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은 김범석 쿠팡 의장을 신뢰할 수 있을까
입력 2021.03.24 07:00|수정 2021.03.25 11:06
    •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이 있다.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직후 CNBC의 스쿼크박스(Squawk Box)와 김범석 쿠팡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CNBC 텔레비전 공식 계정에 올라와 있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공식 계정에 남아있는 인터뷰는 일부 삭제가 돼 있는데 이 영상엔 김 의장의 생각(?)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풀버전’에 가깝다.

      뉴욕타임스 딜북(Deal Book)의 창립자 겸 편집장이자 CNBC 스쿼크박스의 앵커, 앤드류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이 김범석 의장에게 던진 질문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쿠팡이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2. 소프트뱅크 등 기존 주주들이 수익 실현에 나서면 어떡하나?

      이 질문은 비단 미국 시장 참여자들뿐만 아니라 국내 투자자들도 가장 궁금해하는 것들이다. 김 의장의 대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아함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 CNBC 프로그램 스쿼드박스에서 앤드류 소킨(좌)와 인터뷰를 하는 김범석 쿠팡 의장(우) 출처 : CNBC Television 유튜브 이미지 크게보기
      CNBC 프로그램 '스쿼드박스'에서 앤드류 소킨(좌)와 인터뷰를 하는 김범석 쿠팡 의장(우)
      출처 : CNBC Television 유튜브

      구체적인 수익화 시기를 묻는 질문에 김 의장은 “장기 투자자들을 만난 게 행운이다”, “(쿠팡의) 롱텀 전략과 비전을 바꾸지 않을 것”, “그런 DNA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한다.

      본인이 예상했던 답이 나오지 않자 소킨은 잠깐 당황한다. 아마존의 수익사업이 된 AWS(아마존웹서비스)를 예로 들며 리테일 서비스만으로는 마진을 내기 쉽지 않은데 “2년? 3년? 4년?” 언제쯤 수익을 낼 수 있을지, 투자자들에게 뭐라고 얘기할 건지를 다시 묻는다. 김 의장의 대답은 앞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기 투자자 입장에선 쿠팡이 올바른 회사가 아닐지 모르지만 장기 투자 관점에선 걸맞는 가치로 갚아줄 거라고 답한다.

      소킨은 “사업을 시작한지 10년도 넘었는데, 그럼 10년이면 되겠나?”고 끈질기게 묻는다. 김 의장은 쿠팡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뉴욕에 입성하게 돼 너무 흥분된다고 급하게 마무리 짓는다.

      그러자 쿠팡 지분 37%를 들고 있는 소프트뱅크가 수익 실현을 위해 매도할 수 있지 않겠냐며 앞으로 6개월, 1년간 움직임을 투자자들이 어떻게 봐야하겠냐고 소킨은 되묻는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김 의장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오래 기다려준 투자자들이 감사할 따름이고, 그들은 쿠팡의 사업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장기 투자자들은 쿠팡의 DNA를 이해하고 있고 그런 비전을 믿는 파트너들을 계속해서 모을 거라고 한다.

      대답의 핵심 단어는 ‘장기’, ‘비전’, ‘DNA’다. 상장 직후인만큼 개인적으로는 흥분되기도 할테고, 또 구체적인 숫자를 약속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맹이는 없었다. 김범석 의장의 인터뷰는 마치 미리 준비해놓은 대본에 적힌 키워드를 강조하는 데 방점을 찍은 듯처럼 보였다. 그러니 질문과 대답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소킨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하자 김 의장은 급하게 한 마디 좀 해도 되겠냐고 가로 막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여럿 기사들에 소개된 내용들이 나온다.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들 중 하나였던 한국

      GDP가 79달러에 불과했던 한국

      이제는 세계 경제 톱10의 경제 대국, 한강의 기적

      애초에 이 내용들은 인터뷰 중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김 의장이 인터뷰가 끝날 때 준비된 멘트를 급하게 쏟아내듯 한 말이다. 인터뷰 마무리에 김 의장은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끄집어낸다. 쿠팡 상장이 ‘한국의 스토리’ 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고 싶었다면서 말이다.

      미국 투자자 입장에선 쿠팡이 ‘한국의 아마존’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알긴 어렵다. 그저 쿠팡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와 현지 투자은행(IB)들이 내놓는 리포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창립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는데 인터뷰는 말 글대로 ‘두루뭉술’했다.

      김 의장의 생각처럼 기존 장기투자자들은 쿠팡을 믿고 더 기다려줄 수 있을까. 예상으로나마 수익화 시점을 알 수 없다면 새로운 장기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을까.

      미국 주식 투자 전문 매체 모틀리 풀(Motley Fool)은 ‘과연 쿠팡은 한국판 아마존일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을 아마존, JD닷컴, 메르카도리브레와 같은 거대 유통업체와 나란히 두고 비교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 쿠팡의 사업 모델, 재무 상황 등을 통해 분석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 쿠팡은 환상적인 사업이지만, 지금 투자하기에는 밸류에이션이 다소 높게 책정된 것 같다"며 "투자자들이 보다 명확한 기준과 인내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국내로 돌아와보자. 미국 IB들은 서학개미들의 쿠팡 매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게임스탑 사태’에서 드러난 서학개미들의 화력이 만만치 않음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쿠팡을 이용하는 서학개미들이 나서준다면 쿠팡의 주가 상승에 불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분히 들 만하다. 실제로 서학개미들은 쿠팡 상장 이후 6거래일 동안 순매수를 이어갔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쿠팡의 최근 주가는 주당 40달러대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상장 직후 한 껏 들떠 있었던 국내 금융시장도 조금씩 냉정함을 찾는 분위기다. 쿠팡의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평가돼 있어 “지금 가격에서 쿠팡 주식을 사는 것은 부담스럽다”, “적정 영업가치는 60조원 정도다”, “쿠팡의 실적은 아무 것도 구체화되지 않았다” 등등 이전과는 조금은 달라진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 의장의 인터뷰에 대해선 과도한 ‘국뽕’에 대한 불편함이 드러난다. 쿠팡의 무대는 한국인데 정작 김범석 의장은 노동자 사망 사건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상장 이후에도 국내 언론들과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김 의장의 국적이 미국이고 핵심 경영진은 외국인들인데 뉴욕 증권거래소에 태극기를 걸고 한강의 기적을 얘기하는 게 좀처럼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만 하다.

      또 이른바 '반쿠팡연대'가 결성되고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나오자 IT·유통 대기업들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며 인수전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커머스 전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쿠팡이 아마존처럼 절대적 시장지배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은 더 커질 뿐이다. 쿠팡 창립자의 시선은 투자자들에 비해 너무 앞서 가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