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2년간 고집부리던 '코너스톤' 슬며시 업무계획서 뺐다
입력 2020.01.29 07:00|수정 2020.01.30 10:05
    위법 소지ㆍ특혜 논란 있는 코너스톤제도
    2018~2019년 2년 연속 업무계획에 포함
    올해 계획선 삭제...'시장 몰라도 너무 모른다'
    대신 내놓은 정책은 뻔한 '미래 성장성 상장제도'
    • 한국거래소가 위법ㆍ특혜 논란이 일던 '코너스톤 투자자'(초석 투자자) 제도를 올해 업무계획에서 뺐다. 지난 2년간 새해 업무계획에 빠짐없이 포함시키며 의지를 불태운 것 치고는 허무한 결말이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2018년 1월 첫 발표 당시부터 탁상행정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거래소의 의지에 사실상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도 이를 '자본시장 혁신과제'에 포함시켰지만, 결국 구체적인 액션플랜조차 만들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논란은 국내 주식거래를 독점한 거래소의 증시에 대한 이해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걸 방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2007년 홍콩 증시에서 만들어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증시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상장 공모 전 발행사와 주관사가 핵심 투자자를 미리 유치, 주식을 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코너스톤 투자자는 확정 공모가로 지분을 인수하며, 6개월 이상 자진 보호예수를 건다.

      거래소는 글로벌 중장기 우량 투자자를 유치하고 대형 공모 소화에 도움이 된다며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의 핵심은 증권신고서 제출 전 '사전 투자자 확보'에 있다. 이는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전공모' 행위다.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투자자를 유치하며 청약을 권유한 셈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제119조 1항은 '모집 또는 매출은 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해 수리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정 투자자만 우대한다는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증권신고서 제출 이후에 코너스톤 투자자를 모집한다면 현재의 수요예측 제도와 다를 바가 없다.

      기업공개(IPO) 공모 최일선 실무자들의 입장은 처음부터 반대로 기울었다. 애초에 '글로벌 중장기 우량 투자자'에 대한 기대 자체가 신기루에 가깝다는 것이다.

      블랙록ㆍ테마섹ㆍ슈로더ㆍ피델리티 등 이른바 글로벌 중장기 투자자(롱텀펀드;long term fund)들이 국내 IPO에 참여한 후 실제로 지분을 연 단위로 보유하고 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롱텀펀드인만큼 장기 보유를 해줄 거라고 믿을 뿐이다. 실제로 일부 주관사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이들 펀드의 투자를 유치하고, 일반 청약을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복수의 실무 관계자들은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창구나 물량 등을 고려해봤을 때, 이른바 롱텀펀드들의 IPO 물량 평균 보유 기간은 2주를 넘지 않는 것 같다고 추정한다. 공모주별로 편차는 있지만, 6개월 이상 보유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는 지적이다.

      20년 이상 IPO 실무에 종사해온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른바 글로벌 롱텀펀드들은 '우리 못 믿냐'며 불과 수 주의 보호예수(매도 제한, 락업;lock-up)를 거는 것도 거부할 때가 많다"며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롱텀펀드 간판으로 물량 배정에서 우대를 받은 뒤, 상장 후 3일 안에 70% 이상 팔고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모 제도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을 감수해가며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도입했다 해도,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었을 거라는 말이다. 국내 투자자로 시선을 돌려도 결과는 비슷하다. 결국 국민연금이 코너스톤 투자자로 참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A급ㆍB급 공모로 '격'이 갈리고, 국민연금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되며 오히려 투자를 방해했을 거라는 평가다.

      비현실적인 제도를 2년간 밀어붙이다 포기한 거래소가 올해 새로 내놓은 상장 활성화 정책은 '도돌이표'다. 유가증권시장에도 '미래 성장성 중심 상장 요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조금만 비틀어보면 적자기업이라도 성장성만 있다면 코스피에 올려주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책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기술특례 1호 헬릭스미스를 비롯해 이른바 '미래 성장성'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한 회사 중 대부분이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거래소는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VC)조차 최근엔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고 있는데 거래소만 '과거 재무성과 중심의 진입제도' 운운하며 수익성의 가치를 폄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