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실패로 끝난 JP모건의 유럽축구 침공기
입력 2021.04.22 07:00|수정 2021.04.23 10:47
    유럽 빅클럽들, UCL 대체 위해 슈퍼리그 창설 발표
    자금줄로 나선 JP모건, 7조원 넘는 돈 투자키로
    자금 지원 및 중계권 확보 등 신규 투자원 기대감
    유럽 전방위적 반대로 이탈 팀 증가 등 와해 분위기
    그래도 美 등 외부 자본들의 투자는 이제 본격화 전망
    • 현 시점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는 축구다. 이른바 ‘슈퍼리그’ 창설을 둘러싸고 유럽 축구계뿐만 아니라 각국 국민들과 정상들이 반대 목소리를 낼 정도로 정치적 이슈가 됐다.

      지난 19일 유럽의 12개 '빅클럽'은 유러피언 슈퍼리그(ESL) 출범을 공식 발표했다. 총 15개 빅클럽이 창립 구단이 되고, 매 시즌 5개 팀을 초청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를 대체하는 최상위 대회를 열겠다는 게 골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체스터시티,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첼시, 리버풀, 아스날, 토트넘 등 6개팀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선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AT마드리드 등 3팀, 이탈리아 세리아A의 유벤투스, AC밀란, 인터밀란 등 3팀이 ELS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ESL 초대 회장으로 나선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마드리드 회장은 "젊은 팬들이 더는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서 빅클럽 간의 수준 높은 대결로 관심도를 높일 필요성을 강조하며 슈퍼리그 창설 배경을 설명했다.

      슈퍼리그 우승팀 상금은 UCL 우승 상금(약 254억원)의 10배가 넘을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잇따랐다. 당장 ESL에 초기 참여하는 팀들에겐 각 4000억원의 참여비와 영원한 리그 출장을 보장했다.

      금융업계에서 슈퍼리그 창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미국 투자은행(IB) JP모건 때문이다.

      JP모건은 슈퍼리그 창설을 위해 46억파운드, 우리 돈으로 7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IB가 자국 스포츠가 아닌, 유럽 축구의 ‘전주(錢主)’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큼 새로운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JP모건이 슈퍼리그 참가 클럽에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주관 등을 전담하면서 2~3%의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리그가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말 그대로 누워서 헤엄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고객을 기다리지만 않고, 직접 투자처를 발굴해 자금 스폰서가 되겠다는 것은 ‘월스트리트의 아마존’ 표방하고 전방위적 사업 확장을 선언한 JP모건의 경영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자 글로벌 사모펀드와 은행들도 투자 기회를 엿봤다.

      방송 중계권은 JP모건에 ‘아마존의 AWS’같은 안정적인 신사업이 될 수 있다. AP통신은 “아시아와 북미 축구 팬은 물론 중계권 확보 가능성이 있는 아마존과 페이스북 등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들이 ‘슈퍼리그’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최고의 팀과 선수들이 나오는 경기들만 있는 리그에 세계 수많은 스폰서십이 따라붙는 건 당연하다.

      코로나도 한몫했다. 유럽축구는 관중 수입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코로나 이후 관중 수입은 사실상 ‘제로’가 됐고 이에 파산 위기에 빠지거나 이 때문에 비싼 선수들을 헐값에 파는 클럽들도 늘었다. 이는 슈퍼리그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빅클럽, 메가클럽들도 코로나로 인한 재정 위기에 빠져 있는 상태다. 슈퍼리그는 참여만으로도 이를 단숨해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로컬’ 중심이었던 유럽 축구를 이제 ‘글로벌’ 무대로 끌고와 OTT를 통한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양질의 경기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 예를 들면 유럽축구를 미국 메이저리그, NBA처럼 만들 수 있다면 JP모건을 위시한 미국 자본 입장에선 새로운 금광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슈퍼리그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6개 클럽의 구단주들은 모두 미국, 중동, 러시아 등 외국 자본가들이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추진될 것 같던 슈퍼리그는 ‘2일천하’로 끝나버렸다. 돈 줄이 끊길 것을 우려한 UEFA의 반대가 먹혀서는 아니었다. 유럽 전체가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구단의 팬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반대 의사를 밝혔고 유럽 정치권까지 뛰어들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SL이 축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고, 잉글랜드축구협회 회장인 윌리엄 왕세손도 슈퍼리그가 축구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며 "축구 커뮤니티 전체와 경쟁·공정성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리버 다우든 문화부 장관은 의회에 보낸 성명에서 "이 일(ESL 출범)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지배구조 개혁부터 경쟁법까지 모든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슈퍼리그는 연대와 스포츠의 가치를 위협한다”라고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독일 바이에른뮌헨과 도르트문트는 같은 이유로 애초에 슈퍼리그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압박 속에서 잉글랜드 6개팀이 슈퍼리그에서 이탈을 선언했고 유럽 각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팀들도 이탈을 고려 중이다. 슈퍼리그 창설을 밝힌지 48시간만이다.

      일각에선 그렇지 않아도 외부 자본들로 인해 유럽축구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느끼던 찰나 JP모건 등 미국 자본을 중심으로 한 슈퍼리그 창설 움직임이 반발심을 더 키웠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슈퍼리그가 와해되는 분위기다보니 JP모건의 유럽축구 시장 진출은 좌초된 듯 보인다. 하지만 외부 자본들의 투자 참여는 앞으로 더 본격화할 수 있다. 200년 가까운 유구한 역사,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콘텐츠도 없기 때문이다. 제2의, 제3의 슈퍼리그 창설 움직임은 계속 나올 수 있다. 유럽축구라는 콘텐츠를 더 넓게, 더 많이 소비시키기 위한 국경없는 자본가들의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