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청사진만 오가는 조선업 구조조정
입력 2019.07.17 07:00|수정 2019.07.19 09:48
    최근 중소 8개 조선 관련사 통합 가능성 부상
    주체도 돈도 실익도 불투명…’애드벌룬’ 지적도
    단순 통합보다 수리조선소 등 특화 전략 필요
    대우조선 M&A도 안갯속…성사돼도 효과 의문
    • 조선업의 위기가 계속되지만 명확한 해법 대신 그럴싸해 보이는 청사진만 난무하고 있다. 중소형 조선사 통합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으나 실행 주체도 실익도 불분명한 터라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구체적인 안을 도출한 대형 조선사 통합 작업은 암초가 이어지고 있고, 성사되더라도 기대했던 효과가 날 지는 미지수다.

      이달 들어 산업은행 발 중소형 조선사 구조조정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관리하의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대한조선, 대선조선, 성동조선해양 등 5개 조선사와 유암코가 관리하는 오리엔탈정공, STX엔진, 삼강S&C 등 3개 조선 관련회사를 하나로 묶을 것이란 보도가 있었다.

      어려운 중소형 조선사들을 통합해 제대로 된 하나의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취지라면 공감을 얻을만 하다. 관리 주체도 국책은행과 공적 성격이 강한 유암코다 보니 추진하기 수월한 면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실행되기 어려운 방안이란 평가가 이어졌다.

      일단 통합을 추진할만한 주체가 없다. 앞서의 조선사들은 당장 하루하루 수주를 걱정해야 하고, 통합 작업에 필요한 비용을 댈 여력도 없다. 서로 손을 잡아 모두 어려워지는 것보다는 한 두 곳이라도 빨리 정리되는 편이 경영을 이어가는 데 유리하다. 실제로 성동조선해양이 회생절차를 거치며 헤매는 사이 가장 비슷한 선종을 건조하는 대한조선이 반사이익을 봤다.

      통합을 통해 이득을 얻을 곳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굳이 따지자면 빅3 정도나 수행할 수 있는 일인데 두 곳은 통합 작업에 분주하고 나머지 한 곳은 현상 유지 외엔 큰 관심이 없다. 여유가 있다 쳐도 매력적인 기회로 여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8개 회사 통합은 효율성을 높여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조직과 인력의 축소를 의미한다.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정치권에선 적어도 해당 지역과 노동자 앞에선 결사 반대를 외칠 것이다. 8개사 모두 노동조합이 있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주력 선종도 지역도 모두 제각각이다.

      산업은행은 8개사 통합안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며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담당 실무자들도 관련 내용에 대해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애드벌룬을 띄워 분위기를 살핀 것 아니냔 평가가 나왔다.

      한 은행 조선 담당자는 “중소형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사정이 안 좋은 데다 마침 관리 주체도 국책은행이다보니 관련 부처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검토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8개사를 그대로 통합하는 것은 그림은 그럴싸하지만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의지가 있다면 떼고 붙이는 데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덩치만 키우기보다는 사업부 별로 쪼개고 묶어서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중소형 조선사에 특화된 임무를 부여할 수도 있다. 국내 조선 업계는 ‘대형 선박의 신조’에 치우쳐 있다. 중소형 선박의 건조나 수리는 약해 관련 일감을 인접 국가에 내주곤 한다. 어선을 수리하는 대신 일본 등에서 중고선박을 들여오면 그 자체로도 국가적 손해다. 조선 시장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스크러버(Scrubber: 황산화물 저감장치)를 중국에 가서 달아오는 경우도 많다.

      한 조선업계 전문가는 “노후화된 원양어선, 연안탱커 등의 위험은 커지는 데 국내는 이런 선박을 수리할 조선소가 마땅치 않다”며 “수리조선소는 경제성이 있고 이미 10년 전부터 필요성이 거론돼 왔지만 아직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 조선사 통합 작업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실체가 없는 중소 조선사 통합안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고, 성사된 후의 기대 효과도 모호하다.

      대우조선해양 M&A의 가장 큰 난관은 EU의 승인이었다. 고객이 가장 많은 지역이라 깐깐한 심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과, 원래 구매자시장(Buyer's market)인 조선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엇갈렸다. 말 그대로 50대 50으로 보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1, 2위 조선사 합병을 진행하고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외려 최근엔 일본이 더 큰 암초로 떠올랐다. 과거 조선업 세계 1위 국가였던 일본은 우리 조선업을 꾸준히 견제해 왔다. 최근 한일 갈등이 불거지며 일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도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M&A가 성사되더라도 공언한대로 조선업 발전, 고용 안정, 지역 경제 활성화 등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M&A를 시작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강력한 라이벌의 제거’다. 대우조선해양이 그룹 안으로 들어오든, 스스로 망가지든 현대중공업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 국내 조선업 전체론 그만큼의 역량 손실이 불가피하다. 비효율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내 하청이나 단순 협력사들의 줄도산도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