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어닝쇼크’ 정유·석화업계, 전망과 대책은?
입력 2019.07.17 07:00|수정 2019.07.16 18:16
    상반기, 공급·수요 측면 모두 불리
    1분기 이어 2분기에도 '어닝 쇼크' 우려
    업체별 처한 상황 및 전망은 제각각
    • 국내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에 또 다시 '어닝 쇼크' 먹구름이 끼었다. 정제마진은 역사적 저점을 찍었고 유가도 예상과 달리 약세를 보였다. 업황 정점을 지난 석유화학 제품들은 미중 무역분쟁 여파와 유가 변동성 확대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내년 국제해사기구의 황함량 환경규제(IMO2020)으로 기대됐던 정제 마진 개선 효과도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줄어드는 고유황연료유를 저유황연료유나 경유가 대체할 것으로 추정하지만 문제는 공급이라는 지적이다. 가동률 상승으로 충분히 충당가능한데다 중국에서도 공급 과잉 여지가 있어 마진 개선효과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여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던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는 회복할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주목된다. 다만 개선보다는 유지 또는 악화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정유부터 석유화학까지 밸류 체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는 사업 다각화와 설비 규모 확대가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급과잉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수요도 뒷받쳐주지 못해 회복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 ◇ 산유국 변화 중심에 선 에쓰오일...실적은 ‘적자전환’

      원유 수요 성장세가 둔화되자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산유국들이 석유에서 화학으로(Oil to Chemical) 변신에 나섰다. 사우디 국영기업인 아람코는 중동 최대 석유화학 기업 사빅(SABIC)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쓰오일과 잔사유 고도화 시설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RUC·ODC) 프로젝트를 잇는 석유화학 2단계 프로젝트에 대한 전략적인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2024년까지 총 7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중점 사업 분야를 석유에서 화학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 비전과 달리 지금 당장은 “이익과 투자 모두 좋지 않은 타이밍”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에쓰오일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할 전망이다. 컨센서스 대비 -200% 가까이 하회하는 숫자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정유는 유가하락과 정제마진 모두 약세가 나타났고 화학에서도 PX의 지속적인 가격하락이 악재로 작용했다”라며 “중국발 공급 과잉 속에 정유, 화학 모두 실적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완공될 신규 시설에서 생산될 제품들 또한 북미, 중국에서 대규모 증설 중인 점도 우려스럽다는 평가다. 에쓰오일의 2단계 프로젝트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원료로 연간 150만톤 규모의 에틸렌과 기타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스팀크래커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올레핀 다운스트림 시설로 구성된다.

      정유화학 담당 애널리스트는 “업황이 꺾이는 시점에 대규모 투자가 결정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있다”며 “지난 달 신규 선임된 후세인 에이 알카타니 CEO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 SK이노베이션, 배터리에 사활 걸었으나 위축되는 본업

      SK그룹의 무게추는 SK이노베이션 매출의 1%를 차지하는 배터리 부문에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터리 부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다른 계열사도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일례로 SKC는 KCFT(구 LS엠트론 동박사업부)를 인수했고 프로필렌옥사드(PO)부문 지분 일부 매각을 검토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문의 손익분기점 달성 예상 시점을 2021년으로 보고 있. 하지만 본업이 꺾이면서 당분간 실적이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60% 감소할 전망이다. 증권사들의 예상치보다 20%가량 낮은 수준이다. 정제마진이 급락해 석유사업에서 영업이익이 80% 정도 감소한 탓이 컸다. 화학에서도 주력제품인 파라자일렌(PX)와 폴리에틸렌(PE) 모두 약세를 보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하반기가 더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석유화학 부문에 대한 우려는 중국에서 올 하반기부터 쏟아져 나올 PX 때문이다. 중국 고순도테레프탈산(PTA)업체들은 PX 설비와 더불어 전·후방산업 시설도 크게 증설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사의 PX 생산능력은 총 1051만톤가량, 그 중에서 대중(對中) PX 수출 비중은 91%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국 스스로 PX를 생산하게 되면 매출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또 국내 정유사들이 수출한 석유제품 가운데 20% 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어 주요 수요처에서 매출 감소 가능성이 제기된다.

