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매각, '애국·항일'로 명분 만들려다 공분만 야기
입력 2019.12.16 07:00|수정 2019.12.18 10:32
    • 13일 오전. 김봉진 대표를 포함한 배달의민족(법인명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들과 인수 측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 관계자들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모여 4조원대의 매매 본계약을 체결했다.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프랑스제 돔페리뇽 샴페인을 터뜨리는 등 조촐한 세레모니까지 끝낸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번 거래를 설명하는 배달의민족 공식 보도자료 한 부가 투자업계의 엄청난 '공분'과 논란을 야기했다.

      배달의민족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합작회사 설립은 변화하는 시장 환경이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배달의민족은 토종 애플리케이션으로 국내 배달앱 1위에 올랐지만, 최근 일본계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C사와 국내 대형 IT플랫폼 등의 잇단 진출에 거센 도전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일본계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C사'는 쿠팡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배달의민족 측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IT업계 관계자’ 멘트를 활용, "일본계 자본을 업은 C사의 경우 각종 온라인 시장을 파괴하는 역할을 많이 해 왔다” “국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게 IT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위기감이 글로벌 연합군 결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발표하는 각종 자료에 자사 업무나 거래에 대한 '셀프 칭찬'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공식 보도자료에 익명의 코멘트를 활용하고 이를 통해 타사를 비방하기까지 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우선 C사를 언급하며 굳이 ‘일본계 자본’을 굳이 강조한 의도가 유추된다. 결국 이번 매각을 "그간 자랑해오던 국내 유니콘 기업이 해외자본에 팔렸다"라는 프레임을 미리 차단하려고 타사 비방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육성을 국정 과제로 밝힌 상황이다. 그간 배달의민족은 국내 대표 유니콘기업의 상징이기도 했고, 창업자 김봉진 대표의 위상은 특별했다. 김봉진 대표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맡아 민관 가교 역할을 자처했고 기업가 정신을 설파하며 구루(Guru)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해외 자본에 매각하면서 엄청난 매각차익까지 얻은 현재 상황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자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과거 위메프·티몬 등 동종업계에서도 쿠팡이랑 격렬하게 싸울 때도 굳이 ‘일본계’라고 자본의 국적까지 지적한 적은 없었다”라며 “양 사가 감정이 안좋을 순 있지만 굳이 회사를 팔면서 선을 넘고 도를 넘은 표현을 넣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매각으로 김봉진 대표와 합을 맞춰 ‘유니콘 육성’을 설파해온 박영선 중기부 장관도 난처하게 했다. 실세 장관으로 불리는 박영선 장관은 불과 수일전 직접 브리핑까지 나서며 국내 유니콘 수가 독일과 동수(11곳)가 된 점을 자축했다. 그러나 며칠뒤 대표적인 국내 유니콘 기업이 그 독일계에 팔렸고, 자랑에 나섰던 중기부와 박 장관만 무색하게 됐다.

      논란을 불러 일으킨 보도자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결국 '독과점 문제'다. 이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것.

      이번 M&A가 완료되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에서만 요기요·배달의민족·배달통 3가지 어플리케이션을 모두 운영하게 된다. 쿠팡이츠(C사) 등 경쟁사들이 이제 막 진입단계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점유율이 99%에 달한다는 평가다.

