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시대에도 삼성의 축은 반도체ㆍ바이오…과제는?
입력 2020.11.19 07:00|수정 2020.11.19 16:35
    삼성, 전자·바이오와 그외 그룹으로 갈려
    시스템반도체·바이오는 기술 확보 절실
    M&A로 앞당길 수 있지만 녹록지 않아
    중요도 낮은 호텔·중공업은 전망 불투명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앞으로도 삼성그룹 성장의 핵심 축은 반도체와 바이오가 될 전망이다. 두 산업에 대한 그룹 내 의존도가 절대적인 만큼 파이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더 필요해졌다. 반도체에선 메모리반도체 1위를 수성하면서 비메모리 기술도 확보해야 하고, 바이오는 개발사로서 역량을 갖추는 것이 급한 상황이다.

      삼성중공업이나 호텔신라 등 1등이 아닌 비주력 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그룹의 주력에서 밀려난 지 오래고 실적도 부진하다. 호텔신라는 올해 코로나 타격이 심각했고 회복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승계나 지배구조에서의 중요성이 크지 않아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3세 경영’이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부터 그룹을 이끌었는데 그동안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톱 체제가 공고해졌다. 그룹사 전체 시가총액이 50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두 회사가 400조원 이상을 차지한다. 그간 공들인 만큼 이재용 시대에도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거는 기대는 절대적인데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 최강자다. D램, 낸드플래시는 물론 이를 활용하는 SSD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2030년까지 비메모리(파운드리 및 시스템반도체)에서도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갈 길이 멀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수주 확대가 당면 과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최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중국 상하이에서 공개했다. 화웨이와 그에 AP를 공급하던 하이실리콘이 미국 제재에 묶인 틈을 타 중국 시장을 넓히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퀄컴, 엔비디아 등의 계약을 따냈는데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TSMC를 단기간에 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반도체사와 직접 경쟁하지 않는 TSMC는 기술이 좋고 투자도 적극적이다. 파운드리에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전이 치열한데 이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의 생산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가 돈이 있다고 원하는 만큼 설비를 갖출 순 없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유럽 출장에서 ASML을 방문했다.

      궁극적으론 시스템반도체 설계 기술이 필요하다. 메모리 시황 변동의 영향을 줄이는 한편, 더 부가가치 높은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가장 관심을 가질 곳은 자동차 전장용 반도체다. 2018년 밝힌 4대 성장사업 중 하나다. 빅딜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해는 자일링스(AMD 인수), 인텔 낸드 사업(SK하이닉스), ARM(엔비디아) 등 대형 반도체 M&A가 있었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삼성전자 비메모리의 최우선 과제는 역시 자동차 전장용 반도체 기술 확보”라면서도 “NXP, 인피니온, 르네사스 등 기업이 있지만 수십조원에 이르는 몸값은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내 2인자 격으로 부상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기술 확보에 목마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0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에 나선 후 사세를 빠르게 확장했다. 2013년 1공장(3만리터)을 시작으로 2공장(15만4000리터), 3공장(18만리터)까지 완공하며 세계 1위 CMO에 등극했다. 회사는 2025년까지 위탁개발(CDO) 분야에서도 글로벌 수위에 오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중국 바이오벤처 진퀀텀과 CDO 계약을 맺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진정한 CDO 기업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선 역시 기술 개발 역량을 갖춰야 한다. 회사는 올해 미국 바이오클러스터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에 CDO 연구개발(R&D) 센터를 열었다. 고객군을 넓히는 한편,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을 물색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바이오젠이나 머크 등 글로벌 기업이 즐비한 동부 클러스터(보스턴) 진출도 꾀하고 있다.

      바이오 역시 M&A를 통해 기술을 확보하는 편이 빠르다. 다만 기술이 이미 갖춰진 곳들은 몸값이 천정부지다. 이 때문에 초기의 소규모 기술 개발사들 투자가 현실적이다. 암이나 알츠하이머 등의 경우 의약품을 개발하기만 하면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들어 연구직원 수십 명 규모 소형 바이오 기업들의 인수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반도체와 바이오는 그룹의 역량이 총동원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 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입지를 점하고 있지 않거나, 오너 일가의 승계와 무관한 곳, 산업내 수위 업체가 아닌 곳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삼성중공업은 그룹에서 존재감이 옅어진 지 오래다. 몇 해 전엔 한 대기업에 삼성중공업 인수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육성 의지가 크지 않으니 대우조선해양 M&A에도 초대되지 못했다. 조선 빅3지만 산업 내 입지는 모호하다.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근사한 청사진을 내는데 업황이 들쑥날쑥한 상황에선 약속을 지키기 쉽지 않다. 올해는 수주 목표 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12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왔는데 3분기 영업손실 규모를 대폭 줄였다는 점 정도가 위안이다.

      삼성중공업은 그룹 지배구조에서도 중요성이 떨어진다. 금융계열사들처럼 삼성전자 지분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삼성SDS처럼 그룹 내 필수 사업이거나 오너 일가가 지분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최대주주긴 하지만 사업적으론 무관하다. 재무 상황이 악화하면 삼성전자가 최대주주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받아올 경우 지주비율 상승으로 지주사로 강제전환될 수 있다. 삼성물산이 덩치를 키우기 위해 삼성중공업 등 계열사와 합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합병 트라우마’가 있는 삼성그룹이 합병 카드를 쉽게 꺼내들긴 어려울 전망이다.

      호텔신라도 삼성중공업의 입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룹의 핵심 사업 역량과도 승계와도 큰 관계가 없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실적까지 크게 꺾였다.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냈다. 몇 년 간은 코로나 이전 실적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부진 사장이 지금까지 경영을 잘 이끌어온 만큼 계열분리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이 사장은 호텔신라 지분이 없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도를 공고히 할 상황에 분리 작업에 나서긴 조심스럽다.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옛 제일모직) 사장은 2019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자본시장의 관심은 삼성발 빅딜 여부다. 삼성그룹과 거래했던 자문사들엔 어떤 매물이 나올 것인지 문의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6년전 경영 전면에 나선 후 한화, 롯데그룹과 빅딜을 했다. 안고 갈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이 명확해 지는 상황이라 또 한번 결단이 내려질 지 시선이 모이고 있다.

      한 외국계 IB 임원은 “삼성에서 금융계열사들은 삼성전자 지분 보유 이상의 의미가 없어 승계가 마무리되면 언제든 매물로 나올 수 있다”며 “그 외에 실적이 꺾이거나 그룹에 꼭 필요하지 않은 기업들은 모두 잠재 매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