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경영 안착한 '삼성·현대차'...갈길 먼 '세컨티어 그룹'
입력 2020.11.19 07:00|수정 2020.11.20 14:52
    삼성은 사법 리스크, 현대차는 미래차 시장 선점 등 숙제
    현대중공업 분할 두고 총수 승계용 '일감 몰아주기' 평가
    롯데·CJ그룹, 전문경영인 장기간 전면 배치 가능성 커
    기업 투명성·개방성 요구…"세습 당위성 통하지 않을 것"
    • 이건희 회장의 별세와 정몽구 명예회장의 이사회 의장 퇴진으로 재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정의선 회장 시대가 열렸고, 삼성그룹은 내년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취임을 점치고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단위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 시장과 여론은 두 총수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부당함은 없을지 지켜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사법리스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사업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은 미래차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하고, 삼성그룹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노동조합과의 상생도 숙제다.

      두 그룹의 완전한 경영권 승계까진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다행(?)이라면 총수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고 향후 지속 기간도 길 전망이다. 과정은 복잡다단하겠지만 방향성 측면에선 불확실성이 제거된 셈이다. 투자자들은 두 오너경영인들이 제시하는 청사진을 믿고 투자하면 된다. 같은 의미로 최태원 회장이 굳건한 SK그룹, 가장 젊은 총수 구광모 회장의 영향력이 커질 LG그룹도 안정적이다.

      재계 4대그룹은 뉴노멀, 포스트 코로나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걸맞는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AI), 5G, 친환경, 바이오 등 미래 투자에 적합한 키워드가 그룹의 주력 사업과 거의 일치한다. 올해 4대그룹의 자산총액 합계는 1000조원이 넘는다. 나머지 20대 그룹의 자산총액을 합친 것보다 2배 가까이 많아, 한국 경제에서 4대그룹의 영향력은 사실상 ‘절대적’이다.

      그 아래에 있는 재계 순위 세컨티어 그룹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통적 제조업, 특히 ‘굴뚝산업’으로 표현되는 중공업 중심인 이들 그룹은 외형 확장은커녕 미래먹거리 발굴도 쉽지 않다. 이제서야 수소, 그린, AI, 로봇 등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키워드로 간판을 새로 달고 있다. 경영권 승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준비하는 그룹들이 대다수다.

      앞 세대들에 비해 경영 승계 과정을 보는 시장과 여론의 눈높이는 훨씬 높아졌다. 기업분할,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수직계열화도 기업가치 제고가 아닌, 오너일가의 경영 승계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개인, 기관, 외국인 할것없이 ‘불합리’를 외친다.

      세컨티어 그룹들 중에선 한화그룹의 승계 작업이 빠른 편이다. 차기 그룹 총수 1순위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주요 계열사를 돌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3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옛 한화S&C)을 통해 지분 승계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김동관→에이치솔루션→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한화큐셀코리아’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방산과 화학에서 태양광, 에너지로 그룹 주력도 변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일감 몰아주기는 여전히 논란 거리다. 에이치솔루션의 기업가치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한화종합화학 IPO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화 방산부문의 분산탄 사업 물적 분할에 대한 평가도 여럿 나왔다. 차후 에이치솔루션과 ㈜한화의 합병 이전에 ㈜한화의 몸집을 줄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견이 많다. 결국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투자자들의 시선은 냉랭해질 수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려는 현대중공업은 갈 길이 멀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바이오와 AI, 수소·에너지를 그룹 신성장동력의 핵심 3대 축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한 ‘미래위원회’를 발족했는데 정기선 부사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신성장동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 참여와 함께 정 부사장의 승계용 트랙레코드 쌓기 일환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형 M&A의 성사를, 그리고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사업들의 그룹 시너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이미 현대중공업 분할을 두고 총수 승계를 위한 몰아주기 의혹이 커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정기선 부사장의 ‘업적’이 많지 않은 점은 승계 정당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형제 경영, 사촌 경영으로 집단 경영체제를 유지해 온 그룹들도 변화를 맞고 있다.

      GS그룹에서 오너 3세 허태수 회장이 경영권을 쥐게 된 것은 4세들이 두드러진 경영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4세들은 저마다 사업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고 그런 가운데서도 ㈜GS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다. 허태수 회장 이후엔 계열분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일례로 허윤홍 사장이 GS건설 지분만 늘리는 이유는 부친인 허창수 전 회장을 따라 GS건설을 잇기 위한 차원으로, 또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참여는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평가다.

      두산그룹은 전통적으로 그룹 회장직 승계에서 ‘장자 상속’과 ‘형제 승계’ 원칙을 따랐다. 이를 유지할 경우 차기 그룹 회장 후보 1순위자는 박진원 부회장이 유력하다. 일각에선 그룹 내 영향력을 이유로 박정원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룹이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간 상황이라 승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만만찮다.

      사촌경영 체제인 LS그룹은 2022년쯤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점치고 있지만 '사법 리스크'가 있다. 구자홍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회장이 21조원 상당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롯데그룹과 CJ그룹의 승계 작업은 걸음마 단계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씨는 일본 롯데 계열사에 입사했다. 1986년생인 신 씨는 일본 노무라증권,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를 거쳐 그룹에 들어가 아버지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걸림돌도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임원 승진 전망이 우세한데 일본 국적의 신 씨가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경우 ‘형제의 난’으로 불거진 롯데의 국적 논란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CJ그룹은 오너 일가 개인지분이 높은 CJ올리브영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선호 전 CJ제일제당 부장 입장에선 상장을 통해 확보하는 자금은 이재현 회장의 CJ㈜ 지분을 물려받는 재원이다. 하지만 그룹 총수에 오르기까진 본인의 경영 성과를 쌓고 전과 이력을 잊게 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재계에선 롯데와 CJ 모두 가교 역할을 할 전문경영인이 장시간 전면에 배치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그만큼 경영 승계의 당위성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몇세대가 지나면서 재계의 경영권 승계 환경은 더 척박해졌다. 산업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와 대세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관점에선 재벌의 경영권 세습 당위성이 떨어진다.

      그룹 승계 후보군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신사업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IT 기업들이나 유니콘들에 비해 전환 속도는 크게 뒤쳐지고 결과를 기다릴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경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여론, 시장은 물론 내부 구성원들로부터도 승계 당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더 이상 “기업을 물려받는다”라는 공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승계 후보들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경영 수업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경영권 승계, 각종 규제와 관련해 정치권과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능력,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변수 대응도 전 세대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사회 투명성과 개방성이 확대되는 추세에서 한진그룹, 대림그룹 ‘갑질’ 논란 같은, 오너 일가의 사회공감이 떨어지는 모습도 승계 당위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시장의 힘이 커진 상황에선 명분과 능력을 갖춘 후보에게 더 많은 돈이 몰리면서 안정적인 승계를 ‘선물’할 가능성이 크다. 4대그룹은 무결하진 않지만 많은 눈치를 보고, 더 애쓰는 것도 사실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4세 경영 포기 선언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습 경영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전문 경영인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견기업들이 경영권 승계를 포기하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다”며 “승계 후보가 아직 어리거나 이제 요직을 맡은 그룹들은 조바심이 날 수 있고 그럴수록 4대그룹과 세컨티어 그룹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