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자문 내역부터 털어가는 금감원…방어권 침해·전관 밀어주기 논란
입력 2021.07.13 07:00|수정 2021.07.14 07:28
    최근 금융사-외부 법무법인 자문 내역 요구 사례 많아
    고민·위법 파악 용이하지만 ‘자기방어권’ 침해 가능성도
    방어 위해 전관 네트워크 필요…법률 비용으로 녹이기도
    • 금융감독원이 금융사들을 조사·감사할 때 법률자문 리스트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감원 입장에선 리스트를 확보하면 각종 금융사고의 책임을 따지거나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데 용이하지만, 금융사로선 자기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금융사들이 방어를 위해 전관이 있는 법무법인에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가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수년간 금융업계에 DLF 사태, 사모펀드 사태 등 비롯한 굵직한 사건 사고가 많았던 터라 주요 대형 금융사와 금감원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다. 이 외에도 금융사별 종합검사는 시기마다 이뤄지고 있다. 최근 주요 보험사들의 검사가 이뤄졌고, 하반기에도 몇몇 금융사의 검사가 예정돼 있다.

      과거 금감원은 보통 제보를 받거나 자체 조사 등으로 미리 문제점을 파악한 후 금융사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각종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금융사들을 조사할 여유가 부족하다. 수장 공백도 장기화하는 상황이라 힘이 더 빠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금융사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살필 수단이 필요하다. 최근엔 금융사에 법률자문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가 외부 법무법인들로부터 어떤 법률 의견을 들었는지를 확인하면 금융사들의 고민과 약한 고리를 파악하는 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금융사들이 법률의견을 받고도 그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면 법 위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사가 자산운용사에 펀드 상품을 만들어달라 의뢰할 경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펀드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듣고도 이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면 바로 자본시장법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보험 불완전판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수였든 고의였든 금감원의 공격을 받기 충분하다.

      다만 금융사 사이에선 금감원이 금융사와 외부 법무법인간 자문 의뢰 및 수행 내역을 달라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지적이 있다. 어떤 사업을 추진하거나 의사 결정을 할 때 외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특히 형사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은 금융사의 자기 방어권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최근 금감원이 은행, 보험, 증권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상투적으로 법률자문 내역을 달라 요구하고 있다”며 “자문 내용을 확인하면 금융사의 고민 거리나 위법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금융사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조사나 검사는 금융사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이뤄진다. 그러나 과도한 검사와 요구는 결국 다른 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금감원이 조사나 정기검사를 나오겠다고 하면 금융사들은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의 ‘예상 질문’ ‘모범 답안’ 등을 얻기 위해 대형 법무법인을 고용해 예행 연습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 비용만 수억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

      법무법인들은 법무법인대로 이런 일감을 수임하려면 인적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전관을 공들여 영입할 수밖에 없다. 대형 법무법인들엔 전직 금감원장부터 금감원 요직 출신 인사들이 즐비하다.

      법무법인에 자리잡은 금감원 출신 인사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금융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곧 금감원의 움직임이 있을 텐데 자기가 있는 법무법인에 일을 맡기면 타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사들은 애먼 돈을 직접 뿌릴 수 없으니, 법무법인에 사소한 일을 맡기면서 그보다 많은 돈을 제시해 ‘비용처리’하기도 한다.

      결국 금감원 유력 인사들이 자리를 찾아 대형 법무법인으로 가고, 금융사들은 종합감사 등의 칼날을 피하려 그 대형 법무법인을 찾고, 대형 법무법인의 면을 살려주기 위해 자문 일감을 몰아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종합감사는 전관을 위한 요식행위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문제는 금융사들이 공을 들여도 징계는 징계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조사나 검사가 있을 때마다 금융사들의 볼멘소리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