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대선 레이스…다시 '공정'과 '불공정' 틈에 끼게 된 시장
입력 2021.07.22 07:00|수정 2021.07.23 10:33
    대선 주자들 잇따라 '공정' 언급
    대기업 급식 공정위 조사 전방으로
    "공정위는 공정한가" 우려 목소리
    대우건설 매각 '재입찰' 산은도 논란
    원칙 없는 '공정'에 기업·시장 혼란
    •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7개월 남짓 남았다. 조금은 일러 보이지만 대선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여당은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고, 제1 야당은 스스로 마땅한 후보를 내놓지 못한 채 당 밖에 있는 유력 후보들을 영입하려고 한다. 여론 조사 지지율을 떠나 대선 후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거나 빼먹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공정(公正)'이다.

      "상처받은 공정을 다시 세우겠다"

      "공정과 상식이 바로 선 대한민국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 나아갈 것"

      "공정성 확보와 전환적인 대응을 통해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400조 불로소득에 공정 과세를 해, 성장 토대를 마련하겠다"

      "공정 문제도 경제로 풀 수 있다"

      시대 정신이 '공정'을 향해 있고, 동시에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걸었던 '공정'이 여당이나 야당이 보기에 부족하거나 잘못됐다는 판단 하에 표심을 잡기 위해 더 강조하는 모양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남은 대선 레이스 기간 동안 시장(市場)과 기업들은 공정과 불공정 틈새에 끼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는 문제는 인간의 생존, 존엄성과 직결돼 있다보니 민감한 사안이다. 군 부대와 학교의 부실 급식 문제에 이어 최근엔 대기업 급식 사업이 화두로 떠올랐다. 여기에 '공정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치적 문제로 확장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삼성그룹 4개사의 사내 급식 물량 수주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던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부당지원 관련 역대 최대 과징금인 2349억원을 부과했다. 삼성웰스토리가 지원을 통해 얻은 영업이익을 외부 사업장 수주 확대에 사용했고, 이로 인해 독립 급식업체는 입찰기회 자체를 상실하는 등 공정거래질서가 저해됐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었다. 공정위는 웰스토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 일가 회사의 핵심 자금조달 창구 역할 내지는 사익 편취 경로로 판단하고 있다.

      공정위는 SK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현장 조사도 진행했다. SK그룹 주요 계열사 구내 식당 사업은 최 회장의 5촌인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전 회장 자녀 3명이 30%에 달하는 지분을 보유한 '후니드'에서 담당하고 있다. LG그룹은 업계 2위 아워홈과 수의계약을 맺고 거래를 해오고 있다. 아워홈은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에서 분리된 회사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얼마전 '남매의 난'으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구본성 전 부회장이 지분 38.6%를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급식 문제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현대차그룹이 왜 꼭 현대백화점그룹의 현대그린푸드에서 급식을 공급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조사해달라'는 게 요지다. 현대차와 현대백화점은 범현대가 일원으로 현대그린푸드는 현대차 양재동 본사, 남양 연구소, 마북 연구소와 현대건설 등에 단체 급식을 공급하고 있다.

      공정위의 조사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지적, 급식사업마저 대기업이 다 '해먹나'라는 공정위 동정론이 있는가 하면, 직원들 식사에까지 공정위가 채찍을 드는 건 지나친 개입이고 중소업체 선정이 급식 수준 저하로 이어지면 어떡하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핵심은 공정위가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느냐다.

      대기업 중심의 급식시장 문턱을 낮추기로 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이 때도 삼성웰스토리의 매출 시스템 구조를 문제 삼았다. 공정위는 8개 대기업과 오랜 기간 협의를 거쳤고,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나서 지난 4월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열었다. 삼성·현대차·LG·CJ·현대중공업·신세계·LS·현대백화점 8개 대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이런 흐름은 가속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공정위는 삼성에 검찰 고발,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조치를 부과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재판이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기업들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유도하겠다면서 시민단체 신고·국민청원을 이유로 특정 대기업들 조사에 착수해 이중 처벌, 재벌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전방위적 조사와 조치를 보면 일감 몰아주기 때문인지, 오너 일가 부당 취득 문제인지,  부실 급식 문제인지 명확한 원칙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급식 문제가 시장에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재벌 개혁 수단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공정위의 채찍은 물류, 시스템통합(SI) 사업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가 내부거래 시장의 빗장을 푸는 배경으로 기업 효율성 제고를 앞세우고 있지만, 업계에선 이런 행보가 지나친 간섭이며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대기업의 물류량을 감당할 만한 업체가 많지 않다고 한다. 기업 내부 정보를 사실상 공개해야 하는 SI사업의 개방은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고 또다른 공정성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의 고발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기소율은 반토막 났다. 2016년 50여건이었던 고발 건수는 2019년 80여건까지 늘었지만 검찰이 수사 후 기소한 비율은 같은 기간 70%에서 3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시장에서 '공정위는 공정한가?', '공정위의 원칙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산업은행도 공정성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대우조선해양 매각,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에서 잡음을 불러 일으켰는데 대우건설 매각도 논란에 휩싸였다.

