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 눈뜬 KB·신한·하나·우리은행…효과는 글쎄
입력 2021.07.16 07:00|수정 2021.07.15 18:35
    고객과 접점을 넓힐 수 있는 툴이라 판단
    일시적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
    •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는 쇼맨십 단계 같기는 해요. 은행업은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세련된 이미지를 주고 싶어하는 느낌이죠. 아직 초기 단계이기도 하고 영업점과는 크게 연관성을 못 느껴서 와 닿지는 않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

      지난 7월 3주차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연달아 메타버스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은행이 메타버스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 뒤 나온 대답이다.

      최근 은행권 화두는 단연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본뜬 3차원 가상세계를 말한다. 코로나 19 이후 비대면 활동이 확산하면서 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메타버스가 급부상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이 올해부터 급격히 성장해 2025년 관련 하드웨어 기기 매출은 약 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2일 하나은행이 메타버스 전용 플랫폼 ‘제페토’를 활용하여 가상세계에 연수원인 '하나글로벌캠퍼스'를 구현하고 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다음날 13일 권광석 우리행장도 ‘전광석화’라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가상공간내에서 MZ세대 직원들과 소통에 나섰다. 약속이라도 한 듯 14일 KB국민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연내 아바타와 가상 영업점을 활용한 다양한 메타버스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은행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공간에서의 대고객 영업과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라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은행이 메타버스를 하는 이유는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유용한 툴이라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개발팀 관계자는 “MZ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비대면으로 모든 걸 처리하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주거래 은행을 매번 찾기보다는 개별 금융상품을 찾아다녀 소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면서 “금융 자체가 딱딱하고 재미없지만 젊은 고객들이 가상공간 내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있어서 메타버스에 잘 녹여내면 하나의 소통 도구로 자리를 잡아 브랜드 충성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불과 몇 년 사이 인터넷은행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금융시장 주도권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시중은행들은 과거의 교훈을 살려 일단 메타버스라는 신문물에 발을 걸치겠다는 것이다. 은행권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당장 수익성에 도움이 되진 않아도 추후 금융사가 가상 지점을 설치하거나 프로모션 등 현장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다만 메타버스에 금융을 접목하려는 은행권의 움직임이 다소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메타버스 세계에서 대출이나 예금상품 가입이 불가능하다. 한 은행 개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상담 외에 마땅한 금융서비스가 없어도 관련법이 개정되면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인프라 구축 단계다”라고 설명했다. 달리 말하면 손에 잡히는 금융상품 가입 등은 메타버스가 아닌, 아직은 현실세계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법안이 변경돼도 실효성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개발자는 “메타버스 자체가 사실 인터넷 세계인데 그곳에서 지점을 설치하는 게 인터넷 뱅킹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물론 당장은 실효성이 없어도 장기적으로 놓고 보면 득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한 개발자는 “한번 개발만 잘해두면 실제 은행 상담원들의 수요가 적어져 결국에는 인력 비용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아울러 새로운 시장 출연이 예고된 만큼, 메타버스 마케팅은 전 세계 현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메타버스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보다는 유행에 편승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신한은행은 2012년 선불형 전자 화폐 서비스 '주머니(ZooMoney)'를 선보였지만, 출시 2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었다. 비슷한 시기에 하나은행도 전자지갑 서비스인 'N월렛'을 중단하고 카카오에 넘겼었다. 은행권은 당시 전자지갑을 이용했던 사용자가 적어 철수했다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가졌더라면 주도권이 IT업체로 손쉽게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들이 변화에 대응하고자 서비스를 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접은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제페토(메타버스 플랫폼) 필두로 은행뿐만 아니라 요즘 다른 회사들도 마케팅을 많이 하고 있어 일시적 유행에 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