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악덕자본 '론스타'도 안하던 거래를 하고 있다?
입력 2020.09.29 07:00|수정 2020.10.05 09:53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산은 자회사가 현대중공업 '쩐주'로 나서
    명확한 이해상충…주채권은행이 인수후보로 참여한 격
    2004~2005년에는 론스타는 물론, 산은 스스로도 피했던 사례
    '검토 안한다' 발표했다 산은 지원에 참여 결정한 현대중공업
    • "인천에 D라는 유명 음식점이 있다. 83년이나 지속된 맛집이지만 최근 빚이 늘었다. 건물주 K씨에게 진 빚이 제일 많다. 결국 음식점을 팔기로 했는데 그래도 K씨에게 진 빚을 다 갚을지 미지수다.

      어쨌든 유서 깊은 집이라 '경쟁'을 붙여서 비싸게 팔 요량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건물주 K씨의 아들이 나서 이 음식점을 사겠다고 한다. 마침 K씨와 같이 다른 사업을 영위하느라 사이가 돈독해진 H씨와 함께다. H씨는 몇차례 말을 바꾸면서 이미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주 K씨가 D식당 주인에게 "우리 아들에게 꼭 안 팔아도 된다. 편하게 하라"고 얘기해본들... 과연 D식당 주인은 눈치보지 않고 제 값에 팔 수 있을까?"

      보통 이런 상황이 SNS에 뜨면 건물주 K씨의 '갑질'에 대한 비난이 봇물 쏟아진다. 하물며 K씨가 민간인도 아니고 국가기관 고위 공무원이라면? 당장 짜르라는 여론이 빗발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두산인프라코어(D) 매각을 둘러싸고 최대 채권자 산업은행(K)의 100%자회사와 현대중공업(H)이 함께 입찰에 참여한 모습이 딱 이와 비슷하다

      악덕자본 대명사 론스타도 안하던 짓을…국책은행이 한다?

      이번 사태는 명확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에 해당된다. 시장 관계자 누구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 '악덕자본'의 대명사로 꼽혀온 론스타(Lone Star)조차도 비난을 우려해 이런 일은 피해왔다.

      2005년 외환은행이 동아건설 파산채권을 매각한 일이 있다. 당시 동아건설은 국내 1위 대한통운의 주인이었다. 이 채권을 사면 대한통운 새 주인으로 낙점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국내 상당수 대기업이 이를 노렸다.

      이때 외환은행의 주인이었던 저 유명한 론스타가 "그 채권 내가 사겠다"고 나섰다.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아들'(외환은행)이 파는 물건을 '엄마'(론스타)가 나서서 사겠다고 했으니 공정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인수후보들은 하나같이 '불공정 매각'을 문제삼았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론스타의 불법행위를 "외환은행과 공모, 업무상 비밀을 빼내는 행위 등 심각한 범죄"라고 비난했다. 결국 론스타는 입찰에 불참했다.

      그런데 지금 산업은행과 자회사 산업은행인베스트먼트(KDBI)의 행동이 이와 비슷하다.

      따져보면 산업은행 스스로도 이런 일을 조심해왔다. 현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인 대우종합기계를 2004년에 매각할 당시다. 이 무렵 산업은행 자회사인 산은캐피탈이 특정 인수후보와 출자형태로 함께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자 산업은행은 "공공기관 매각을 본사가 진행하는데 자회사가 인수자로 참여하는게 말이 되느냐"며 곧바로 이를 중단시켰다.

      똑같은 일이 2004년에는 산은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졌는데… 2020년에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진행되고 있다.

      '공정의 대명사' , '구조조정 지킴이' 였던 산은이 어쩌다?

      산업은행이 이번 정부 들어 구설수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부분 이동걸 회장 취임 후 밀어붙인 구조조정 작업의 '무리수' 때문이다.

      입찰 한번 없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넘기기로 기습발표, '정부기관이 밀어준 거래'로 낙인찍혀 글로벌 독과점 심사를 스스로 어렵게 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1년 넘게 '남탓공방'을 벌이다가 회사의 유동성 위기를 가중시켰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선'을 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공무원 조직' 비판을 들어도 공정성 이슈, 그리고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국책은행으로서 애정은 여전하다는 믿음이었다.

      이제는 이런 믿음도 슬슬 침해되는 분위기다.

      혹시 산업은행은 이번 일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는데...KDB인베스트먼트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었을까. 마침 KDBI는 설립 후 '일감' 혹은 '투자거리'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산은이 그토록 조심해온 불공정 이슈를 스스로 침해할 이유가 없어 보여서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실질적인 조율자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임을 다 알고 있다. 산은 내부에서도 이 거래를 조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갑자기 산은 100%자회사가 나서 뜬금없이 인수자로 나선 상황을 설명하려면... KDBI가 산업은행에 보고를 제대로 안해서 걸러지지 않았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행여나 산은이 정말 몰랐다면…현재 산은이란 조직의 기강이 그만큼 해이해졌다는 방증밖에 되지 않는다. KDBI 이대현 대표만 해도 산업은행에서 국제금융실, 종합기획부, 신사업추진팀 등을 맡은 경험이 풍부하고, 기획관리부문 부행장에서 산은 수석부행장까지 역임한 인물인데 이런 거래를 쉽게 용인했다는 점이 이해하기 어렵다.

      하긴... 지금 산업은행은 조직의 수장인 이동걸 회장이 연임이 결정되자마자 집권여당 전 대표의 만화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민주당 (집권) 20년 해야 한다. 가자 20년"으로 건배사를 제안하는 판국이다.

