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지주 증자엔 '기대'하고 신한지주 증자는 '냉대'한 이유?
입력 2020.10.23 07:00|수정 2020.11.09 13:24
    KB는 주가 방어하고 발행목적도 뚜렷…시장 납득
    신한은 작년대비 '반값할인' 형태로 새 주주 초청
    '결국 재일교포ㆍBNP 견제 위한 증자 아니냐' 해석도
    •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KBㆍ신한이 올해 모두 자본확충을 단행했다. 6월에는 KB가 보유한 자사주 일부로 24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 발행을 알렸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이 인수해 화제가 됐다. 3개월 뒤 신한이 1조원 보통주 증자를 발표했다. 베어링ㆍ어피너티 컨소시엄이 신주를 받아간다.

      금융지주사의 동시다발적인 PEF 주주초청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양사 증자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KB는 칼라일이 미래성장 전략에 어떤 도움을 줄지 관심을 받았다. 굳이 꼽으라면 '기대감'에 가까웠다. 주가도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3만원대 중반이던 주가는 최근 4만원대를 돌파했다.

      신한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주식가치 하락은 불보듯 뻔하고 경영진 신뢰도가 바닥"이라는 거친 평을 내놨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 시기에 증자를 단행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신한이 주가 방어를 포기했다", "기존 주주를 무시하는 처사다" 등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외국인의 주식매도가 빗발쳤고, 주가는 죽죽 빠졌다. 국내 최대 규모 금융지주사면서도 현재 PBR이 0.3배 수준이다.

      두 지주사의 자본확충 방식을 따져보면 엇갈린 평가의 이유가 드러난다. 형태ㆍ주가ㆍ검토기간ㆍ목적성ㆍ주주성격 모든 면에서 차이가 확연하다.

      KB는 EB조차도 주가 신경쓰는 반면... 신한은 뚝딱 1조원대 '반값 할인행사'

      KB는 보유한 자사주를 활용했다. 2600만주가 넘는 자사주 가운데 일부인 500만주만 대상으로 삼았다. 그것도 칼라일이 직접 자사주를 인수하지 않고, 교환사채(EB)를 찍고 사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적으로는 새 주주가 초청되지만 주식 발행수 확대에 대한 기존 주주들의 충격은 확실히 덜하다.

      주가 방어 노력도 뚜렷했다. EB 발행 발표 당시 KB주가는 3만5000~6000원대. 하지만 EB의 전환가격은 주당 4만8000원이다. 즉 세계에서 돈을 제일 잘 번다는 칼라일이 "KB주가는 4만8000원보다는 더 오를 것으로 확신한다"는 신호다. 올해 금융지주사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임을 감안해도 괴리감이 크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전인 작년말 KB주가가 4만원대 중후반이었다. 즉 칼라일의 돈을 받으면서도 "이 정도 주가는 맞춰줘야 한다"고 KB가 요청한 모양새가 나온다. 이러니 KB 주주들로서는 딱히 불만을 제기하기가 어렵다.

    • 신한은 반대다. 1조원 규모 '보통주'를 신주로 찍는다. 무려 7.33%에 해당하는 신주가 새 주주에게 제공된다. 이 지분율이 얼마나 큰 수준인가 하면 국민연금을 제외하고는 명목상으로는 단일 최대주주 지위에 오를 정도다. 그만큼 기존 주주 지분은 크게 희석된다.

      게다가 신주를 건네주는 가격도 주당 2만9600원이다. 증자 발표 당시 신한 주가(2만8000원대)보다 아주 약간 높은 가격, 어찌보면 거의 시세에 가까운 가격이다. 하지만 불과 1년전 신한 주가는 4만원대에 달했다. 이 당시 IMM PE가 7500억원을 신한에 투자할때 받은 가격이 주당4만2900원이다.

      한마디로 신한은 베어링ㆍ어피너티를 초청하면서 1년 전 혹은 다른 주주들과 비교할 때 대대적인 '반값 할인행사'를 한 셈이다. 그것도 1조원 규모로. 신한 주주들이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다.

      KB는 장기간 검토후 목적까지 공시…신한은 "왜 지금 증자한다는거야"

      KB는 증자 목적성도 뚜렷했다. EB로 조달하는 2400억원 가운데 2100억원을 푸르덴셜생명 인수자금으로 쓴다고 발표했다. 사실 KB도 순수하게 푸르덴셜생명 인수때문에 자본확충을 단행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KB는 이미 1년 가까이 자본확충 방식을 검토했고 칼라일 등과도 오랜 협의를 거쳤다. 하지만 용처가 명확하고 합리적인 이유다보니 딱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반면 신한은 왜 지금 이런 대규모 증자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IR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코로나 시대의 미래 대비'라는 모호한 문구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투자 검토 기한도 길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KB와 달리 신한은 크레디트스위스(CS)를 통해 "신한 증자에 참여할만한 투자자나 펀드를 찾아달라"는 요구를 진행했다. 이후부터 구체적인 증자가 본격 검토됐다.