      한 공정거래법 기업결합(M&A) 전문가는 "이베이의 지마켓 인수때는 그나마 오픈마켓 시장의 10% 가량을 차지하던 11번가가 있었지만 국내 배달 플랫폼 시장의 99%를 차지하게 되는 이번 M&A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배달을 위해 배민과 요기요 등에 입점한 수많은 자영업자들과 또 시장에 진입하는 다른 배달 플랫폼 업체에게 매우 큰 경쟁의 우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형 로펌 공정거래 담당 변호사들 사이에선 "수임하더라도 섣불리 해낼 자신이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번 거래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고 있는데, 경쟁사들은 현재 태평양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인수 글로벌 독과점 심사와 이번 배달의민족 독과점 심사 가운데 어떤 사건이 더 난제일지를 두고 농담이 오갈 정도다. 일각에선 배달의민족 측이 기존 법률자문사를 김앤장에서 한차례 변경을 시도한 배경에도 이전 김앤장 측이 기업결합신고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냈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마지막 해석은 '여론'이다. 그간 자영업자들과 상생 모델로 회사를 키웠고 찬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매각으로 김봉진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의 수천억원대 ‘대박’이 여론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을 것이란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직접 나서 애국심 뿐만 아니라 “국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게 IT업계의 현실”이라는 명분까지 내세운 것을 두고 스타트업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거래는 우아한형제들이 신주를 발행해 배달의민족에 자본을 확충하는 구조가 아닌 단순 지분 교환이다.

      이번 매각 구조는 간단하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현금과 일부 신주를 발행해 우아한형제들 지분 100%를 모두 인수한다. 기존 투자자들은 현금을 받고, 김봉진 대표와 일부 창업주들은 보유한 우아한형제들 지분(13%)을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지분으로 교환한다.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가 4조7500억원(40억달러)로 평가받았다 밝힌 점을 고려하면, 김봉진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이 확보한 주식가치는 약 6175억원이다. 기존 경영진은 경업금지(4년) 기간을 피하면 해당 지분을 일정기간 보유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시장에 매각해 차익을 볼 수도 있다.

      김봉진 대표 등 경영진과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DH아시아’라는 추후 합작사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를 이 조인트벤처(JV)가 거느리는 것처럼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엄밀히보면 이번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주식 거래와 전혀 무관하다. JV가 어떤 자산을 보유하고 어떤 사업을 꾸릴지는 전혀 확정되지않았다. 김 대표가 JV 이사회에 참여한다지만, 정작 우아한형제들 지분 전량을 보유한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이사회엔 참여 여부가 불확실하다. 단순 회사 매각이 맞다.

      굳이 자본의 '국적'을 따지자면 배달의민족이 쿠팡의 '일본계 자본'을 비판하기도 어렵다.

      배달의민족 보도자료에 따르면 기존 배달의민족 투자자들(지분 87% 보유)은 '대박'을 거두게 된다. 여기서 '중국계' 힐하우스캐피탈·세쿼이아캐피탈차이나과 '미국계' 골드만삭스(미국), 그리고 '아시아계"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글로벌 벤처캐피탈들은 수십 배를 넘는 차익을 실현한다. 한킴 대표가 이끄는 알토스벤처스도 수혜를 보지만, 이미 펀드 투자자 구성면에서 글로벌 VC로 분류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15년 약 120억원을 투입해 기존 주주들의 지분 20%를 확보했고, 곧이어 힐하우스캐피탈도 2016년 약 570억원을 들여 우아한형제들이 발행한 신주 16%를 인수했다.

      배달의민족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일본계' 국적의 자금을 받아 활동한 C사의 경우, 비전펀드의 투자자(LP)구성을 따져보면 '사우디아라비아계' 또는 '글로벌'로 분류하는게 적절하다.

      그간 국적을 넘나드는 자본의 논리를 퇴색시키고자 '애국심 마케팅'이 시도된 경우는 한 두번이 아니다.

      가까운 사례로 올해 초 넷마블이 "넥슨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설때 "토종 자본으로 컨소시엄을 꾸리겠다"는 공식 발표를 내걸면서 또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있다.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했던 넷마블이 초청한 투자자는 캐나다 및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한 MBK파트너스였다. 막바지엔 해외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인수확약서(LOC) 발급에 공을 들였다. 매번 이런 식이다. 필요할때만 아전인수 격으로 '애국심' 고취를 요청한다.

      이제는 모두가 식상해하는 애국심 호소 대신 "18년간의 평균 IRR 4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로 세련되게 성과를 내보일 국내 창업자는 언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