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응 전권 쥔 산업은행, 인사적체 해소 호시절?
입력 2020.05.18 07:00|수정 2020.05.20 10:21
    1990~1992년 입행 고참급 인사 적체 심해
    부행장 자리 줄고 계열사 사장 직행도 옛말
    코로나가 반전 계기?…구조조정 전권 맡아
    조직·인력 확대 가능성…수은도 부러운 눈치
    • 산업은행은 오랜 기간 고참급 직원들의 인사 적체에 시달렸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변환점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운용할 조직을 꾸려야 하고, 구조조정 업무가 늘어나면서 관리할 기업들도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사 적체가 남 일이 아닌 금융권에서도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산업은행 내부에선 ‘90·91·92’라는 숫자가 고유명사처럼 언급된다. 입사 연도가 1990년에서 1992년인 임직원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이유다. 작년말 기준 산업은행 임직원은 3152명이다. 보통 30년간 일을 한다면 매년 100명 정도가 입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1990~1992년엔 평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인력을 채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실장급 이상의 고참급 인사들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적어지다 보니 인사 적체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빠르면 부행장에도 오를 연차인데 그 자리는 10석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구조조정부문이 본부로 축소되며 부행장 자리 하나가 줄었다. 과거엔 40대 부행장도 드물지 않았지만 이제는 50대가 아니면 넘보기 어렵다. 성주영 수석부행장(1988년 입행) 외에 다른 부행장들은 대부분 1965년 전후 출생자로 1989년에서 1992년에 산업은행에 들어왔다.

      부행장을 거친 이후, 혹은 부행장 자리 대신 갈만한 자리도 부족해졌다. 성주영 수석부행장처럼 이동걸 회장이 취임한 후 한 차례 인사를 거르며 임기가 길어진 경우도 있지만 2+1년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부행장 승진이 확실시됐을 인사들도 조직 안팎의 자리를 살펴야 할 상황이 됐다. 경력 말미에 흠이 더해지면 은행을 떠나는 사례가 늘 수밖에 없었다.

      부행장을 거친 후 계열사 사장으로 가던 관례는 옛말이 됐다. 부사장을 거친 후 사장으로 가는 그림이 자연스러워졌다. KDB캐피탈 부사장을 거쳐 수장에 오른 전영삼 사장, KDB생명 매각 중책을 맡은 백인균 수석부사장 정도면 잘 풀린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대우건설을 맡고 있는 KDB인베스트먼트는 아직까지 ‘자리 만들기용’ 이라는 시선을 완전히 벗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는 한 계열사의 본부장급 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존 인사를 무리하게 밀어내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아직 존재감이 남아있을 퇴임 직후 자문사의 고문 역할로 옮기는 사례도 많아졌다. 임금 피크제에 들어가는 인사들이 많지만 이 경우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앞으로 5년간이 가장 극심한 고참급 인사 적체를 겪을 가능성이 큰데, 코로나19 사태가 이를 해소할 기회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이 사실상 산업 구조조정의 전권을 쥐게 되면서 입지가 커졌고, 그에 따라 ‘자리’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터 산업은행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산업은행 외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40조원 규모로 운영하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이 산업은행에 설치된다. 내부에선 40~50명의 직원이 기금 부서로 옮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인력 규모로는 적어도 ‘단’이나 ‘본부’로 운영될 가능성이 큰데, 벌써부터 실장급 인사들이 기금 관리자로 거론된다. 산업은행 고위 인사는 “운영 조직을 어떻게 꾸릴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기업 관리 인력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두산그룹만 해도 관리 인력이 크게 늘었다. 당초 산업은행은 두산중공업 관리를 위한 태스크포스 성격의 소규모 조직을 꾸리고, 임금피크에 들어간 인사 1인을 경영자문역으로 파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단위 자금을 쏟아붓고, 그룹 전반의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이 중요해지면서 전담 인력을 확대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을 맡았던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두산 외에도 줄줄이 위기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굵직한 기업들이 산업은행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워크아웃이나 채권단 관리 하에 들어가는 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 직원들은 유동성 불안에 떠느니 차라리 산업은행 밑으로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산업은행은 관리 인력을 기업에 파견하게 된다. 대부분 정년이 많이 남지 않은 고참급 인사들이다. 급여는 산업은행이 부담하지만 회사가 해당 인사에 대한 차량이나 법인카드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무리한 법인카드 사용 때문에 문제가 된 인사도 있었다.

      축소됐던 구조조정 조직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동걸 회장은 구조조정 업무를 끊어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업무를 잘 수행해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이동걸 회장 역시 직원들에 기업 지원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이라면 공평한 고통 분담을 주장했을 산업은행이 최근엔 모두 안고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점에 의아함을 느끼는 민간 금융회사들도 있다.

      짐을 일부 나눠진 수출입은행에선 부러운 눈치도 느껴진다. 조직 규모나 자금력, 구조조정 역량에서 밀리다 보니 산업은행에 보조를 맞추는 수준이다. 부담은 덜 하지만 부수적인 혜택도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 한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내부에선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정국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인사 적체를 해소할 것이라며 부러워하는 기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