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 두산 채권에도 뭉칫돈...존재의미 줄어든 유동성지원기구(SPV)
입력 2021.06.01 07:00|수정 2021.06.03 10:12
    안전판 역할 했지만 효용 가치 줄어
    유동성 많고 기업도 회복
    BBB급 기업도 시장에서 조달 원활
    기안기금 상황과도 유사
    •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의 운영 만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연장 여부에 채권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저신용등급 기업의 자금 안전판으로 기여해왔지만 최근엔 효용 가치가 많이 줄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 유동성이 많은 데다 기업들의 실적도 나쁘지 않은 터라 자금 조달이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작년 5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업들의 유동성 조달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10조원 규모 SPV 설립안을 발표했다. 정부(위험흡수 재원 지원), 한국은행(유동성 공급), 산업은행(매입기구 운영) 등이 참여해 작년 7월 14일자로 SPV가 공식 출범했다. 저신용등급 기업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인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SPV는 6개월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오는 7월까지 6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기한을 연장하며 비우량채(A급 이하) 매입 비중은 기존 70%에서 75%로 늘렸다. 7월 13일 SPV 운영 만기가 돌아오니 채권업계에선 운영 기한을 다시 연장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부는 SPV 연장여부 등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SPV는 출범 후 LG이노텍(AA-), 세아제강(A+)를 시작으로 회사채를 매입했다. 현대건설(AA-), 에쓰오일(AA+) 등도 SPV 지원 속에 회사채를 원활히 발행했다. 이 외에 두산인프라코어, ㈜두산, AJ네트웍스, 한진 등도 SPV의 지원을 받았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안전판 역할을 해 채권 시장을 안정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작년말 SPV 연장을 논의할 때만 해도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기업의 자금 조달이 원활한 모습이다. 시장엔 투자처를 찾는 유동성이 많다. 웬만한 기업들은 위기 구간을 지난 후 오히려 최고 실적을 다시 쓰는 등 우려를 지워냈다.

      작년 구조조정의 복판에 서 있던 두산만 해도 시장의 시선이 바뀌었다. ㈜두산(BBB)은 작년 두 차례 회사채 수요예측 과정에서 미매각 경험을 맛봤다. 이달엔 4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는데 주문이 몰리며 발행 규모를 800억원으로 늘렸다. 발행 금리도 크게 낮췄다. 구조조정의 성과를 시장의 유동성이 화답한 모양새다.

      올해 주식시장 호황도 저신용기업 회사채 발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많아지며 공모주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하이일드 펀드는 일반 공모주 펀드와 달리 공모주 5% 우선 배정 혜택이 있다. 이 펀드는 투자자산의 45% 이상을 하이일드 채권(BBB+ 이하 회사채, A3+ 이하 단기사채)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비우량 기업에도 돈이 가게 됐다.

      한 증권사 채권투자 담당자는 “SPV가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줬는데 지금은 시장 상황이 좋아 기업들이 SPV 지원을 받기보다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편이 낫다”며 “기업들의 실적도 개선되고 있어 지금으로선 SPV 운영 기한을 굳이 연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상황도 SPV와 유사하다. 40조원 규모로 출발했는데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 기간산업 협력업체 등 외에 실적이 많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새 주인을 찾았고, 저가항공사(LCC)도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지원이 필요했던 곳은 완성차 협력사인데 반도체 대란, 쌍용자동차 회생절차 등이 얽힌 상황에선 지원하기 애매하다는 평가다. 정부 안에선 기금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워낙 지원 실적이 없으니 쓸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