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테마 올라탄 국내 기업들, 현재 가치평가 무의미해졌다
입력 2020.07.16 06:53|수정 2020.07.17 10:01
    '미래 신사업 투자' 전 세계적 신드롬
    국내 4대 그룹도 AI·전기차 등 섭렵
    젊은 오너들도 기술 아닌 '생활' 강조

    시장엔 아직 '미래' 평가할 기준 없어
    방향성 예측 어려워 괴리감 커질 것
    • 이른 감이 있지만 올해 미국 증권시장의 주인공은 테슬라다. 최근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회사로 등극을 했다. 이후에도 시가총액은 계속 급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테슬라 주가가 계속 오를 수 있을지 의심하기도 했다. 이제는 주당 1300달러대인 테슬라의 주가가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시나리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테슬라의 2분기 자동차 인도물량이 시장 컨센서스보다 높게 나오자 목표주가를 올리는 증권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테슬라 투자자들은 테슬라를 단순히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율주행 같은 데이터 플랫폼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딥러닝하는, 소프트웨어가 더 강해질 테크기업이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반도체, 배터리 등 하드웨어 내재화도 진행 중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끊임없이 미래를 제시하고 투자자들은 ‘팬덤’을 방불케한다.

      신산업이 펼쳐질 미래. 이 테마는 전세계적인 신드롬이 됐고 국내 기업들도 그 흐름에 올라 탔다. 특히 삼성·현대자동차·SK·LG, 이른바 빅4 그룹이 그 중심에 있다. 이들 그룹의 공통점은 바이오, AI, 전기차, 친환경 등 미래 관련 사업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벌의 문어발 확장이라고 지적받던 신사업 확장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그리고 주가 부양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펼쳐질 디지털 콘택트 시대에선 특정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본다. 사업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다양성, 연결성, 확장성을 강조하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투자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대기업들 스스로 IT기업, 스타트업, 벤처캐피탈(VC)처럼 가볍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으로 바뀌려고 한다.

      젊은 오너 경영인들은 ‘올드’한 회장님 이미지를 벗고, 전면에 나서 사업을 챙기고 있다. 컨퍼런스를 직접 주관하는 ‘FFANG’의 CEO들을 연상케 하면서 신선하게 보일 정도다. 미래를 위해선 경쟁사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차례로 만난 장면은 4대그룹의 신협력 시대를 가늠케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어느덧 우리 주변의 모든 것과 닿아있고 이것이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대기업들도 ‘기술’만이 아닌 ‘생활’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오너 경영인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며 “미래를 제시하는 그룹과 그러지 못한 그룹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이고 특히 한국의 미래 투자를 전담하는 것처럼 보이는 4대그룹의 존재감은 더 공고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을 되돌리긴 어려워졌다. 미래를 얘기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거침없이 올라가고 있다. 당장 실현 가능하기 어려운, 또는 미래사업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기업들도 일단은 ‘스마트’, ‘AI’, ‘IoT’, ‘수소’, ‘2차전지’ 같은 단어들을 꺼내든다.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한 투자자들은 “언젠가는 재조정이 올거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오버밸류에이션’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꿈 대비 주가 비율, PDR(price to dream ratio)이라는 개념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미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시장에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괴리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이다.

      일례로 네이버와 카카오 평가는 아직까지도 극명하게 갈린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네이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이어 4위다. 카카오 시가총액은 지난해 22위에서 7위로 10계단 이상 뛰어올랐다. 주식시장에선 네이버와 카카오는 IT업계를 대표하는 초우량주다. 테크기업 투자자들은 대체재가 없는 이상 이들의 주가 고공행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사업의 실체가 없는 IT기업을 아직은 신뢰하기 어렵다. 신용평가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여전히 사업적 리스크가 큰 종목이다.

      과거에 기업들을 평가했던, 특히 제조업 중심인 평가 수단들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디지털 콘택트의 급부상으로 기업들의 신사업 비중이 더 커질텐데 이들을 평가할 마땅한 기준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 개념으로만 접근하고 평가하면 지금의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네이버와 카카오는 더 이상 포털, 메신저 기업이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바이오기업들은 이미 코스피에서 대장주가 됐지만 SK바이오팜 상장은 바이오 기업 평가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장의 과도한 유동성을 감안하더라도 회사와 주관 증권사가 예상했던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현재 금융사들과 평가기관들이 갖고 있는 기업평가 기준으로는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당장 바이오기업 애널리스트들은 SK바이오팜의 적정 주가를 산정하는 리포트를 내놓기가 껄끄러워진 상태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기존 제조업의 부진이 구조적으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제조업 밸류 기준을 재조정해야 하는데 신사업 영위 기업들을 장기적 안목으로 평가하는 것은 더 어렵다”며 “트렌드가 빨리 바뀌고 사업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3년은커녕 1년 기준으로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성을 잡기도 어렵다”고 설명한다.

      말 그대로 가치평가 효력이 사라지고 예측이 무의미해진 시장은 혼란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다. 기업들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처럼 투자자들의 성향도 갈린다. 단기 투자자들의 신사업 기업 순환매 기조는 더 짙어지고 있다. 장기 투자자들은 ‘로또’처럼 터지는 신사업 종목에 들어가기도, 들어가지 않기도 애매하다.

      대기업들의 신사업 확장을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 바라볼지도 관건이다. 앞으로 기업들의 핵심기술 내재화 의지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역분쟁과 바이러스 확산에서 촉발한 보호무역 강화 기조는 고착화할 수 있다. 애플이 인텔과의 관계를 끊고 자체 CPU(중앙처리장치)와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생산, 탑재하는 것처럼 핵심기술 확보는 글로벌 기업들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규제 관점에서 보게 되면 내재화를 위한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는 내부거래 또는 일감 몰아주기 이슈로 전이될 수 있다. 이를 국내 시장에서의 독과점 및 의존도 심화로 봐야할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 강화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충분히 이해갈등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재벌개혁 의지가 강한 현 정부 하에선 부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좀 더 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