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빅테크 기업 때리는 중국…韓 기업도 밸류 영향 불가피
입력 2021.08.20 07:00
    더 매서워진 빅테크 길들이기
    분배·체제 강화 등 요인 '세계적 추세'
    중국 리스크에 투자자 위축
    규제 추이 따라 국내 테크기업 가치 영향
    • 중국 정부가 자국의 빅테크 및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러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보복성 철퇴를 맞았고, 미디어 플랫폼 기업들은 국민의 정신을 흐리는 대상으로 낙인이 찍혔다. 빈부 격차 완화와 공산당 체제 공고화, 미국과의 패권 경쟁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앞으로도 대형 테크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는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정책 기조는 우리 기업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규제하는 산업은 언제든 휘청일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중국 테크기업 투자자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 등 다른 시장의 자산을 정리하거나 신규 투자를 줄인다면 기업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빅테크 길들이기는 두드러진다. 우리 테크기업들의 대형화·집중화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중국 정부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빅테크 기업과 플랫폼 기업이다. 작년 10월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금융당국의 후진성을 공개 비판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직후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은 중국·상해 상장 길이 막혔고, 중국 정부는 인터넷 플랫폼 독점 규제안을 내놨다. 알리바바는 지난 4월 반독점 위반 혐의로 3조원대 벌금을 부과받는 등 고난을 이어가고 있다. 항셍테크지수(홍콩 상장 30개 테크기업 추종 지수)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 중국 정부의 규제 칼바람은 올해 들어 더 매서워졌다. 특히 지난달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전후해 규제 조치가 쏟아졌다.

      중국 차량 공유 1위 디디추싱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이다. 디디추싱은 국가 안보 위반 혐의로 중국 사이버정보판공실(CAC)의 조사를 받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만류에도 100주년 기념일 직전 미국 증시에 상장하며 집중 표적이 됐다. 앱마켓 신규 다운로드도 금지되는 등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조사 결과에 따라 알리바바 이상의 대규모 과징금이 내려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의 ‘트럭판 우버’ 풀트럭 얼라이언스와 리쿠르팅 플랫폼 보스지핀(Boss Zhipin)도 CAC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디디추싱처럼 모두 6월 미국 증시에 입성한 곳들이다. 반면 다른 차량 공유 업체 헬로추싱은 지난달 뉴욕 증시 입성을 포기했고, 동영상 플랫폼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는 그에 앞서 해외 상장 계획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 최대 음식 배달업체 메이퇀도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배달업체에 노동자 임금 보장, 사회보험 가입 등 의무를 부과하며 비용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조단위 과징금을 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엔 중국 정부가 사교육을 사실상 금지하면서 신둥팡, 중공교육 등 사교육 기업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중국 최대 게임·엔터기업 텐센트도 수난이다. 중국 검찰은 최근 텐센트의 메신저 ‘위챗’의 청소년 모드가 청소년보호법에 위배된다며 소를 제기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인 국가시장규제국(SAMR)은 지난달 텐센트에 독점적 음악저작권을 포기하라고 지시했다. 2016년 차이나뮤직 인수에 대해서도 규정 위반이라며 과징금을 물렸다.

      이들 빅테크나 IT, 플랫폼 기업들은 강력한 네트워크와 정보력이 무기다. 기본적으로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이 기반이지만, 덩치가 커질수록 해외 투자자와 고객의 유입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모인 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은 커진다. 정보 통제에 민감한 중국 정부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지난달 자국 인터넷 기업이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면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칠 요소가 있는지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제를 내놨고, 이달엔 25개 유력 IT 기업들을 불러 데이터 보안을 강화하라 독려하기도 했다.

      한 중국 관련 M&A 전문가는 “지금 중국 공산당은 권력이 나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네트워크 기반의 기업들은 외세와의 결합이 쉽고 통제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커지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012년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몽(中國夢)의 기치를 내걸었다. 몇 해 전엔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풍족하고 편안한 사회)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중국의 성장세는 둔화했고,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심화했다.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려면 편중된 부를 이전시켜야 한다. 이 성과에 따라 시 주석 체제의 유통기한도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중국의 정책 기조가 ‘성장 우선’에서, ‘분배와 균형’으로 전환하는 이정표였다는 평가다.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사업 모델은 분배나 균형과는 거리가 있다. 먼저 헤게모니를 쥔 쪽에 고객과 부가 쏠리기 때문에, 대부분 강한 독점 혹은 과점 사업자다. 이런 기업을 눌러야 수많은 작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부의 이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대적인 가상화폐 규제도 부가 한 곳에 잠기지 않도록 위한 목적이 컸다. 배달앱 규제 역시 결국 배달 노동자의 지갑을 채우라는 취지다.

