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당선이 앞당길 ESG 시대…손익계산 복잡해진 기업들
입력 2020.11.20 07:00|수정 2020.11.19 16:19
    정치적 올바름 슬로건…ESG로 구현될 듯
    특히 친환경 강조…전기차·배터리 등 수혜
    기업들 변화해야 하지만 정책 변수 많아
    ‘미국우선주의’에 관세 장벽 강화도 고민
    •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우리 기업들도 이후 미칠 영향 분석에 분주해졌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을 앞세워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 정부에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 정책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친환경 노선을 타기 시작한 기업들은 수혜가 예상되고, 아직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ESG가 모든 국가와 기업에 불편부당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는 많지 않다. 자국 기업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으로선 미국이 세계 각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도 중요 변수다. 트럼프 정부 때와 결은 달라도 기업들의 손익계산 고민은 이어질 전망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PC를 화두로 꺼내들었다. PC는 미국 내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것이 올바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불평등 상황이 심각한 상황에선 ‘건전한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이는 ESG 정책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환경과 이해관계자 이익을 고려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ESG 영역으로의 자금 유입을 탐탁지 않아했던 트럼프 정부와 대비된다.

      워낙 양쪽의 색채가 극명히 갈렸다 보니 우리 기업들도 바이든 당선이 경영에 미칠 영향을 다시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거대 시장인 미국을 잡고, 세계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ESG 경영을 강화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ESG 중에서도 환경(E) 문제다. 코로나 확산과 급격한 기후 변화로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트럼프는 ‘플라스틱 빨대를 마음껏 쓰자’고 주장하며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는데 바이든은 취임 즉시 협약에 복귀하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도 ‘친환경 대 반환경’ 구도였다. 글로벌 정책 공조를 위해선 ‘친환경’ 노선의 유럽과 척을 질 필요가 없다.

      바이든이 내놓은 공약에서도 친환경 의지가 드러난다. 청정에너지 등 신산업 연구개발에 3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청정에너지 인프라 분야엔 4년간 2조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2035년까지 발전소 탄소 배출을 제거하고, 발전의 100%를 청정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광, 풍력발전에 대규모 투자도 약속했다. 탄소 경제에서 비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내 기업 중 수혜를 입을 곳으로는 탄소 절감과 직접 연계된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 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그린 뉴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함에 따라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기업도 혜택을 볼 전망이다. 친환경 행보가 늦었던 기업들은 이제라도 분주히 움직여야 하지만 고민할 요소가 많다.

      국내 ESG 전문기관 대표는 “미국에선 건전하지 못한 자본이 미국 내 불평등을 엄청나게 심화시켰다는 반성이 많고 결국 기업들도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ESG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는 기업들만 투자를 받고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대기업 중에선 SK그룹의 행보가 바이든의 대선 공약 색채에 잘 부합된다. 최태원 회장은 사업의 내용보다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가치에 힘을 싣고 있다. SK㈜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8개사는 이달 들어 국내 처음으로 한국 RE100위원회에 가입 신청서를 냈다.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RE)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효과 중 하나로 저전력 SSD 공급을 통한 탄소 절감을 꼽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SK E&S·SK가스 등은 지금은 RE100에 빠져 있지만 결국 이 대열에 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SK루브리컨츠, 도시가스 사업, 가스충전소 등도 장기적으로는 ‘반환경’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교통 정리가 불가피하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사업을 키우려면 다른 탄소 에너지 사업과 절연해야 할 필요성이 거론된다.

      삼성그룹도 1992년 삼성환경선언, 2009년 녹색경영 선포 등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이사회에서 ‘탈석탄’ 방침을 정했다. 단 기존의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유럽계 투자기관들의 경고를 받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로 RE100 가입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핵심 글로벌 고객사들이 RE100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어 마냥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만으로 막대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는 고심하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는 수십 년 공들인 ‘수소 경제’가 빛을 볼 가능성이 커졌다. 단, 친환경 자동차로 전환할 때 줄어드는 탄소와, 이에 들어갈 수소와 전기를 만들며 발생할 탄소의 양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태양광 시장에서 성과를 내온 한화그룹은 미국 내 존재감을 더 알리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KB금융그룹이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는 등 금융업계도 탄소 중립 행보에 가담했다. 금융사의 ESG 관련 채권 발행도 크게 느는 추세다.

    • 바이든의 공약과 세계적 흐름을 따질 때 우리 기업들이 ESG 강화에 속도를 내야 하는 것은 자명해보이지만 고려해야 할 요소는 적지 않다.

      코로나 확산세가 가장 큰 변수다. 백신 개발 기대감이 커지고는 있지만 미국의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다. PC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 최적화한 개념일 뿐 모든 나라에 공히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미국 정부는 자국과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택적 올바름’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정책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 때의 제조업 강화 프로그램이나, 폐기하겠다 밝힌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와도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최근 미국에서 파운드리 인력 채용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선이 있다. 지금껏 그랬듯 미국서 사업을 키우려면 미국 내 고용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환경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에 탄소조정세(carbon adjustment fees)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역정책과 기후목표를 분리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탄소조정세가 또다른 무역 장벽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환경 부담이 크지 않은 후진국에서 싸게 생산한 물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을 활용해 약달러 및 수출 강화 기조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경제단체에선 누가 당선돼도 우리 경제엔 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기도 했다. 일부 수출 분야의 타격도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 베트남 등과의 관계 설정도 우리 기업들이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유화적 제스처를 생각하더라도 모든 영역에서 전격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성의는 표하되 핵심 부품 공급을 제한하면 우리 기업들은 건건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대거 옮겼는데, 베트남에 대한 관세 혜택이 사라지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미국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반도체와 5G 등 영역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에 규제를 한번에 풀어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며 “베트남에 취했던 관세 혜택이 유지되느냐 여부도 우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