      ◇ 배터리·석유화학 '두 마리 토끼' 좇는 LG화학

      LG화학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6%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실적 예상치의 20%가량 하회하는 수준이다. 화학부문에서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상승한 동시에 폴리에틸렌(PE), 고기능합성수지(ABS) 등 주력 제품들이 약세를 보였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평가다.

      다만 미래 먹거리로 강하게 추진 중인 배터리 부문은 적자 폭이 크게 감소했다. 지난 분기부터 이어진 ESS 화재 이슈는 원인이 밝혀지면서 하반기부터 국내 판매가 정상화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공장 증설효과 반영, 소형전지 판매량 증가에 따른 실적 성장이 따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기존 석유화학사업과 신사업인 배터리 부문 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입장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9일 기자 간담회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현재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2024년에는 30%대로 낮추고 자동차전지 사업을 중심으로 전지사업을 전체 매출의 50% 수준인 31조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면서도 “석유화학사업을 줄인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LG화학은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여수공장에 나프타분해시설(NCC) 80만톤과 고부가폴리올레핀(PO) 80만톤을 각각 증설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석유화학 기업들도 일제히 증설하면서 NCC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ECC와 비교했을 때 제품 포트폴리오가 다양하지만 가격경쟁력면에서 뒤쳐진다는 평가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성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배터리 부문이 언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라며 “LG화학 측이 발표한 목표와 방향성은 공감해도 실제 달성 가능성은 미지수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 석화업계 규모의 전쟁…롯데케미칼 생존 전략은

      배터리 등 다양한 방면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선 다른 기업들과 달리 롯데케미칼은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한 순수화학기업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의 생존 전략은 해외로 생산 거점을 늘리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셰일 가스를 원료로 하는 북미 지역 증설 경쟁에 뛰어들어 대규모 증설도 완료했다. 미국 공장은 원가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의 생존 돌파구로 여겨진 북미 에탄크래커(ECC) 설비의 전망은 당분간 그리 밝지 않다. 올해 다우듀폰, 토탈 등 추가 증설이 예정돼 있는 대형 기업들의 생산능력은 600만톤을 상회해 연간 글로벌 에틸렌 수요 증가치를 넘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2020년 북미 중심 증설 랠리가 마무리 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중국도 2022년까지 대규모 설비를 신규가동한다. 주력 제품 중 하나인 모노에틸렌글리콜(MEG)이 공급과잉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높다는 설명이다.

      공급과잉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롯데케미칼 실적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 영업이익 3224억원을 올리며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54% 감소할 전망이다. 주력 제품인 PE와 PTA 모두 약세를 보였다.

      롯데케미칼은 배당을 30%까지 늘리며 당분간 숨 고르기할 전망인 가운데 이를 두고 투자자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기업들의 배당과 비교하면 이제서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앞으로 심해질 경쟁을 대비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세계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석유화학 기업들이 덩치를 키우며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에서 살아남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무역분쟁이 기회?…유일하게 ‘볕든’ 금호석유화학

      줄줄이 어닝쇼크를 기록하고 있는 다른 석유화학기업들과 달리 금호석유화학은 유일하게 ‘선방’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하반기 실적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주력 제품 수요가 줄고 신규 설비가 증설되기 때문에 깜짝 호실적에 그칠 수 있는 반면, 한일 무역분쟁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의 2분기 영업이익 감소세는 한 자리 수 이내일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업황이 정점을 찍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적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셈이다. 금호석유화학의 주력 제품인 합성고무의 업황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 선방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특히 합성 고무 영업이익은 7년 래 최대 실적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또다른 한 축인 페놀도 실적이 호전됐다. 그러나 부타디엔(BD) 계열과 페놀 계열도 올해 이후로는 신규설비 진입이 증대되기 때문에 호실적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일 무역분쟁은 금호석유화학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규제 대상에 포함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금호석유화학에서 일부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금호석유화학은 3D 낸드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했고 올해는 현재보다 두께를 높인 제품을 연구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