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가치 하락에 리캡 선택지 좁아진 사모펀드(PEF)
입력 2020.10.13 07:00|수정 2020.10.14 08:47
    M&A 시장 침체에 리캡 주목도 높아졌지만
    투자기업 가치 하락에 차입 확대 어려워져
    두산공작기계 리캡 난항…금융사 피로감 커
    자칫 평판 위험도…금리 인하 움직임은 분주
    •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사모펀드(PEF)들이 인수금융 자본재구조화(리캡) 카드를 꺼내기 어려워졌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본격화했고 금융사들의 피로도도 높아진 상황이다. PEF들은 당분간 차입금을 늘리기보다 차환을 통한 금리 인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년간 국내 투자시장에서 리캡은 PEF의 주요 회수 수단으로 각광 받아 왔다. 인수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이를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출자자(LP)에 배당한다. 자금을 일찍 돌려주니 내부수익률(IRR)에도 도움이 된다. 올해 초 한앤컴퍼니와 IMM PE가 각각 쌍용양회와 할리스커피 인수금융의 세 번째 리캡에 성공하는 등 한 포트폴리오에서 여러 번 리캡하는 사례도 나왔다.

      올해 M&A 시장이 침체하면서 리캡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점쳐졌지만 분주한 분위긴 아니다. SK디앤디(한앤컴퍼니), EMK(IMM인베스트먼트), 로젠택배(베어링PE) 등 유력 운용사들의 리캡 움직임이 있으나 활황세는 아니란 평가다. 리캡은 이미 여러 해 된 트렌드고, 할 만한 곳은 다 했으니 리캡 거래가 많을 수 없다는 분석이 있다.

      무엇보다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성적표가 신통치 않아 리캡하기 어려운 면이 크다. PEF의 주요 투자 대상은 전통산업의 비상장기업들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본격적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 운용사들은 포트폴리오 기업의 회수는 커녕 당장 현상 유지에 급급한 상황이다.

      두산공작기계 리캡이 대표적이다. MBK파트너스는 2018년 정점을 찍은 실적에 기대 1조원대 리캡을 단행했지만 작년 실적은 2017년 수준으로 뒷걸음질쳤다. 올해는 코로나까지 겹치며 전방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코로나가 장기화하고 있어 향후 수주 및 실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지지 않았는데 수천억원을 더 빌려 LP에 배당한다니 시장의 환영을 받기 어려웠다. 주관사들은 특급 호텔까지 빌려 대규모 설명회를 여는 등 대주단 구성에 진땀을 뺐다. 주관사조차 내부 심의를 통과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금융사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웬만한 금융사들은 운용사의 LP기도 하다. 운용사들이 LP 금융사들을 살뜰히 챙기다보니 그렇지 않은 곳들이 끼어들 틈이 많지 않다. 리캡 주선사로 뽑히더라도 혼자 대규모 실적을 쌓기는 어려워졌다. 무리한 조건을 제시해 주관사가 되는 경우엔 재매각(Sell down)을 고민해야 한다. 조단위 거래인 쌍용양회 리캡도 성사는 됐지만 재매각 작업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어두운 시절이다 보니 리캡 거래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선 차주도 리캡을 밀어붙이기 부담스럽다. 시도했다 잡음이 일거나 무산되기라도 하면 평판에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다.

      무리해서 차입금을 늘리는 것보다는 단순 리파이낸싱을 통해 금융비용이라도 아끼는 편이 안전하다. 언택트 수혜주가 아니거나 회수 전망이 불투명한 경우는 리파이낸싱으로도 만족해야 할 상황이다.

      2조원 규모의 ADT캡스 리파이낸싱은 차입금 규모를 유지하되 금리 인하에만 초점을 맞췄다. 맥쿼리PE 외에 SK텔레콤이라는 전략적투자자(SI)가 있어 굳이 빚을 늘릴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인수금융 시장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차입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춰 ‘먹을 것이 없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적어도 부담은 커지지 않았다. 투자자가 대거 몰렸고 이달 초 최종 마무리됐다.

      베인캐피탈 역시 휴젤 인수금융을 리파이낸싱했다. 휴젤은 베인캐피탈에 인수된 후 주가가 폭락하며 리파이낸싱도 쉽지 않았다. 최근 보톡스 해외 수출 확대 기대감에 주가가 많이 회복됐다. 역시 리캡을 고집하지 않은 덕에 투자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VIG파트너스는 올해 바디프랜드 상장이 불발되며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회수 시점이 불투명해진 만큼 금리라도 낮춰 후일을 도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MS PE도 장기보유 중인 모나리자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단행했다.

      IMM PE는 연내 에어퍼스트(전 린데코리아) 인수금융을 차환하기 위해 금융사들과 조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안정적인 대기업 고객이 있지만 경제 불확실성이 큰 만큼 무리해서 리캡은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 금리 등 조건을 확정해 대주단 구성에 나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