      산업은행의 100% 자회사이자 대우건설 매각 측인 KDB인베스트먼트는 이번 매각에서 정식 입찰 공고를 진행하지 않았다. 원매자들을 놓치면 매각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공고 없이 제안서를 받았다는 게 KDB인베스트먼트의 설명이다. 실사기간도 짧아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고, 일부 후보들에게 과도한 편의가 주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종 후보는 2군데뿐이었다. 첫번째 입찰에서 중흥컨소시엄이 DS네트웍스 쪽보다 수천억원이나 많은 금액을 써내며 인수가 유력했지만, 중흥컨소시엄은 이에 불만을 표하며 발을 빼겠다는 뜻을 매각자에 전달했다. 이렇게 초유의 '재입찰'이 결정됐다. KDB인베스트먼트는 한 인수후보(중흥컨소시엄)가 제안을 수정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서 수정 제안서를 받았으며, 다른 후보(DS네트웍스)에도 원하면 수정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한 인수후보는 가격을 낮춰서 제시했고, 다른 후보는 높여서 제시했다.

      KDB인베스트먼트는 매각가 2조원대 금액을 지켰지만, 처음 받았던 제시안보다는 낮아진 금액을 받아들여야 했다. 일반적이라면 더 높은 가격을 받아내려고 경쟁을 붙인다. 게다가 대우건설에는 공적자금 3조2000억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오히려 금액을 깎아줬다. 어떻게든 중흥건설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국회에서도 공정성 논란이 일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재 산업은행이 조사 중에 있고, 금융위원회도 한번 살펴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업적으로는 IT·플랫폼 기업들의 대형화로 또 다른 불공정 문제들이 떠오르고 있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카카오 금융계열사들의 상장이 예고된 가운데 빅테크들의 금융업 진출에 따른 불공정 경쟁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해외 빅테크들이 결제를 중심으로 1∼2개 분야에 진출한 데 비해 카카오는 결제, 예금, 대출, 크라우드펀딩, 자산관리, 보험 등 소매금융 서비스의 전방위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하나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다양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지고 다양한 상품·서비스 개발로 산업의 효율성이 제고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빅테크의 지배적 플랫폼 구축으로 인한 불공정 경쟁, 독점적 데이터 및 기술 활용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한다. 사업 확장이 여의치 않은 기존 재계는 역차별이라고 얘기할 소지가 있다.

      한편에선 공정위가 네이버, 배달의민족, 쿠팡 등 플랫폼 전반으로 규제를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플랫폼 산업은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채권발행 등 자본시장의 돈이 가장 많이 쏠리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글로벌 기업과도 경쟁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공정위의 잣대가 어떻게 바뀔지 지켜만 봐야 한다.

      내년 대선 때까지 기업들은 여러 '공정' 이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가 고민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로 집중 포화를 맞는 재계는 '그렇다면 수직계열화 하는 것도 문제냐'라고, IT 공룡들은 '해외에선 자국 산업 육성에 팔을 걷고 있어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플랫폼 규제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서로 불만의 목소리로 가득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공정의 정의는 각기 다르지만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과도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는 것(독일 철학자 니체)"이라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정치권, 대선 주자들마다 생각하는 '공정'도 역시 다르지만 문제는 자신들의 '공정'만 옳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정을 집행하는 기관도 매번 흔들리고, 시장에서 통용될 공정의 원칙은 없는 셈이다.

      코로나 이후 더 커진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대선 레이스 7개월 동안 기업과 시장은 현 정부의 기조와 새로운 권력을 쥐려하는 유력 대선 주자들이 내놓는 공약 사이에서 잰걸음이 불가피해졌다. 정치적 사안이 됐지만 그렇다고 기업들에 면죄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젠 조금은 지겨워질 정도가 된 ESG(환경·사회·거버넌스)처럼 기업 스스로 공정해질 생각이 없다면 이렇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둘릴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떳떳하다면, 이마저도 남 얘기처럼 들릴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