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동남아에 뭉칫돈 쏟은 SK㈜…'블랙스완' 등장에 '빚 걱정'
입력 2020.03.18 07:00|수정 2020.03.19 10:44
    '투자형 지주사' 표방 후 M&A·지분투자…경기 급변 변수로
    2015년 합병 후 역대 최저 주가…'7조' 순차입금도 불안 요소
    자회사 배당·자사주 매입도 한계 명확…바이오팜 IPO 최대 과제
    재원 쌓아둔 ㈜LG 보수적 기조와 대비된다는 평가도
    • 코로나에 유가 급락까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불확실성(블랙스완)이 연이어 겹치면서 재계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지주사도 '시계 제로'에 빠졌다. 대기업 중 가장 적극적인 투자 성과를 뽐내온 SK㈜와 사실상 움직임이 없었던 ㈜LG의 평가가 경기 변화 탓에 의도치 않게 ‘역전’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SK㈜가 7조원에 달하는 순차입금 등 고질적인 '빚 부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반면 연말까지 자산매각에 집중한 ㈜LG는 조단위 현금을 통해 경기 불확실성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졌다는 설명이다.

      SK㈜는 지난 2017년 이후 '투자형 지주회사(Corporate PE)'를 표명하며 적극적인 M&A와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SK E&S와 SK이노베이션 등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볼 수 있는 에너지(셰일가스) 관련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유레카 미드스트림(1200억원·2017년), 브라조스 미드스트림(2700억원·2018년), 블루레이서 미드스트림(1700억원·2019년) 등 매년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주로 셰일가스의 이송 및 가공(G&P) 분야에 투자가 집중됐다.

      지난 2017년엔 두 달여만에 투자금의 약 10%를 배당으로 회수하는 등 업황 개선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올 초부터 급락한 국제유가와 이로 인한 셰일가스의 채산성 악화로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미국 현지 셰일가스 업체들의 주가가 급락하고 재무부담이 현실화하면서 수 년만에 상황이 뒤바뀐 셈이다. 회사는 "투자 회사들이 고객들과 장기간 안정적인 계약 구조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유가변동에 큰 영향을 받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SK그룹의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 차원에서 단행한 대규모 해외투자도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SK㈜를 포함한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 E&S 등 5개사는 지난해 베트남 내 최대 그룹인 빈그룹에 1조1500억원, 베트남 최대 식음료 그룹 마산그룹에 5500억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조대식 수펙스 의장이 투자해야 할 이유를 묻자 "마산그룹에서 나온 음료는 다 마셔봤다"고 대답한 수펙스 전략지원팀 직원이 연말 고속 승진한 일화가 그룹에서 회자했다. SK그룹은 올해도 동남아 투자법인에 계열사별로 각각 약 1억달러(약 1200억원)를 출자해 힘을 실어줄 계획이다.

    •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평가인 점을 고려해도 현재까진 성과가 신통치 않다. 특히 현지에 상장된 마산그룹의 주가는 SK그룹의 투자 시기보다 절반 수준에 그칠 정도로 급락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가 소비재 사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반등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국내에서 단행한 쏘카 투자도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SK㈜는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총 750억원가량을 투입해 쏘카의 2대주주에 올랐다. 쏘카는 이후 2018년 VCNC를 인수해 타다 서비스를 시작하며 기업가치를 빠르게 키워왔지만, 최근 여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타다의 '베이직' 서비스가 중단 위기에 처했다.

      아직까진 코로나19, 산유국간 갈등 같은 예기치 못한 대외 변수의 여파를 회사의 역량문제로 단정 짓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SK그룹이 단기간 투자회수 목적의 투자가 아닌 전략적투자자(SI)의 네트워킹 확보 차원에서 투자를 단행한 만큼 단기성과로 회사의 전략을 판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투자자 사이에선 SK㈜의 개별 투자 성패 여부를 떠나, 투자 확대에 따른 차입금 증가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회사의 순차입금 규모는 약 7조원(개별 기준)에 달한다. 매년 자회사 SK E&S로부터 대규모 배당을 끌어오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SK E&S의 과도한 배당 유출이 지속되면 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고민들이 반영돼 회사 주가는 5년 내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말 9000억원 규모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단행해 단기간 주가 부양에 성공했지만,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효과가 모두 소멸했다. CEO의 스톡옵션은 물론 성과평가(KPI)가 회사 주가와 연동된 탓에 올해 부양에 나서야하지만, 또 다시 대규모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기도 부담스런 상황이다. 결국 자회사 SK바이오팜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통해 재무부담을 완화하는 게 올 한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일각에선 SK㈜와 정반대로 순수 지주사 체제를 유지 중인 ㈜LG의 움직임과 비교한다. ㈜LG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타워 매각, LG CNS 지분 매각을 동시다발적으로 단행해 조 단위 현금을 쌓았다. 지주사 특성상 LG전자·LG화학 등 주력 계열사들의 부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경기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력 자체는 갖춰뒀다는 평가다.

      한 지주사 담당 애널리스트는 "마치 PEF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SK㈜ 사업모델이 과거엔 투자자들에 환호를 받았지만, 최근 회사가 롤모델로 삼아온 소프트뱅크의 잡음과 겹치며 이제 부채 감축 측면에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