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품는 중흥건설…통합 작업 험로 예고
입력 2021.07.22 07:00|수정 2021.07.21 21:12
    중흥그룹, 경기 대응력 미지수
    내부 통제·브랜드 관리 '부담'
    • 중흥건설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전국구로 도약할 기회를 갖게 됐지만 인수 후 통합 작업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인지도 차이가 크다 보니 벌써부터 작은 회사가 무리했다는 지적, 나아가 대우건설의 브랜드 가치도 하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은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내부 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매각은 해외 사업장 관리 문제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간 처우가 박했다 생각하는 노동조합에선 이번엔 제대로 대우를 받겠다는 분위기다. 중흥건설은 기존 직원들이 상실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중흥그룹은 2조원을 넘는 금액을 써내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방 건설사가 메이저 건설사를 인수하는 상황이니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사실 대우건설과 중흥그룹의 실질 체급차는 극심하지는 않다. 작년 대우건설의 매출이 중흥토건과 중흥건설 합산보다 훨씬 많지만 순이익 규모는 비슷했고, 기업집단 순위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중흥그룹은 올해 분양 사업까지 포함하면 연말엔 2조원에 가까운 현금 동원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 지원도 받을 터라 인수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 그럼에도 한 M&A에 중흥그룹 여력의 상당 부분을 쏟는 것은 위험 부담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건설업 자체가 경기를 타는 데다, 경험이 없는 해외 사업까지 챙겨야 한다. 대우건설도 건설 경기와 해외 부실에 따라 실적은 들쑥날쑥했다. 2010년말 3조2551억원이던 자본총계는 올해 1분기말 기준 2조5335억원에 불과하다. 중흥그룹이 얼마나 경기 완충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우건설은 10여년간 산업은행 관리를 받고, 다른 경쟁사와 달리 캡티브 물량도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메이저 건설사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과거 대우그룹에 있을 때부터 서울대 출신을 중용하는 등 인력 구성이 잘 갖췄고, 건설업계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자부심도 강하다. 임직원 입장에선 그보다 작은 건설사가 새 주인이 되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과거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때도 잡음이 있었다. 금호그룹의 CI를 쓸 수 없다 버텼고, 한 건물에서도 홍보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는 등 반발이 적지 않았다. 급격히 중흥그룹의 색채를 덧입히려다간 파열음이 불가피하다. 바뀐 대주주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사인데, 이 역시 큰 폭으로 진행하긴 부담스럽다.

      대우건설 노조는 19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의 이해관계에 따라 졸속 매각이 진행중이라고 비판했다. 산업은행 아래서 잃은 것이 많다는 인식이 강한 터라 앞으로도 더 강한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 일부 직급의 경우 다른 경쟁사보다 승진이 늦었다는 점에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흥그룹은 기존의 내부 인력들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래도 대우건설의 임금이나 복리후생 등이 중흥그룹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명색이 모회사인데 더 박한 처우를 받는다면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 금호그룹도 몇 년에 걸쳐 대우건설 처우에 맞춰주겠다며 내부 직원들의 불만을 달래기도 했었다.

      대우건설은 과거엔 해마다 서울대 출신 사장부터 신입 직원까지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금호그룹, 산업은행을 거치며 그런 네트워크는 사라졌다. 각 부문이 곧 개별 회사고, 각 사업장이 하나의 작은 기업이다. 각 부문의 임직원이 마음먹고 눈을 가리면 리스크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호반건설로의 매각도 막판 해외 부실 문제가 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물론 해외 부실 위험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KDB인베스트먼트 체제에서 신규 수주를 줄이기도 했고, 나이지리아와 이라크 등 지역의 사업은 원청으로 따내 부실 위험이 거의 없다. 부실 감사 책임이 커진 회계법인은 눈에 불을 켰다. 그럼에도 해외 사업 부실 위험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플랜트사업본부 직원 비중이 20%에 달하는 상황에서 해외 수주를 멈출 수도, 해외 사업에 어두은 중흥그룹이 주도적으로 수주를 관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대형 건설사 출신 투자회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은 중소형 건설사나 지방 건설사는 경쟁 상대로도 보지 않는 경향이 강한데 중흥그룹이 어떻게 대우건설을 관리할 지 의문”이라며 “해외 사업의 경우 재무 라인과 담당 사업부가 매일 챙겨도 부실이 터지기 전까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 가장 큰 고민은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유지하느냐다. 대우건설은 ‘푸르지오’라는 탑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중흥그룹은 ‘중흥S-클래스’를 앞세워 쏠쏠한 성과를 내왔는데 전국적 인지도 차이는 크다. 대우와 중흥의 브랜드 경계가 모호해진다면 2조원은 헛된 지출이 될 수 있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다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일선 건설 현장에선 같은 계열, 한 브랜드라도 지역, 사업 성격 등에 따라 자재나 마감 시공에 차이를 두는 경우가 많다. 만일 이름은 푸르지오인데 중흥S-클래스에 주로 들어갈 자재를 쓴다면 비용 절감 효과보다 브랜드 평판 하락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일부 재건축 조합들은 ‘중흥 푸르지오’를 경계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중흥그룹 입장에선 메이저 건설사들의 격전지인 수도권 공략을 위해 대우건설을 인수한 터라 중흥과 섞을 이유가 없다. 실체적 근거는 없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퍼지는 게 더 부담스럽다. 이는 오히려 경쟁 건설사들이 바랄 상황이다. 중흥그룹은 중흥S-클래스 브랜드의 자부심도 크다. 두 회사의 주택 브랜드는 별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주주 변경에 따른 영업력 저하를 걱정하기도 하는데, 건설업을 모르는 금융사에서 건설사로 주인이 바뀐 상황이다. 오히려 자재 구매를 비롯한 협상력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영업적 손실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핵심인 국내 상황을 보면, 지방 개발 붐은 끝나가고 수도권 재건축 일감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를 따로 운영해도 결국 어느 지점에선 마주칠 수밖에 없다. 지방 거점의 중흥그룹도 점차 수도권 공략을 서두르는 상황이다. 수많은 업체가 난립한 상황에서 이름난 건설사 두 곳이 합쳐진다고 업계의 경쟁 강도가 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푸르지오는 전국구 단위 사업, 중흥S-클래스는 중간 가격의 실속형 아파트에 집중하겠지만 결국 국내 주택 분야에서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 시장 잠식)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