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경쟁력 제고 시간 단축시켰지만…비메모리 '숙제' 더 커진 SK하이닉스
입력 2020.10.26 07:00|수정 2020.10.27 09:52
    이석희 사장 "낸드 사업에서 D램 지위 확보하자"
    떨어진 재무여력…비메모리 투자에는 부담
    "컨트롤러 기술 확보했지만, 장기간 시간 필요"
    • SK하이닉스와 인텔의 낸드플래시 ‘빅딜(Big Deal)’로 SK그룹의 반도체 집중 전략은 뚜렷해졌다. 낸드플래시와 D램을 ‘양 날개’로 규정짓고, 점유율을 일시에 끌어올린다는 방향은 그간 SK하이닉스의 숙고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다만 메모리 분야 투자에 대한 재무 부담이 커졌다는 점에서 비메모리 투자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는 분석이다.

      20일 SK하이닉스의 인수 발표 이후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후발 주자가 갖는 약점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며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 않은 지위를 확보하자”고 밝혔다. 사내 임직원 메시지를 통해 전달된 해당 서신 말미에는 “이미지센서(CIS)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분야도 확장하자”는 내용이 일부 포함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낸드 사업의 중요성을 수 차례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그간 다각도의 거래를 진행해왔다. 낸드플래시 강화를 위한 ‘도시바 빅딜’ 이외에도, 지난 3월 5300억원 규모의 매그나칩반도체(現 키파운드리) 파운드리 사업부 인수전에 주요 투자자(49.8%)로 참여했다. 매그나칩반도체는 과거 SK하이닉스가 경영난 끝에 매각했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문을 모체로 한다. 지난 2017년에는 파운드리 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분사하고, 이듬해에는 CIS 자회사 실리콘화일을 흡수합병 시키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한때 SK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반도체 확장 전략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대두됐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며, SK하이닉스의 지속적인 자회사 자금 지원을 예상하는 시각이 강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84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SK하이닉스가 전액 참여하기도 했다.

    • 하지만 이번 인수전을 통해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사업 강화에 10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자금조달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고, SK하이닉스의 현금성 자산은 약 5조3000억원대다. 자체 자금과 외부 차입을 통해서 인수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혔고 시장에선 SK하이닉스의 재무 상황을 감안해 재무적투자자(FI) 유치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그만큼 비메모리 투자 여력은 당분간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SK하이닉스가 매그나칩반도체 인수를 ‘단순 투자’로 선을 그었던 점, 그리고 당시 기관투자가(LP)들에게 구속력있는 회수조항(Downside Protection)을 제공하지 않았던 점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사실 SK하이닉스가 가능한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분야는 파운드리와 저용량 CIS, 드라이버IC, 파워IC 정도이며,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로 보는 게 맞다”며 “지적재산권(IP)이나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수준 외엔 방향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아, 결국 당장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힘을 더하기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확장 전략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질적인 고민거리다. 미국 업체들은 대대적인 M&A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분쟁의 재점화는 JHICC, YMTC 등 중국 업체들의 자급 체제 구축도 부추겼다. 삼성전자의 ‘2030 비메모리 1위’ 비전 선포와 133조원에 이르는 투자 예고도 이러한 배경이 자리했다. 중국과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격차가 2년뿐이라는 보수적인 관측까지 감안하면, 비메모리 투자를 더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텔과의 거래를 SK하이닉스 비메모리 사업의 미래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낸드플래시에 포함되는 ‘컨트롤러’는 반도체 회로의 데이터 처리 순서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앙처리장치(CPU) 개발과 유사한 속성이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공정 역량으로는 컨트롤러와 비메모리를 연결 짓기에 적어도 10년의 기간과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낸드플래시에 국한된 얘기긴 하지만, 컨트롤러 역량이 늘면 비메모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영역에서도 언젠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도 “이를 위해선 투자와 인력, 시간이 필요할 텐데 ‘메모리 집중’으로 인해 수년 내에는 실현이 어렵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