      주주들 '면면'도 차이가 크다.

      KB가 초청한 칼라일은 부인하기 어려운 글로벌 '빅샷'(Big Shot)'이다. 칼라일이 직접 투자한 금융사도 여럿이고 전 세계 네트워크와 오랜 업력은 유명하다. 달리 말해 KB로서도 '도움 받을 구석'이 꽤 된다는 의미다. 사실 이름값이 워낙 커 칼라일이 상장사인 KB에 지분 투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KB 위상이 입증되는 효과가 있다.

      반면 신한이 초청한 베어링ㆍ어피너티는 한ㆍ중ㆍ일을 아우르는 리즈널(Regional) PEF 운용사로 손꼽히는, 매우 뛰어난 회사들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글로벌 시장에서 칼라일의 브랜드 파워와 비교할 수준은 못된다. 신한지주만큼이나 큰 대형 금융회사에 투자해 큰 성과를 이뤄낸 트랙레코드를 자랑하기도 어렵다. 말 그대로 그냥 재무적 투자자(FI)다.

      애시당초 신한이 염두에 둔 주주는 칼라일에 비견될 유일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KKR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CS가 KKR등에도 투자의사를 타진했지만 KKR이 제시한 투자조건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한의 재일교포 주주ㆍBNP파리바 견제하기 위한 새 주주 연합군의 등장?

      이런 무리수를 둬가면서 신한이 왜 굳이 조단위 증자를 단행했을까. 그것도 코로나 사태로 금융지주사들의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바로 이 시기에?

      신한지주는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증자'라는 설명만 반복하지만 상당수 시장 관계자들이 보는 시각은 따로 있다. 바로 이번 증자가 조용병 회장을 위시한 현 경영진이 '재일교포 주주'와 '20년지기 BNP 파리바' 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결정했다는 시각이다. 즉 이들을 견제할 새 우군을 주주로 초청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신한지주는 이런 해석을 철저히 부인한다.

      KB의 경우. 주주 구성을 따져봐도 중립성을 지켜온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주가 분산돼 있다. 딱히 이사회와 경영진에 영향을 줄 대단위 '세력'을 찾기 어렵다. 다른 지주사들도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신한은 알려진대로 탄생 때부터 시작한 재일교포 주주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약 13~16%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국민연금(약 9%)과 자산운용사 블랙락(약 5%)이 있지만 이들은 FI 성격이 강하다. 그 다음 강력한 주주가 '20년 지기' BNP파리바다. 약 3.5% 지분을 들고 있다. 이후 작년에 IMM PE가 전환우선주를 투자하면서 전환시 3.5%대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런 주주 구성으로 인해 신한 경영진이 주요 의사 결정이 있을때, 혹은 회장과 행장 등의 선임 때도 제일 먼저 촉각을 기울일 곳은 늘 재일교포 주주였다. 든든한 우군이기도 하지만, 항상 눈치봐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이들의 힘을 빼고 경영진이 힘을 더 가지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분을 분산시키고, 재일교포 주주들과 견줄만한 새 주주가 등장하면 된다. 실제로 작년 IMM PE, 그리고 이번 베어링ㆍ어피너티 증자가 이뤄지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3사가 나중에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합치면 10%를 훌쩍 넘어선다. 재일교포 주주 견제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증자도 결국 이런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것이 시장에서 보는 해석이다.

      증자 발표 이후 기존 신한 주주들의 반응은 극히 날카로웠다. 이 과정에서 BNP파리바가 오랫동안 보유한 신한지주 3.5% 지분 전부를 이번에 대거 처분해버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관계자들이 발칵 뒤집히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후 BNP는 증자 대비 희석을 줄이는 차원에서 신한지주 지분율을 조금 더 늘렸다.

      현재 양사가 신한 65: BNP 35로 지분을 보유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협업관계도 정리 수순이다. 신한이 BNP의 지분 35%를 사주는 형태가 거론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매끄럽지 않은 신호가 나온다. 최근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임시주주총회에서 BNP파리바는 신한지주가 올린 안건(사업부문 양도, 배당정책, 정관개정 등)을 전부 반대해 부결시켰다. 누가봐도 양측 사이가 예전처럼 우호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신한의 이번 증자가 우호적인 반응을 얻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명분'과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히는 명분이 없다. 주주환원ㆍ배당정책 등이 일부 거론되지만 작년 대비 '반값할인행사'를 충분히 상쇄시킬 수준인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