      마침 28일 이동걸 회장이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에 이번 사안에 대해 어떻게 보시느냐는 질문을 보냈다. 그러자 이동걸 회장은 "두산에 1년간 자율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제가 발언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산은이 들어간게 아니고 KDB인베스트먼트라는 구조조정 전문회사에서 하는일이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 언급 안하겠다" 라고 답했다.

      "왜 아들이 D식당 인수에 참여했어요?"라고 건물주 K씨에게 물어보니… "D식당 주인과 우리 아들이 알아서 할 일 입니다"이라고 답을 내놨다. 본인들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정말 상관없는 일로 보이는 걸까.

      투자자 우습게 여긴 현대중공업…자칫하면 산은-현중 커넥션 오인될만

      현대중공업지주도 마찬가지. 시장과 투자자를 대상으로 말을 바꾸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모양새다.

      투자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지주가 일부 대형 로펌 등을 통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한다는 언급이 여러 차례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두 달도 안된 8월초의 일이다. 이 무렵 인베스트조선이 이를 취재ㆍ보도하는 과정(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 인수후보로 거론...DICC·기업결합은 걸림돌 2020.08.03)에서 회사에 질의를 넣으니 돌아온 대답은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한다고 보도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도 있다" 였다. 불과 얼마 뒤 다른 언론에서도 이를 보도하자 현대중공업은 "인수를 검토한 일이 없다"며 8월7일 부인공시까지 냈다.

      그리고 9월말 되어서는 산업은행 100%자회사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했고 현대중공업에서는 이를 시인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회사 측에 질의했다. 그러자 홍보 책임자는 "8월 초인데 동종업계 경쟁사 상황이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맞았던 것 같고 그때는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때는 여력이 충분치 않았고 지금은 매각관련 불확실성이 줄어든터라 상황이 바뀌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시 위반에 대해 질의하자 "해명공시를 했고, (공시위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기업에게 있어 신사업 진출을 의미하는 M&A 검토는 무척 민감하다. 비밀유지가 필수다. 하지만 이럴 경우 '불확실하다'라는 미확정 공시도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상당수 대기업들이 여러 이유를 들며 "인수 검토 안했다", "매각 검토 안했다"라고 '부인공시'를 냈다가 말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물론 이들의 '말바꾸기'를 기술적(?)으로 해명 또는 해석하는 방법은 있다. 이른바 "그때는 검토 안했지만 그 이후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거짓말 한 것 아닙니다" 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이 대기업의 '수준'을 자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정사업에 대한 매각이나 인수는 큰 돈이 들면서 동시에 그룹 미래를 결정할만한 사안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를 재무ㆍ전략부문에서 내부검토하고, 시나리오를 짜고, 외부 자문을 받는다. M&A 판단 실패로 그룹 전체가 패망한 사례는 넘쳐난다.

      그러니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아요"라는 해명은....결국 현대중공업이 그룹 명운이 걸린 사안을 불과 2개월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이랬다저랬다 바꿀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전략을 짜는 회사로 보이게 만든다. 그게 아니라면 투자자들과 주주들, 시장이 어떻게 해석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안하무인식 태도로 보여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현대중공업이 M&A시장에서 비난 받은 사례는 여럿 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매각 당시, 포스코ㆍGSㆍ한화 등 쟁쟁한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본입찰에 참여했는데 써낸 가격이 후보들의 1/3에도 못미쳤다. 이를 두고 매각 측도, 다른 후보들도 현대중공업의 '미숙함' 혹은 '시장 질서 흐리기'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M&A 경험과 전략이 일천하고 그룹 의사결정이 명확하지 않은 방증이라는 해석도 많았다.

      문제는 단순히 이번 사안이 현대중공업의 '미숙함'만으로 치부되기에는 위험도가 크다는 점이다.

      이미 산업은행-현대중공업은 입찰도 없이 대우조선해양을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글로벌 독과점 심사에서 "정부가 밀어주는 거래"라는 리스크를 떠안았다. 이 와중에 산은이 주채권은행인 회사 매각에서 산은 100%자회사가 특정후보의 자금줄로 나섰다.

      이를 두고 현대중공업은 "(8월에만 해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여력이 충분치 않다고 봤는데 산은 자회사와 공동 인수로 부담을 줄이고, 매각 불확실성이 줄면서 참여를 한 거다"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이 말은 누가 읽어도 "산은 자회사가 도와주기로 나섰으니 이제 인수할 수 있게 됐어요"라는 의미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에 대한 산은의 '편의 제공'으로 인식될만한 언급이다.

      이제부터 매각 측이 현대중공업지주-KDBI 컨소시엄을 다른 후보들과 동일하게, 공정하게 대할 수 있을까.

      독과점 문제도 여전하다. 글로벌 점유율은 차치하고, 국내 점유율로는 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의 독점상황이 공정거래위원회 독과점 심사 통과가 가능하리라고 보는 이들은 드물다. 하지만 입찰과정에서든, 혹은 나중에 공정위 독과점 심사에서 현대중공업에 또 편의가 제공될까 걱정한다면 너무 과다한 생각일까.

      공교롭게도… 산업은행은 작년 설 명절 연휴 하루를 앞두고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을 넘긴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추석 명절 연휴 이틀을 앞두고 산은 자회사가 비판을 무릅쓰고 현대중공업에 M&A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나왔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결과만 놓고보면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에서 2년 연속 명절 선물을 받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