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창업자가 한국 경영 손 뗀 날 벌어진 일
입력 2021.06.18 10:21|수정 2021.06.22 10:44
    • 물론 우연이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한국 쿠팡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한 17일, 쿠팡의 덕평물류센터에선 큰 화재가 발생했다. 오전에 사그라들 것 같던 불길은 정오를 기점으로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 진압을 하던 소방관이 고립됐다.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추가 안전사고 우려로 결국 중단됐다. 불은 하루 지난 18일에도 완전히 잡히지 않았고 붕괴 위험은 커졌다.

      17일 오전 11시에 쿠팡은 '쿠팡 김범석 의장, 글로벌 경영에 전념...해외 진출 계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불길이 다시 치솟기 시작한 11시55분에는 '쿠팡, 올해 국내 물류센터 신규 투자에 1조원 넘겼다!"라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뉴스 타임라인에서 쿠팡을 검색하면 김 창업자가 앞으로 글로벌 경영에 전념할 것이라는 얘기, 쿠팡이 올해 국내 물류센터 신규 투자 금액과 고용효과에 대한 자화자찬, 그리고 물류센터 화재 진압 상황이 뒤엉켰다.

      김범석 창업자가 한국 쿠팡의 이사회 의장 및 등기이사 자리를 내놓은 것과 물류센터 화재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미묘하게 엮여있다. 마침 쿠팡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회사가 안전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 발생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쿠팡에선 지난 1년 동안 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해 국회는 김범석 창업자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의 전무를 대신 보냈다.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경영 위험 요인으로 적시하기도 했다. 스스로 ESG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고, 실제로 쿠팡은 시장에서 ESG 타깃 1순위로 지목되고 있다.

      김 창업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인 작년 12월에 대표이사에서 사임을 했고 6개월만에 한국에서의 모든 공식 직위를 내려놓았다. 이로써 국내 처벌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같은 날 우연찮게도 물류센터에서 큰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콘센트 인근에 쌓인 가연성 물질에 불길이 옮겨붙어 연소가 확대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물류센터 내부에는 비닐과 포장 상자와 같은 가연물질이 많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화재 초기 당시 스프링쿨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애초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지는 물류센터 특성상 화재에 무척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진화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합동 현장 감식을 진행해 화재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달 초엔 "물류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며 쿠팡 물류센터 노조가 출범하기도 했다.

      앞으로 쿠팡은 한국에서의 성공, 미국 증시 입성을 앞세워 해외 투자에 나설테다. 글로벌 경영에 전념한다는 김범석 창업자도 이를 '무기' 삼아 또다른 투자자 유치에 열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인 뉴스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김범석 창업자는 이제 진짜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실제로 미국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모든 직위를 내려 놓은 것은 결국 국내 사건 사고로 자신이 처벌받는 것을 피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만도 하다. 법적 책임은 차치하더라도 창업자로서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과 계획이 있는지 듣고 싶지만 이젠 더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제 한국 쿠팡의 대표 및 이사회 의장은 법률적 이슈에 민첩하게 대응이 가능해보이는 김앤장 변호사 출신 강한승 대표다.

      홍보채널인 쿠팡의 뉴스룸에는 화재 사건에 대해서도, 고립된 소방관에 대해서도 한 마디가 없다. 쿠팡 관계자는 여러 언론을 통해 "다른 센터 배송업무를 분담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걱정 1순위는 '고객 이탈'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