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 투자자, '회수율' 보다 '집행 가능성'에 집중 필요
입력 2020.02.10 07:00|수정 2020.02.07 22:45
    자산 가치·당사자간 책임·당국 조율 등 변수 많아
    금융사 불완전판매 핵심 될 듯…펀드 관여 여부도
    DLF는 55% 기준…증권사들 30~40% 책임 사례도
    계약 취소시 전액 회수도 가능…국면 장기화 우려
    • 라임자산운용이나 알펜루트자산운용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언제쯤, 얼마나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서는 회수율만큼 중요한 것이 집행 가능성이라고 조언한다. 아직 책임 소재 공방과 금융당국의 조율이 진행 중인터라 회수 시기는 가늠이 어렵다는 게 공통적인 분석이다.

      과거 사례에선 사실관계와 금융사 책임에 따라 회수율이 천차만별이었다. 상환 여력이 있는 곳에 책임을 물으려는 투자자와 이를 방어하려는 금융사간 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작년 이후 펀드 자금 1조6000억원가량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이 불거진 후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알펜루트자산운용도 이달 환매 연기를 결정했다. 증권사의 총수익스왑(TRS) 계약 해지 및 상환 요청이 도화선이 됐다. 대응하기 위해 자산을 헐값 매각하기보다 환매 연기를 택했다는 것이 운용사의 설명이다.

      두 사안의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고민은 같다.

      기본적으론 펀드가 담은 자산 가치가 핵심이다. 라임의 경우 회계법인을 통해 자산 실사 중이다. 감독당국은 알펜루트의 자산도 살펴 보겠다는 입장이다. 자산 가치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거나 기준가격이 조정(상각)되면 투자자들이 받을 자금은 줄어든다.

    • 이슈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라임자산운용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복잡한 모-자펀드 구조로 사모펀드를 사실상 공모펀드처럼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 미래에셋대우가 베트남 빌딩 대출을 유동화하면서 15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활용해 과징금을 받은 사례와도 비슷하다.

      다만 책임의 크기와 상환 능력은 별개다. 문제 펀드의 자산 가치는 불투명하고, 정상 펀드 자금으로 문제 펀드 자금을 돌려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얼마가 될지 모르는 투자 자산에 기대기보다 자산운용사와 판매사, 프라임브로커서비스(PBS) 증권사 등의 책임 소지를 다투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회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 집행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까닭이다.

      라임자산운용보다 연관된 대형 금융회사들의 책임을 물고 늘어지는 편이 회수율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투자자 집단소송 역시 판매 등을 담당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당국에서도 일단 관련된 금융회사들이 앞장서 투자금을 돌려주고 최종 책임자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쟁점은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다.

      자본시장법과 금융감독원 세칙에 따르면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불이행 ▲부당권유의 금지 위반 ▲무자격자에 의한 투자권유 등이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행위로서 제재대상이 된다.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DLS) 대란 때는 투자자 성향을 임의로 작성하거나, 상품의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판매 은행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 부실 문제로까지 불거졌다. 은행들은 초기부터 책임을 자인하고 당국의 조정안에 따라 배상에 나섰다. 배상 비율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결정한 55%를 기준으로 사실관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해졌다. 법원이 당국보다 높은 배상을 인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소송은 실익이 없다는 평가다.

      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투자성향 설문을 직원이 임의로 작성했다거나, 투자 구조에 대해 잘못된 혹은 부족한 설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판매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이 거론되는데, 배상 비율에 대한 다툼은 이어질 수 있다.

      2016년 증권사에 투자중개자로서 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 투자자문사 세이프에셋이 운용하고 대우증권이 판매한 KOSPI 200 선물·옵션 상품이 손실이 나자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투자자문사와 증권사의 공동 책임이 인정됐다. 대우증권은 1심서 30%, 2심에선 40%의 책임이 인정됐다. 설명의무 위반 등이 문제가 됐는데, 투자자들의 과실도 일부 고려됐다.

      2018년엔 분조위가 한국투자증권에 설명의무 위반으로 투자자에 6000만원대 손해를 배상하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이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는 특정금전신탁상품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풋백옵션조항 등 세부사항을 투자자에 안내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다만 이 경우에도 투자자의 자의가 손실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이유로 한국투자증권의 배상범위는 손해액의 30%로 정해졌다.

      한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가입 당시 전달받지 못했던 위험성 때문에 예기치 못한 손실이 발생한 경우 판매 금융사들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의 TRS 계약 해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증권사들은 실질적인 대출자로서 우선 상환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불완전판매 문제가 있고, 증권사들이 펀드 운용과 판매에 깊숙하게 관여했다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증권사들은 PBS 부서와 영업 부서간 정보교류차단(차이니즈월)을 강조하지만, 완벽한 단절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TRS를 통해 자금을 빌려주려면 회수 안전장치는 갖춰져 있는지, 기대 수익률은 어떤지 등을 검토해야 하는데 이는 운용사가 상품 구조를 짜왔을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의 ‘꺾기’와 유사하게 TRS 대출을 해주는 대신 거래를 맡겨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결국 돈 빌려주는 사람 의중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의미한 영향력이 확인되면 증권사들도 ‘협의체 참여’ 등 책임을 피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로선 책임있는 증권사가 먼저 돈을 돌려받지 못해야 회수율도 높아진다. 이에 대해 판매사나 증권사들은 환매 중단 사태의 공모자 혹은 방조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점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TRS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게 할 법적인 근거는 없지만 얼마나 깊숙하게 관여했느냐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어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 손해배상 청구 외에 계약 자체를 문제삼는 방안도 있다. 판매회사를 상대로 계약을 취소하고 부당이득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방안이다. 민법에 따라 중요한 착오가 있었거나,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고, 원인 없이 이익을 본 자는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 투자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전액을 돌려 받을 길이 열린다. 특히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폰지 사기에 연루된 상황이다.

      금융상품 투자에서 계약 취소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례는 드물다. 다만 2016년 '피닉스펀드' 사건(2016다3638 판결)에선 계약 취소가 인용된 바는 있다. 투자자들은 일부 해외 노선 인가가 난 것으로 착오하고 투자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에 대해 판매사인 우리투자증권과 업무를 위탁받은 우리은행의 귀책이 있다고 봤다. 이 때는 법원이 투자자들이 허위사실을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부주의의 과실을 묻지 않았다.

      조기에 투자금 회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감독당국은 소비자 보호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금융 투자자 보호까지 온전히 챙기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과거 동양 사태와 같이 금융 취약계층 서민들이 주요 투자자였으면 당국도 발빠르게 움직였을테지만 환매 중단된 펀드 투자자들은 대부분 고액자산가”라며 “당국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겠지만 총선 전에 새로운 문제가 비화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