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영향…산업 전망·기업 가치평가 바뀐다
입력 2021.06.24 07:00|수정 2021.06.25 07:48
    백신 접종률 증가로 일상 회복 기대감
    항공·영화관 등 코로나 피해주들 상승세
    “코로나 수혜주는 역으로 힘 빠질 수도”
    딜 밸류에이션에도 백신이 영향 미칠 것
    전세계적 '델다 변이' 확산은 중대 변수
    • 지난해 미국 프로농구 NBA는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 확산으로 시즌 도중에 멈춰서야 했다. 4개월 뒤 시즌이 재개됐는데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 안에 ‘NBA 버블’을 만들고 그 안에서만 잔여 경기를 치렀다. 외부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선수들은 ‘버블’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방역 수칙을 어긴 선수들은 쫓겨났다. 물론 경기장 안에 관중은 없었다.

      올해는 다르다. NBA 플레이오프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현재, 경기장엔 실제 관중들로 가득 차 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관중들의 응원 함성은 코로나 시국을 잊게 할 정도다.

      유럽은 축구로 뜨겁다. 지난해 코로나로 연기됐던 ‘유로2020’이 유럽 11개국, 11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작년엔 유럽 축구에서도 무관중 경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올해 유로2020에선 만원 관중 경기도 나오고, 마스크를 벗고 응원하는 서포터들도 속속 눈에 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질수록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의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면서 집단면역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의 백신 1차 접종률은 30%를 넘었고, 접종자가 1500만명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등 일상 회복을 꿈꾸고 있다.

      백신 확산에 시장은 더 빠르게 작동하고 있다. ‘코로나 피해주’들은 ‘포스트 코로나 회복주’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진행 중인, 또는 앞으로 있을 자본시장 거래(Deal)들도 백신 확산이 밸류에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다시 계산을 해봐야 한다.

      당장 항공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주당 1만2832원을 기록했던 대한항공의 주가는 6월10일 3만5100원을 기록, 근래 5년 중 최고점을 찍었다. 견조한 화물 시황에 여행 수요 회복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주가만 보면 코로나가 끝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고사 위기였던 저비용항공사(LCC) 업계도 숨통이 조금 트이려는 분위기다. 지난해 8월24일 7645원이었던 진에어 주가는 5월17일 2만6000원을 기록한 이후 2만원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와 오너 리스크로 한 때 파산 위기에 내몰렸던 이스타항공은 새 주인 찾기에 성공했다. '승자의 저주' 우려도 있지만 말이다.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도 JKL파트너스와 JC파트너스 등 외부 투자자를 유치했다.

      시장에선 대한항공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합치고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LCC 통합 작업까지 이뤄지면 독보적인 시장점유율과 가격결정권을 갖게 된다. 물론 연내 합병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LCC업계 전반으로는 각사가 생존을 위한 몸집 키우기, 즉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행주도 일제히 상승세다. 하나투어 주가는 작년 7월 주당 3만5300원 최저점을 찍었는데 6월 들어 9만원대를 찍었다. 모두투어도 같은 기간 1만원 이하에서 3만원대로 올라섰다. 노랑풍선, 참좋은여행도 다르지 않다.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여행업계는 내달 정부가 해외 여행자의 격리를 면제 시켜주는 ‘트래블 버블’ 협약 체결에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르면 7월부터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이라면 자가 격리없이 단체 해외여행도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트래블 버블의 과실이 모두 여행업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 자유여행의 확산과 '야놀자', '여기어때' 등 온라인 플랫폼들의 영향력 확대는 산업 환경 자체를 바꿨다. 장외시장에서 야놀자의 기업가치는 9조원을 넘어섰고, 여기어때는 유럽계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인 CVC캐피탈이 경영 중이다. 기존 여행사들은 코로나와 별개로 진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영화 상영관에는 관객들이 돌아오고 있다. 덕분에 재무악화에 허덕이던 CJ CGV도 한숨 돌렸다.

      지난해 8월 주당 1만8000원대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이달 들어 3만5000원 수준까지, 2배 가까이 상승했다. 5월에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는 누적관객수 225만명을 넘어서면서 CJ CGV의 주가 상승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7월엔 또다른 블록버스터인 마블의 ‘블랙위도우’가 개봉 대기 중이다. 주가 상승에 자신감을 얻은 CJ CGV는 지난 8일 3000억원 규모의 영구 전환사채(CB)를 발행했는데 여기에만 16조원의 유동성이 몰렸다.

      고민거리가 사라진 건 아니다.

      한국의 코로나 상황은 개선되고 있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선 여전히 큰 문제라 해외 사업의 정상화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OTT 같은 신규 플랫폼의 영향력이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매각설에 시달렸던 메가박스는 기업공개(IPO)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IPO 추진이 불투명하고, 하더라도 흥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영화관 산업에 대한 시장 평가는 더 냉정해질 수 있다.

      엔터업계는 공연 정상화를 위한 백신 확산에 기대감이 크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초 2만9800원이었던 주가가 한 달 반만에 70% 이상 오르며 5만원대를 회복했다. JYP엔터, YG엔터, 하이브 등도 모두 지난달 이후 적게는 22%, 많게는 3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엔터주의 성장 모멘텀은 공연 재개와 더불어 플랫폼 사업까지 더해지며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백신 기대감이 가장 큰 산업을 꼽자면 단연 주류 산업이다. '홈술' 문화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5인 이상 모임 금지와 영업 시간 규제는 주류업계 성장에 발목을 잡았다. 주식시장에선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모두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달 NICE신용평가가 하이트진로(A)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조정하면서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긍정적 전망을 부여하게 돼 등급 상향 가능성이 열렸다.

      백신 확산은 소비자들의 쇼핑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코로나 이후 명품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백화점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외 여행이 본격화할 경우 보복소비의 상징이 된 명품 매장의 ‘대기줄’은 짧아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해외로 나가면 현지 매장이나 면세점에선 국내처럼 매장 앞에 줄을 서거나 원하는 제품을 구하지 못해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줄어든다. 반대로 면세점 업계는 트래블 버블에 맞춰 여러 상품과 프로모션을 내놓고 있다.

      호텔·레저 산업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코로나 특수를 누린 골프장은 극심한 부킹난과 과도하게 오른 그린피 인상이 문제로 떠올랐다. 시장에선 골프장 산업의 ‘끝물’ 얘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호텔업계 역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다가 호캉스를 앞세워 단기적으로 재미를 봤지만 말 그대로 단기적 효과다. 서울에선 영업 중인 호텔들이 상당수 매물로 나오는 실정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산업이 있는 반면 원 상태로 돌아오는 산업들도 있다”며 “코로나 상황을 감안한 산업 전망 혹은 기업 밸류에이션이 이뤄졌는데 백신 접종률 증가로 집단면역 상태로 들어가면 이를 전제로 재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얘기들이 단숨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의 백신 접종률은 더 이상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 않고, 한국은 집단 면역이 가능할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델타 변이'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델타 변이는 미국과 중국, 한국 등 전 세계 74개국에서 확인됐고 특히 미국에서는 올해 가을에 델타 변이가 새로운 유행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백신 접종 확산에도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 멈추지 않는다면 셧다운이 다시 일상이 될 수 있고, 지금의 투자처 양극화 현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투자 확대는 일시적으로 끝나고 바이오, 친환경, 온라인, 메타버스, ESG처럼 코로나로 부각된 키워드에 유동성이 더 쏠릴 수 있다. 과거 금융기관의 전통적인 기업 가치 평가 산술방식도 그 수명이 다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이 되든, 유지가 되든 자본시장의 계산법은 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