 관리가 중요하다. 한화갤러리아가 백화점 사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사실상 임대업에 가깝다. 백화점은 입점한 매장으로부터 얻는 임대료와 수수료로 매출을 얻기 때문이다. 실상 한화그룹은 유통업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평가다.

      한화가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 추가 이탈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 빅2인 롯데, 신라 외 새로 진입한 경쟁자 중에서는 신세계만이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대기업 계열 시내면세점 중에서는 두산그룹 4세 박서원 전무가 지휘하는 두타면세점을 주목한다. 작년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누적 손실액이 605억원에 달해 부담이 막중한 상태기 때문이다. 두산 그룹 자체도 재무적인 어려움에 처했다.

      두산은 면세점 사업을 축소시키고 있는 추세다. 루이비통·샤넬 등 명품 브랜드가 없는 대신 심야영업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던 두타면세점은 영업시간을 오전 2시까지에서 오후 11시까지로 앞당겼다. 운영면적도 9개 층에서 7개 층으로 줄였다. 회사측은 면세 사업이 주요 사업이기 때문에 철수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동대문이라는 입지가 불리하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한화와 닮은 꼴이라는 평가다. 두산은 소비재기업에서 중공업기업으로 탈피하면서 유통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면세점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한 가운데 선두 업체들의 과점 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통 회사들은 다양한 채널이 확보돼있고 면세점이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를 주기 때문에 유리한 고지에 서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통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비슷한 시기 뛰어든 신세계가 차별화되는 것을 보면 입지, 유통경험, 브랜드와 연관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한화그룹과 마찬가지로 유통 경험이 없고 기존 브랜드와 연관성이 부족한 두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