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은 안되고, KCGI는 되고…강성부 대표의 ‘내로남불’
입력 2020.01.28 07:00|수정 2020.01.29 10:09
    • 한진일가가 보낸 최악의 연말에도 강성부 대표와 KCGI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러다 이달 21일 갑자기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조원태 한진칼 회장을 작심하고 비판하고 나섰다.

      KCGI는 "조원태 회장이 자신의 총수 자리 지키기를 위해 한진그룹의 주력 기업인 대한항공의 임직원들까지 동원하는 전근대적인 행태를 펼치는 것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대한항공의 임직원들을 자신의 몸종 부리듯이 동원하는 조원태 대표이사의 잘못된 행위는 마땅히 근절되어야 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날선 비난이 나온 '도화선'은 주주총회였다. 즉 오는 3월 조원태 회장의 대표이사 연임안건을 다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항공 임직원을 한진칼로 파견 보냈다는 의혹이 쟁점이었다. 이에 발끈한 KCGI는 "(임직원 파견은) 총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한항공의 인력과 재산을 유출한 것"이라며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이며, 파견법 위반의 소지도 크다"고 했다.

      결국 KCGI의 속내는 지주사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의 뜻을 이루기 위해 대한항공 직원들이 "수박 들고 주주를 찾아다니며 '한표 줍쇼'라지 말라"는 주장이다.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가 이랬다.

      KCGI측이 ‘전근대적인 행태’라 평한 것처럼 이 논란은 지주사의 일부 지분을 보유한 오너가 자회사ㆍ계열사의 경영에 관여하는 행태를 문제삼고 있다. 이는 그간 한국 재벌의 문제점으로 여러 비판점에 섰다.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의 기원도 "그런 짓좀 하지 마세요"에서 출발한다. 부당지원행위와 파견법 위반 여부는 양 측이 법정에서 다툴 문제인만큼 잠시 미뤄두면, 강성부 대표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공감을 살 만 하다.

      그런데 이 ‘전근대적인 행태’의 비판 대상을 ‘조원태’에서 ‘강성부’로 바꿀 경우에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는 점이 문제다.

      KCGI가 첫 한진칼 주요 주주로 데뷔한 이후 내놓은 것은 ‘한진그룹 비전 2030’이다. 여기에는 항공 외 비주력사업 정리가 핵심이다. 널리 알려진 호텔사업부문 정리·송현동 부지 매각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펴놓고 곰곰이 따져보면 호텔 사업의 경우 대부분 지주사 한진칼의 사업이 아니라 대한항공의 사업 영역이다. 대한항공이 직접 운영하거나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을 뿐더러, 송현동 부지매입 또한 KCGI와 지분관계가 얽히지 않은 대한항공이 단행했다.

      강성부 대표와 KCGI는 한진칼 지분 17.29%를 보유한 ‘한진칼의 2대주주’에 불과하다. '구조조정 및 개혁 대상'인 대한항공의 주식은 보유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지주사 한진칼 주주이고, "앞으로 최대주주가 될 지 모른다"는 이유로 대한항공을 비롯한 ‘그룹 경영’에 속속들이 관여한다는 것은 묘하게도 자가당착으로 이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마저도 "통신비 인하" 발언을 남겼다 정작 "SKT 지분은 한 주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에 거센 항의를 받는 게 최근 자본시장의 '눈높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작년말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창립총회에서 공식 질의를 했다. 대한민국의 거버넌스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총집결하며 “최초의 투자자 중심 민간기구”를 표방한만큼 명쾌한 설명으로 오랜 고민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해당 협회엔 강성부 대표도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당시 총회 자리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패널들이 동문서답을 하는 사이 강성부 대표는 자리를 빠져나간 후 뒤늦게 문자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강성부 대표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지주회사나 모회사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지주회사만 상장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에선) 지주회사의 펀드나 소액주주들도 자회사나 사업부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주장한다"

      결국 한진칼 주주인 조원태 회장과 오너 일가가 대한항공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전근대적이지만, 자신들은 한진칼 2대주주에 불과해도 대한항공에 자산 팔아라, 계열사 처분해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형태다.

      그간 KCGI가 한진그룹에 내온 목소리는 자본시장에서 일종의 '신드롬'을 형성했다.

      한진그룹 대주주일가의 특수성도 톡톡한 기여를 했지만, 지배구조 전문가인 강성부 대표의 역할도 컸다. 분쟁 초기, SNS 알림말에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용기있게 내딛겠다"는 취지의 독일 대문호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의지를 다졌던 강 대표였다.

      그러던 강성부 대표와 KCGI는 '땅콩회항'으로 이번 한진칼-대한항공 사태를 야기한 원인이자, 아무런 회사 경영 비전을 내놓지 못한 조현아 전 부사장과 연대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수 당시 가격을 한참 밑돌던 주가도 예기치 않은 변수들이 펼쳐지며 다시 이익구간으로 치솟았다. 결국 강성부 대표와 KCGI 입장에선 곧 대한항공에 대한 조종간(경영권)이 눈 앞에 어른거리다보니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볼 수밖에 없다.

      펀드의 설립 명분에 충실하고 표리부동하지 않는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를 만나는 건 요원한 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