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입력 2020.10.13 07:00|수정 2020.10.14 08:50
    • 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린다.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면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밀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넘친다. 한국판 뉴딜정책을 주창하는 정부는 배터리 산업 육성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주식시장에선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에 더해 'K배터리' 관련 지수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기차 배터리는 가장 뜨거운 산업이 됐다.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 성장의 핵심이다. 원재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배터리의 성능 향상, 안정적 조달, 비용 절감은 최대 화두다.

      다만 K배터리가 한국 경제의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정적 수급을 위해 완성차업체와 배터리업체 간의 합종연횡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지만 최근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은 완성차업체로 넘어가는 모양이다. 테슬라는 2017년 파나소닉과 조인트벤처(JV)를 통해 배터리셀 공장을 세웠고 올해부터는 LG화학, CATL과 계약하며 구매처를 다변화했다. 최근엔 ‘배터리 데이’를 통해 배터리 자체 생산 계획 하에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배터리 조립업체 ATW 인수 소식을 전했다.

      토요타 역시 2030년까지 약 15조원을 투입하는 배터리 기술개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세계 1위 자동차 그룹인 폭스바겐이 한국 업체 의존도를 낮추는 등 유럽 자동차업체들도 자체 배터리 투자 계획을 알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수석 부회장 주도로 국내 배터리 3사와의 협력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종국엔 현대모비스를 앞세워 여타 완성차업체들과 비슷한 내재화의 길을 걸을 것이라 점치는 분위기다.

      완성차업체들의 1차 목표는 전기차의 대중화다. 가격을 낮춰야 하고, 그 상당 부분은 배터리에서 빼야 한다.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의 주요 골자이기도 하다. 핵심 소재인 니켈 양극재 대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국내 업체들 입장에선 가격 경쟁력, 수익성 확보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봤던 중국 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간극을 좁히고 있다. 완성차업체 주도 시장이 자리잡으면 중국업체들과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 국내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지만 수익을 거두기는커녕 지금의 시장 점유율도 지키기 어려워 보인다. 전기차 시장에선 올해 중으로 중국 업체들이 점유율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K배터리'를 보고 있자니 한국의 조선업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때 국내 조선업은 호황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세계에 떠다니는 배의 상당수를 한국 조선사들이 만들었다. 이후 중국의 부상과 선박 발주 감소 가능성에 대비해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로 시선을 옮겼다. 고유가 상황에서 해양플랜트는 수주 1등 공신이었다. 핵심 기술력은 떨어졌지만 저가 수주로 채웠고 국내 업체간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대가가 혹독했다는 건 모두 목도했다. 요즘 들어 국내 업체들이 다시 세계 조선업 1위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전체 발주 규모는 이전에 비해 크게 쪼그라 들었고 중국은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기술 발전 속도는 조선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지금의 시장 점유율 자체가 의미가 없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지니는 순간 승패가 결정되고 아직 그 전쟁은 제대로 시작도 안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체 1, 3위는 18개월째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판결 이후 항소까지 이어지면 족히 3~4년은 걸릴 지루한 싸움이다. 누군가는 이기겠지만 그 때 그 승리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수많은 산업들의 흥망성쇠가 있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그렇기에 국내 업체들은 전기차 배터리라는 플랜A 외에 플랜B, 플랜C 확보가 더 중요해졌다. 기술력, 고부가가치, 마진 확보 같은 단어는 이미 첨부돼 있는 계획이어야 한다. 과거 조선사들의 출혈 경쟁처럼 각사의 ‘넥스트’가 없다면 ‘K배터리’란 단어의 수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서 ‘K’만 보고 들어간 수많은 돈은 또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