      실질이 어떻든 안보, 소비자 보호, 독과점 규제 등 중국 정부가 내걸 명분은 많다. 창업주들을 불러 압박하거나 과징금을 물리고, 형사 처벌도 할 수 있다. 관영 언론의 보도는 곧 정부의 명령이다. 언론이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고 규정하면 게임사는 곧바로 시정 조치를 내린다. 전자담배나 분유, 부동산 문제가 육아·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면 이는 곧 국민적 여론이 된다. 인터넷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큰 '팬클럽’ 문화는 집중 규제 대상이 됐다.

      중국 테크기업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가 달갑지 않지만 반발하기 어렵다. 과거 안방보험 사례처럼 중국 정부가 작정하면 제 아무리 큰 기업도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기 때문이다. 살아 남으려니 제재를 받으면서도 ‘지도에 감사하다’ 하고, 정부와 면담 후에는 대규모 기부 행렬에 동참하기도 한다. 중국 공산당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에 ‘세포 조직’을 심어 의사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기업 규제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도 한 이유로 꼽힌다. 중국은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얼마 전엔 중국이 미국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논문이 많았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중국이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라는 지적이다. 제조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패권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중국으로선 미국을 제치려면 제조업 기반이 강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빅테크 기업을 눌러야 작은 기업들이 많이 살아날 것이고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유망 제조업으로 돈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는 중국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다른 시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빅테크의 약탈적 행태가 소비자의 복리 증진이나 공정거래 질서에 반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정부와 의회가 빅테크 규제에 한 목소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플랫폼의 독점적 관행을 단속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구글의 적’이라 불리는 인사를 법무부 반독점국장으로 지명하기도 했다. 미국 하원에선 작년말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 등 빅테크의 독과점 규제 보고서가 발표됐다. 지난 6월엔 온라인 플랫폼 기업 대상 반독점규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플랫폼과 사업자간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을 분할, 강제 매각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등 수위가 강하다.

      국내 빅테크·플랫폼 기업들도 이런 전세계의 시대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플랫폼 규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테크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아래 급격히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택시호출 독점(카카오모빌리티), 과도한 금리(카카오뱅크)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의 핵심 가치가 성장에서 공정과 분배로 옮겨가면 대형 테크기업들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 테크 기업으로의 자금 유입이 원활히 이뤄질지 미지수다. 중국을 떠난 자금이 한국 빅테크·플랫폼 기업을 살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 한마디에 미국 상장 기업도 치명타를 입는다는 점이 확인된 터라 투자자들이 움직이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 플랫폼이 전세계적으로 규제받고 있으니 시장을 골라가며 상장하거나 돈을 모으기도 부담스럽다. 돈이 오지 않으면 기업가치도 오르지 않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최근 중국의 규제를 예측할 수 없다며 당분간 중국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 디디추싱, 바이트댄스 등의 주요 투자자다. 그러나 중국의 규제가 본격화한 후 주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고, 실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지역의 자산을 정리하거나 신규 투자를 줄일 수도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작년 위워크 등 투자 부진에 홍역을 앓았다. 당시 다른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는 어려울 것이란 뜻을 내비쳤고, 쿠팡 등 지분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아직 이른 상상이지만 상황에 따라선 ‘야놀자의 나스닥 상장’까지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의 영향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2018년 디디추싱에 투자하는 선구안을 보였지만, 디디추싱이 예상치 못한 변수에 흔들렸다. 국내 기업과 투자자들은 최근 중국 최대 웹툰 업체 콰이콴 투자를 마쳤는데,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 가능성을 염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크래프톤은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 리스크가 부각되며 공모 흥행에 참패했고, 상장 후 주가도 부진하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모바일' 중국 서비스 준비를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불확실성을 완전히 거두긴 어려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