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인베스트먼트는 한국판 '버크셔해서웨이'?
입력 2020.12.14 07:00|수정 2020.12.15 10:22
    • 인수합병(M&A) 시장에서 KDB인베스트먼트(KDBI)의 거침없는 행보는 화제이자 논란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서 현대중공업과 손을 잡은 KDBI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진중공업 인수전에서도 유력한 인수 후보다.

      KDBI가 여느 재무적 투자자(FI) 또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라면 논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 있는 시장 참여자, '레인메이커(rainmaker)'라는 칭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KDBI의 지분 100%를 들고 있는 모회사가 산업은행이라는 점, 이거 하나다.

      딜(Deal)이 시작될 때부터 '셀프 매각' 논란은 예견됐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전의 경우 현대중공업과 KDBI가 초반부터 이미 인수자로 내정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시장에선 KDBI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산업은행이 매도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자회사인 KDBI가 인수 후보로 나선 것 자체가 공평하지 못하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출사표를 낸 다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들러리가 됐다고 푸념한다.

      다음주에 본입찰이 진행되는 한진중공업 매각전에선 KDBI가 전략적투자자(SI)로 나섰다. 한진중공업노동조합과 지역시민단체 등이 구성한 '한진중공업영도조선소살리기시민대책위원회'는 KDBI의 입찰 참여를 두고 "인력 감축과 사업 구조조정을 계속해 조선소 부지 개발 차익만을 챙기겠다는 파렴치한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또 KDBI가 예비 입찰 이후 진행된 실사에서도 정보가 제한된 타 예비 입찰사들과는 달리 특수관계에 따른 지위를 누렸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 측은 KDBI가 두산인프라코어, 한진중공업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KDBI의 독립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고, 산업은행과 KDBI는 별도의 기업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한다. 즉 KDBI의 인수전 참여에 산업은행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할 뿐이다.

      이에 대해서도 자본시장에선 말이 많다. 원론이 현실은 아니라는 얘기다. 100% 자회사가 모회사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사실상 정부 대변자인 KDBI가 딜에 나서면 자연스럽게 ‘갑(甲)’이 되기에 어떤 시장 참여자도 100% 공정성을 느끼긴 어렵다는 것이다. 차라리 국가적 대의를 내세우면 기분이 덜 나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은 산업은행의 한진칼 신주 인수를 반대한 강성부 KCGI 대표를 항해 '강 대표는 사모펀드 대표다. 자기 돈은 0원이다. 남의 돈 가지고 한다. 이 부분에서 책임을 물 것이냐'고 했는데 이 얘길 바꿔놓고 보면 산업은행이 지분 100% 들고 있는 KDBI의 행보는 산업은행이 주도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과 같다"고 얘기했다.

      KDBI 설립 당시 산업은행이 내놓은 KDBI 역할을 보면 다음과 같다.

      ➀ KDB인베스트먼트는 산업은행이 재무구조조정 과정 등에서 취득한 출자회사 주식을 인수하여 사업구조조정 등을 수행합니다.

      ➁ 인수한 주식을 신속하게 시장에 매각함으로써 산업은행의 출자회사를 효율적으로 관리합니다.

      ➂ 채권금융기관 중심의 구조조정 체제를 보완합니다.

      ➃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부담을 경감해 혁신성장 선도, 중소·중견기업 지원 등 산업은행 본연의 정책금융 역할 강화를 기대합니다.

      해결과제 1순위는 대우건설 매각이었다. 설립 당시부터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성공적인 매각이 KDBI의 주요 사업임을 공언해왔다. KDBI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 2억1093만1209주(50.75%)를 장외매수하여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이던 기간 동안 대우건설의 재무적 구조조정이 마무리돼 사업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KDBI가 대우건설을 신속히 매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KDBI는 대우건설을 매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7월에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이대현 KDBI 대표는 "대우건설 매각 시점은 현재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잠재 매수자들이 원하는 형태로 기업을 만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매수 희망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할 만한 또는 인수를 희망하는 마땅한 후보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우건설은 여전히 KDBI의 주력 계열사(?)로 남아있다.

      이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동수 의원은 "KDBI로의 인수 전부터 노정되어왔던 문제점에 대해 KDBI가 어떠한 해결책을 마련하여 추진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기업가치 제고 후 매각'이라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만 하고 있다"며 오히려 KDBI가 대우건설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KDBI는 오히려 두산인프라코어, 한진중공업 등 회사들을 더 사들이는, 경영참여형 PEF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시장에선 대우건설과의 시너지를 언급하며 KDBI가 한국판 '버크셔해서웨이'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본사 직원이 2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40만명에 육박하는 직원을 계열사 아래로 거느리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연차 보고서를 보면 사업영역의 여러 범주를 나눠 자회사들을 분류하고 있다. 영위 사업은 보험, 철도, 유틸리티, 에너지, 제조, 소비재, 서비스, 소매 등 광범위하다. 한국의 과거 재벌그룹과 다르지 않다.

      KDBI의 본사 직원도 버크셔해서웨이 수준이다. 그 밑에 대우건설의 임직원 수는 5000명이 넘는다. 건설업 관련 종사자들을 더하면 영향을 받는 이들은 수만명이 될 것이다. 여기에 두산인프라코어와 한진중공업까지 더해지면 KDBI는 주택건설, 플랜트, 건설기계, 조선 등 중공업 부문의 다양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돼 웬만한 재벌 그룹을 능가하는 수준이 된다. 모회사인 산업은행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항공과 해운, 그리고 스타트업 등 신성장산업 육성까지 더하면 KDB금융그룹의 영향력은 말로 못할 정도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맞긴 했지만 KDBI의 행보는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을 시장 주도 구조조정으로 바꾸겠다'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얘기와는 배치된다.

      좋게 보자면 KDBI가 PEF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모회사가 산업은행인만큼 기업가치를 높여 더 좋은 가격에 팔면 국가적으로는 결국 이득이다. 관련 산업들이 해외 자본에 팔려나가면 국부 유출, 또는 핵심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산업경쟁력을 지킨다는 명분도 있다.

      삐딱하게 보자면 한국 자본시장에서 산업은행의 존재감을 드높일 수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기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우량 그룹들의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많은 질타를 받았고 역할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큰 정부'의 재등장, 산업은행 역할 확대라는 현 시점에선 KDBI를 위시한 산업은행 출신들이 강력한 권한을 다시 쥘 수 있는 타이밍이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은행의 퇴직 임직원 '낙하산' 재취업 문제, 이른바 '산피아(산업은행+마피아)', '정피아', '관피아' 논란은 고질적인 문제인데 몸집이 커진만큼 갈 수 있는 기업은 계속 늘고 있다.

      차라리 KDBI가 한국판 버크셔해서웨이가 되면 최소한 시장 논리에 따라 기업가치 제고에 매진해 좋은 회사는 비싼 값에 팔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빨리 정리를 해 추가적인 손실을 막으면 전체적으로는 '양질'의 개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자본시장의 '리바이어던'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