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위탁 확대하라' 시달리는 韓銀ㆍKIC…후보 적고 효율성 우려
입력 2020.02.19 07:00|수정 2020.02.20 10:06
    정부, 한은·KIC 등에 해외자산 위탁 국내사 선정 '압박'
    외화 활용 투자 특성상 국내사 선정 '비효율적' 지적도
    선정할 만한 국내운용사 '미래·삼성'으로 한정적인 편
    '국부 증대'라는 재무적 관점서 해당 압박은 비합리적
    • 한국은행과 한국투자공사(KIC) 등 국내 외화시장 '큰손'들이 정부의 국내운용사 위탁 확대 압력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외화를 활용한 투자 특성상 주로 해외자산에 투자되는 만큼, 인프라 및 정보력과 해외실사 역량 등을 고려했을 때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운용사들의 글로벌 투자운용 역량을 감안하면 일부 운용사에만 위탁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점도 고민스러운 부분으로 지목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자산 위탁운용사에 국내운용사 선정을 고려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기재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국정감사 전후로 이들의 '해외운용사 의존도'에 대한 지적을 제기하며 국내사 위탁 확대 압박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투자공사에 '국내운용사 3곳에 맡긴 위탁운용액이 4억6000만달러에 불과하다'며 국부를 해외에 유출하고 있다고 국감에서 몰아붙이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지침이 하달된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등 2곳을 선정한 상태지만, 추가 확대 검토는 고려 중인 상황이다. 한국투자공사는 해를 넘겨 2월이 된 지금까지도 국내사 선정 검토를 거듭하고 있다. 능력을 갖춘 국내운용사 풀(Pool)이 좁다 보니 선뜻 선택이 쉽지 않은 게 이유다.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도 '국내운용사 선정을 위해 역량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 외에 구체적인 선정 시기 등의 계획은 밝히지 못했다.

      현재 한국은행은 4096억5000만달러(1월말 기준)의 외화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 강세로 인해 외화자산의 달러화 환산 가치가 줄었지만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수 있었던 것은, 외화자산 운용 수익이 늘어난 게 주요인이다. 한국투자공사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서 각각 781억달러, 300억달러의 외화를 위탁받아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국부펀드다. 한국투자공사의 경우 원칙적으로 국내자산에는 투자를 할 수 없다.

      한국은행과 한국투자공사 등이 위탁운용사 선정과 범위에 대해 고심하는 까닭은 '국내 금융산업발전'이란 명목과 이어진다. 외국의 국부펀드 등이 자국 금융사를 육성하는 것에 반해 설립 취지를 이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정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국민연금(NPS)이 '해외운용사만 배불린다'는 질타에 국내운용사의 해외자산 위탁 참여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장에서는 재무적 관점에서 국내운용사 위탁 확대를 압박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론적으로 '수익률 제고를 통한 국부 증대'라는 목표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국내 금융산업 발전 이바지도 중요하지만, 자산의 운용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게 먼저라는 설명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도 금융부문 위탁운용 수수료 중 국내운용사가 가져가는 비율 30%에 그친다고 지적을 받는 등 국내운용사 비중 확대와 관련해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라며 "정보의 접근성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정보력은 국내운용사가, 해외 주식시장에 대한 정보력은 해외운용사가 우위일 수밖에 없는데 '무조건 확대'는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해당 큰손들이 글로벌 투자운용 및 해외실사 역량을 가진 국내운용사를 찾는 건 '쉽지 않다'는 진단이다. 특히 해외사의 운용 인프라에 견줄만한 국내사가 손에 꼽힌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공사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38개국의 주식에 투자를 하고 있다. 앞서 외부 위탁운용의 99.04%를 해외운용사에 의존해 1000억원이 넘는 위탁운용 수수료가 해외운용사에 지급됐다며 '국내 금융산업발전을 도외시한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는데, 이 같은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해외운용사 의존도를 논하기 '애매하다'는 시각이다.

      또한 국내운용사에 위탁을 하더라도 한정적이라 '겹치기'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인프라를 갖춘 국내운용사로 인정받는 게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정도로 추려지는데, 위탁운용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중복 또는 반복될 경우 ‘편파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어서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운용사는 지역이나 특정 섹터 전략에 있어 장점도 있지만, 인프라와 경험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라며 "한국은행이나 한국투자공사나 국부를 활용해 투자하는 만큼 수익률 제고가 우선이어야 하는데, 국내운용사 발전을 위한 '요람'이 되라는 건 어폐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