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올라선 국내 배터리 3사 키워드…LG ‘합작’·SK ‘소송’·삼성 ‘전자’
입력 2019.12.18 07:00|수정 2019.12.19 10:02
    발목잡은 中장벽 해소, EU 환경규제 본격화
    '계획'만 내놓던 완성차업계, 조단위 투자 시작
    LG·SK·삼성 3사간 고민거리도 각양각색
    설비수율 문제·기술유출 방어는 공통 과제
    • 2020년은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가 본격적인 트랙에 올라설 해로 점쳐진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선 내년부터 정부 차원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폐지돼 국내 제품의 가격경쟁력도 점차 회복할 전망이다. 유럽에선 완성차 업체에 대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며 필수 소재인 배터리 분야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지만 이와 비례해 성과에 대한 투자자들의 요구도 더욱 세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3사의 전략은 물론 제각각인 고민거리도 과제다.

      '청사진' 아닌 조단위 돈 투입한 GM…JV 전략 확장 나선 LG화학

      최근 전기차 업계의 화제는 단연 LG화학과 GM의 조인트벤처(JV) 설립이다. 양사는 50 대 50 비율로 약 2조7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30기가와트시(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두 회사의 협력은 상징적인 이벤트로 여겨진다. 전기차에 특화된 테슬라의 기가팩토리,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특수 사례를 제외하면 전통적인 글로벌 완성차 OEM이 전기차 생산을 위해 조 단위 자본을 투입한 사실상 첫 사례다.

      악시오스(Axios) 등 외신에 따르면 GM 경쟁사인 도요타의 경영진은 해당 JV 설립 소식에 “섣부른 투자 결정으로 '전기화한 아마겟돈(Electrified armageddon)'에 직면할 것”이라고 견제구를 던졌다. 본격적으로 순수 전기차에 뭉칫돈을 쏟기보다 도요타가 강점을 지닌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 생산 등을 통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해당 매체는 “두 전략 중 누군가는 분명히 틀릴 문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업계에선 LG화학이 GM을 기점으로 글로벌 완성차브랜드와 JV 전략을 늘릴 것으로 내다본다. LG화학 입장에선 초기 투자비를 줄여 증설에 따른 부담을 대폭 완화할 수 있다. LG화학은 최근 본업인 석유화학 부문의 수익성 저하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LG화학은 현대차와도 배터리 셀 합작투자를 두고 물밑에서 조건을 조율 중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업계에선 이번 합작사 설립이 GM의 요청으로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완성차 입장에서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장점이 상대방인 배터리 업체엔 가격 협상력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룹 차원으로 전선을 넓혀보면 궤도에 오르지 못한 LG전자 전장사업부의 고객 확대를 위해 배터리 사업이 일부 조건을 양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LG화학 전지사업본부가 유의미한 이익을 내지 못한지도 10년이 지나 올해는 매출 성장은 물론 수익성도 신경써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미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석유화학부문의 실적 둔화와 배터리 분야 공격적인 투자 집행을 이유로 국제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한 단계 하향했다. 국내 신용등급 등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일정정도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

    • SK이노, 소송 향방 관건…삼성SDI, 실속 챙기기 vs. 그룹 눈치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의 소송전으로 추격 전략이 다소 지연돼 평판 회복이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이르면 이달 혹은 내년 초 미국 ITC의 예비 판정 결과에 따라 내년도 전략도 급변할 예정이다.

      그간 상대적 후발주자였던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 전략은 ‘공격적 확장’이었다. 타사 대비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설비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이를 통해 점유율 측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포석이다. LG화학에 앞서 유럽 최대 자동차 브랜드인 폴크스바겐과 JV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구체적인 결론까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회사의 공식 부인에도 업계에선 LG화학과의 소송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진행 중인 해외 생산거점 증설 이후 사업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국내 3사 중 가장 보수적인 전략을 취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삼성SDI는 수익성을 우선한 투자 전략을 유지할 전망이다.

      삼성SDI는 현재 BMW, 폴크스바겐, 재규어 등 OEM과 공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경쟁사들과 달리 수주 현황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연초엔 수익성이 떨어지는 폴크스바겐의 수주물량을 주도적으로 줄여 화제가 됐다. 경쟁사들이 연이어 수주 소식을 과시하는 중에도 지난 7월 볼보와 전기트럭용 배터리 개발 제휴를 맺은 것 외 주목할 만한 이벤트가 없었다.

      삼성SDI의 이 같은 전략에 대해 평가가 양분된다.

      치킨게임에 참전해 일정 정도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물량을 무리해서 수주하기보다, 향후 수급 상황에 맞춰 협상력을 키울 것이란 시각이다. 배터리 시장 본격적으로 열려 물량 부족 현상이 가시화하면 오히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이다. 지난 2016년 배터리 부문에 대규모 빅베스를 단행하고, 이후 삼성전자 사장을 역임한 전영현 사장이 부임한 이후 해당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선 여전히 그룹 차원, 삼성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SDI는 아직까지 수주 금액 및 단가, 해외 투자 여부 등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삼성전자 내 사업지원 TF에 일일이 검토를 받고 있다"며 "삼성SDI가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혹은 그룹의 미래차 전략이 본격화할 때까지 주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다. 삼성SDI는 "주도권은 회사가 갖고 독자적으로 판단해 진행하지만 일부 큰 사안은 TF와 협의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배터리 업계는 국내 업체들의 공통적인 과제로 해외 공장의 '수율확보' 문제를 지적한다. 3사 모두 폴란드(LG화학·SK이노베이션), 헝가리(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유럽 완성차 생산설비에 인접해 해외 설비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하지만 당초 계획에 비해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데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인력들의 교육 문제, 설비 가동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계획 대비 가동이 다소 지연되는 지역도 있다"며 "추후 적시 공급에 지장이 있거나 기술 유출 문제 등이 발생하면 깐깐한 완성차 업체들과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