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기부 발표, 왜 지금일까
입력 2021.02.15 07:00|수정 2021.02.17 10:09
    카카오 2대주주 회사에 자녀 재직
    김 의장 가족·친인척 주식 증여
    논란들 이후 재산 절반 기부 발표

    일련의 행보 "재벌들의 전형적 프로세스"
    방법·타이밍 등 불필요한 오해 불러
    •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최근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250만주 등 보유 지분 가치는 현재 10조원이 넘어 기부 재산은 5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내 대기업집단 총수가 개인 재산을 자발적으로 기부한 금액 중 역대 최대 수준이다.

      김 의장은 카카오 및 계열사 전 임직원들에게 신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기부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는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이다"

      김범수 의장의 기부 의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 받을만하다. 이미 해외에선 IT 기업 수장들이 기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는 재산 90% 기부를 선언했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주식 99% 환원을 약속했다. 최근 아마존 CEO에서 물러난 제프 베이조스 역시 자선 사업과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코로나 이후 양극화, 계층화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해지는 요즘이다. 부호들의 기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더 나은 사회와 환경을 만들기 위한 현대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도 할 수 있다.

      박수를 계속 치면서도 떠오르는 의문을 지울 수는 없다. 왜 하필 지금 기부 발표를 했을까.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

      김범수 의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케이큐브홀딩스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 지분 11.22%를 보유하고 있는 2대주주로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의장과 그의 아내, 아들, 딸이 회사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이 회사는 2019년 기준 총 임직원 수가 5명이다. 이들이 가져간 카카오 배당수익은 40억원을 웃돌고, 급여 등으로 지급된 돈도 24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김 의장 개인 소유의 회사일뿐 카카오와 업무적 연관성은 없다는 게 카카오 측의 설명이다. 케이큐브홀딩스는 대규모기업집단 '카카오'의 소속회사다. 그걸 곧이곧대로 들을 이는 많지 않다.

      주식 증여에 따른 승계 논란도 마찬가지다.

      김범수 의장은 지난달 19일 보유 중인 주식 33만주를 부인과 두 자녀를 포함한 14명의 친인척에게 증여했다. 해당일 카카오 주가를 기준으로 33만주는 1452억원어치다. 김 의장은 부인과 두 자녀에게 각 6만주(264억원 상당)를, 그 외 다른 친인척에게는 각 4200~2만5000주를 나눠줬다.

      성공신화를 일구기까지 믿고 기다려준 자신의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한, 보은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동시에 '부자 아빠, 부자 친척 있어서 부럽다'는 식의 박탈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특히 카카오 주식을 증여받은 두 자녀가 카카오 2대주주인 케이큐브홀딩스에 재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 의장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게끔 했다.

      일련의 행보가 "재벌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김 의장의 평소 소신과 배치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또 적법절차면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갑작스러운 재산 절반 기부 발표 시점은 의아하다.

      기부 방식도 정해진 게 없다. 김 의장이 그럴리는 없겠지만 언젠간 기부를 하겠다는 '기부서약'이 지켜진 사례들을 우리는 잘 보질 못했다. 대부분은 조건부 서약이라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돼버리는 게 일수다. 재단을 만들어 여기에 기부를 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어떤 문제가 발생한 후에 그룹 내 재단을 만들어 지분을 증여하는 재벌들의 전철을 수없이 봐왔다. 기부발표 전에 일부라도 먼저 구체적인 기부 행위가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카오는 의도치 않게 이번 정권에서 몸집을 더욱 빠르게 키우고 있다. 늘어나는 계열사들을 보고 있자면 금융, 모빌리티, 엔터테인먼트 등 사회 전 영역으로 뻗치고 있다. 마침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익공유제 압박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빅 뉴스'가 터졌다.

      잘 나가는 IT공룡의 오너가 소시민들은 상상도 못할 규모의 기부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여러 논란·억측들과는 무관한, 순수한 의도라는 전제 하에 김 의장의 결정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