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콘텐츠를 잘 할 수 있을까?"…질문만 깊어진 전략 간담회
입력 2021.03.24 09:45|수정 2021.03.25 11:06
    간담회 열고 콘텐츠 청사진 발표했지만
    '모호한' 계획에 시장은 "그림 모르겠다"
    여전히 지배구조 상 '사업 영속성' 취약
    • KT가 콘텐츠 사업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23일 오전에 있었던 온·오프라인 ‘미디어콘텐츠 사업 전략’ 기자간담회에서 2023년까지 ▲원천 IP(지적재산권) 1000여 개 이상, 드라마 IP 100개 이상 구축 ▲100억원 규모 IP펀드 조성 ▲KT 플랫폼에 공급할 30여 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텐트폴(핵심 대작)’ 드라마로 스카이TV 시청률 순위 10위권 진입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스튜디오지니의 첫 작품도 올 3분기 내 공개를 목표로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올해 초 그룹의 ‘콘텐츠 컨트롤 타워’로 독립시킨 자회사 스튜디오지니를 중심으로 ‘K콘텐츠 황금기’를 이끌겠다는 포부다. ‘투자 선순환 구조’, ‘개방 생태계’, ‘이익공유와 창작자 육성’ 등 ‘그럴 듯한’ 청사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남을 ‘KT만의 콘텐츠 사업’이 어떤 건지에 대한 명확한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투자규모 등 중장기 계획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구현모 KT 대표는 “작품별로 제작 금액이 다르다보니 투자 금액을 정해놓는 것 보다는 고객들이 원하는 것, 글로벌에서 통할 수 있는 것들에 투자한다는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첫 오리지널 작품, 매출 목표, 외부협력 방안 등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담당 임원들은 “아직 구체적인 드라마 타이틀을 논하긴 어렵고, 다양한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 내부 검토하고 있다”, “향후 매출 목표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협업 논의중인 플랫폼 사업자는 여럿 있는데 확정시 공유하겠다” 등의 ‘두루뭉술’한 답변을 이어갔다.

      같은날 오후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도 의구심은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숫자’가 필요한 애널리스트들의 입장에선 ‘수확없는’ 간담회였다는 평이다. 자체 투자와 더불어 외부 투자자 유치, 작품별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활용, 필요시 추후 인수합병(M&A)도 추진한다는 등의 추상적인 계획만 제시됐다.

      “KT가 장기투자가 가능할까”, “KT 조직문화가 콘텐츠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 등 애널리스트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지만 ‘피해가는’ 답변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투자 계획에 관해서도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 대비 결코 떨어지지 않는 규모”라고만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KT의 콘텐츠 사업을 향한 시장의 의구심이 있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그림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 무엇보다 과연 KT가 신사업을 얼마나 영속성 있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콘텐츠 사업은 성과를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투자에 비해 성공 확률이 낮아 중장기 책임을 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수다. 구현모 KT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얼마를 쏟아붓는지도 중요하지만 설사 손실이 나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KT의 회사 규모를 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본다. 콘텐츠 사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점까지는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의 포부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KT가 매번 새 대표(회장)가 부임하면 전임자의 사업이 ‘뒤집히는’ 전적이 있는 만큼 시장의 기대는 높지 않은 분위기다. 또 통신업이라는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 특성상, 신사업에 투입되는 실무진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사업이 실패하면 내부에서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KT가 미디어 사업을 떼어내고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이석채 전 KT 회장은 ‘한국판 파라마운트’를 꿈꾸며 ‘KT미디어허브’를 설립했다. 당시 KT는 KT미디어허브를 분사하고, 김주성 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KT 미디어앤콘텐츠 부문장으로 영입해 초대 대표로 선임했다. 콘텐츠 제작·배급·유통까지 지원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며 1000억원가량의 콘텐츠 펀드조성, 중소미디어 기업 직접 투자를 병행했다. 또 당시 미디어 계열사인 싸이더스, 지니, 유스트림 등의 인프라를 모아 플랫폼을 구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룹 내 미디어 컨트롤타워의 제 역할을 못하면서 2년만에 야심은 꺾였다. 그룹 내 임원들 간의 불협화음이 계속됐고, 2014년 김주성 전 KT미디어허브 대표가 퇴사했다. 이후 차기 회장으로 취임한 황창규 전 KT 회장은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2015년 KT미디어허브를 본사로 흡수 합병했고, KT미디어허브는 결론적으로 실패한 사업으로 남았다.

      물론 당시에 비해 사업 환경은 달라졌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등장으로 콘텐츠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졌고, KT의 자체 미디어 역량도 확장했다. 다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도 어렵다. 이번에도 KT는 IP펀드를 조성해 원천 IP를 개발하고, 중소 제작사와 ‘윈-윈’할 수 있는 협력을 추진 중이며, 스토리위즈·스튜디오지니·시즌·지니·올레TV·스카이라이프·스카이TV 등 그룹 내 콘텐츠 밸류체인을 강점으로 내걸었다.

      콘텐츠 사업의 핵심은 ‘맨파워’다. 전문가들은 업계를 깊숙히 이해하는 수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콘텐츠 전문 회사가 아닌 KT가 양질의 맨파워와,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콘텐츠 제작을 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 주된 이유다.

      KT는 스튜디오지니의 콘텐츠 부문을 담당할 대표로 최근 CJ그룹에서 오랜 기간 콘텐츠 업무를 해 온 김철연 대표를 영입했다. 외부 인사가 '콘텐츠'엔 전문가여도, 그룹에서 사업을 이끌어갈 존재감을 가질 수 있냐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디어부문 담당으로 윤용필 스카이라이프TV 대표를 공동대표로 기용했지만 그룹 내 콘텐츠 역량을 한데 모을 리더십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장에서는 KT의 콘텐츠 사업에 관심이 없다”며 “콘텐츠 사업이 성과를 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손실도 감내해야하는데, KT의 지배구조상 내년 대선 이후 경영진이 교체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차라리 암호화폐 붐으로 수혜를 얻고 있는 케이뱅크를 잘 키우면 추후 KT의 기업가치나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