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주도권 움켜쥔 산은…불거지는 역할 충돌 우려
입력 2020.08.21 07:00|수정 2020.08.20 21:58
    금융지원·VC 설립 등 존재감 드러내는 산은
    조직개편·간접투자 확대로 생태계 주도
    영역 확대 대해 "역할 과도하다" 목소리도
    "유관 기관들이 의견 공유할 체계 필요"
    • 산업은행의 벤처육성 강화 의지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국책은행으로서 무게감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스타트업 지원에 대한 기능도 다양해지고 있어 이들을 바라보는 벤처 시장의 기대감이 커진 차였다. 다만 업무가 유사한 일부 기관들을 중심으로 산업은행의 ‘선택과 집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어 역할 충돌의 우려도 공존하는 상황이다.

      최근 산업은행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혁신기업 금융지원에 나서는 한편, 지난달 말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자회사 형태의 벤처캐피탈(VC)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하기로 결정한 사례가 주목받았다. 스타트업 보육프로그램 KDB NextONE(넥스트원), 투자유치를 유도하는 IR라운드인 KDB NextRound(넥스트라운드)와 스타트업 페어인 NextRise(넥스트라이즈)의 기능 확대에도 주력하는 모습이다.

      산업은행의 이러한 행보는 정부의 벤처 생태계 강화 정책과 더불어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바탕엔 정책과 발을 맞춘 꾸준한 조직개편이 있었다. 정권 출범 첫 해였던 2017년, 산업은행은 신산업 벤처를 지원하는 ‘혁신성장’ 정책의 이름을 딴 혁신성장금융본부(현재 부문 승격)를 설치했다. 지난해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3개실이 포함된 벤처금융본부가 산하로 신설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도 산업은행 벤처지원 업무의 중추로서 내부 직원들에게 '좋은 경력이 되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간접투자의 발빠른 확장도 현재의 영향력을 갖게 했다. 지난 2018년부터 한국성장금융과 함께한 ‘성장지원펀드’ 출자사업이 대표적이다. 첫해와 이듬해 총 6조1000억원을 조성하며 앵커 출자자 역할을 한 산업은행은 올해도 2조5000억원의 추가 펀드 조성을 진행했다.

      산업은행의 영역 확대에 대해 경계심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올해부터 산업은행이 ‘스케일업’을 강조하며 리그 명칭을 변경하고, 향후 2년간의 추가적인 성장지원펀드 사업 연장에 대한 본격적 움직임이 일자 일부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산업은행이 벤처 영역까지 주도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출자기관 관계자는 “벤처 생태계를 살린다는 의미에서 산업은행의 취지를 폄훼할 수는 없다”면서도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워낙 규모가 크고 각종 지원과 직접·간접투자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기관이다 보니 하겠다고 나서면 영향력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초부터 시장에서는 산업은행 이외에도 기업은행, 한국벤처투자, 한국성장금융, 그리고 각종 보증기금들과 민간 금융기관까지 다각도의 스타트업 지원에 한창이었다. 때문에 자금 성격과 지원 단계별 구분이 있음에도 '역할 충돌론'은 수년간 지속돼왔다.

      지난 2015년에도 산업은행이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정책금융공사를 합병하며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에 중견기업 지원을, 기업은행에 창업 초기 기업 지원을 맡기겠다”며 중재에 나선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국책은행 통합론을 직접 거론하며 논란에 서기도 했다.

      한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사실 어제 오늘 있었던 얘기도 아니고, 스타트업 지원은 워낙 관련 기관이 많다 보니 주도권을 놓고 잠재적 경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이동걸 회장 취임 이후 산업은행의 벤처 지원 의지가 워낙 선명하게 드러나다 보니 대형 VC들 시선도 그쪽으로 더 많이 쏠리고, 벤처에 전문성은 있지만 규모는 작은 기관들이 소외받은 경향도 생겨났다”고 귀뜸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동걸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행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올해 신년사와 각종 공개석상의 발언을 종합했을때, '신산업'이 유독 반복돼 언급된 것도 스타트업 지원을 산업은행 본연의 역할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자리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과 산업은행의 벤처 이해도도 상당히 높지만, 이를 보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기관들도 적지 않고 생각한다”며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한 만큼 산업은행과 여러 기관들이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협업 체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