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산업은행' 덕분에…DICC 원리금 소송 리스크 최대 7000억 없앤 두산
입력 2021.08.23 07:00|수정 2021.08.23 11:09
    3800억 원금…10년만에 3050억원 회수
    FI 측 2심 판결서 최대 7000억까지 인정
    결국 300억 빌린 산은에 발목잡혀
    질권 실행 압박에 울며 겨자먹기 본계약 체결
    기회비용 날리고 원금회수 실패까지
    미래·IMM·하나證 블라인드 수익률에도 빨간불
    • 길고 길었던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소송전이 막을 내린다. 최대 1조원까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DICC 투자자들은 불과 3000억원을 손에 쥐었고, 투자 원금(3800억원)도 건지지 못해게 됐다. 

      반대로 두산은 그룹의 최대 리스크를 지울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수천억원 이상의 자금소요를 막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재무적투자자(FI) 컨소시엄(미래에셋자산운용PE·IMM PE·하나금융투자)이 보유한 DICC 지분 20%를 총 305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19일 체결했다. 인프라코어는 DICC 지분 100%를 확보했고 두산그룹과 현대중공업의 인프라코어 경영권 거래도 최종 마무리 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인프라코어를 8500억원에 인수하며 두산중공업과 약 2000억원 규모의 '면책조항'에 합의했다. 즉 이제 현대중공업 소속이 되는 FI들로부터 인프라코어가 DICC 잔여지분을 되사올때, 현대중공업그룹은 약 2000억원만 부담하고, 나머지 ‘+@’에 대한 대금은 두산중공업이 지불하는 방식이다. 두산중공업은 19일 약 910억원을 부담한다고 공시했다.

      사실 FI들이 DICC 지분에 대해 기대했던 금액은 최대 1조원 수준이었다. 이는 10년 넘게 이어진 투자 기간 동안 원금(3800억원)이 묶이면서 쌓인 이자 때문이다.

      FI컨소시엄은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로부터 3800억원을 투자해 DICC 지분 20%를 확보했는데 기업공개(IPO)와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등을 통한 경영권 매각도 여의치 않자 2015년 두산그룹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두산그룹이, 2심은 FI컨소시엄이 승소했다. 대법원 판결은 파기환송으로 결론나며 현재도 고등법원의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2심 재판부는 ▲FI측 원금(3800억원)에 연 15%의 이자를 더하고 ▲1심~2심 사이의 상사 이자율 6%를 ▲2심 이후 소송총진법상 이자율 15%를 더해 약 7000억원가량을 돌려줘야한다고 판결했다. 2심 판결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경과했기 때문에 이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FI컨소시엄은 최대 1조원까지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올해 초 대법원의 판결이 파기환송 결론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을 결정하며 FI컨소시엄이 보유한 드래그얼롱을 인정했다.

      FI컨소시엄은 곧바로 인프라코어가 갖고 있는 DICC 지분 80%를 포함한 100% 지분의 매각 작업을 준비함과 동시에 파기환송심에 대비, 또 두산그룹과 협상을 진행해 왔다.

      사실 해당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두산그룹이 인프라코어를 매각하며 DICC지분 또한 모두 넘겼기 때문에 DICC의 통매각 작업은 진척되기는 어려웠다. 소송을 이어간다면 또 3년 이상을 끌며 출자자(LP)와 대주단의 동의를 구해야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PEF업계 한 관계자는 “FI가 DICC의 경영권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두산이 인프라코어 경영권을 매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어려운 방안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사모펀드(PEF)는 출자자(LP)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선관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자칫 향후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금을 적게 받거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엔 배임 혐의를 받을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I컨소시엄이 최대 7000억원을 포기하며 소송전을 끝까지 끌고가지 못한 것은 DICC 투자의 대주단의 압박(?)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최초 3800억원의 투자 원금 가운데 1300억원은 산업은행과 전북은행 등으로 구성된 대주단이었다. 산업은행의 대출 금액은 약 3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부터 DICC 지분 인수를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이자 차주(오딘2유한회사)는 대주단에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채무불이행 상태였다. 두산그룹과 소송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대주단은 질권(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종 실행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대주단이 담보권을 실행에 옮겼다면 FI컨소시엄은 지분에 대한 권리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할 여지도, 경영권을 매각할 여지도 사라지게 될 상황이기도 했다.

      PEF 관계자는 “오딘2 유한회사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로 수년 째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채권단 입장에서도 상당히 긴 시간을 기다려 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거래의 모든 당사자와 이해관계에는 산업은행이 있다. 이번 협상에서도 산업은행이 상당히 주효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두산그룹의 주채권은행으로 구조조정을 직접 진행중이다. 산은은 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는 과정을 주도했다. 그리고 인프라코어의 매수자인 현대중공업과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함께 인수전에 참여했다. FI컨소시엄에는 여신을 보유한 대주단이다.

      두산그룹-FI컨소시엄의 실타래를 산은이 푼 것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중재 과정에서 산은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두산과 FI컨소시엄이 최종 협의에 다다른 것은 불과 최근 몇 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고 말했다.

      사실 산은이 FI컨소시엄의 채권 회수를 추진하는 데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평가다. 다만 손익계산서는 명확하다.

      두산그룹에 대한 여신은 수출입은행과 합쳐 총 3조원 규모이다. 소송전이 격화하고 최종 FI컨소시엄이 승소한다면 두산그룹은 최대 8000억원가량의 자금소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두산그룹으로부터 초단기 여신회수를 눈앞에 둔 산업은행으로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반면 FI컨소시엄의 대주단으로서 언제든 담보권을 실행할 수 있다. 대주단으로서 보유한 여신은 총 1300억원인데 이자를 포함하면 약 1800억원 규모다. 두산그룹과 FI컨소시엄 양측이 협상에 성공한다면 이는 충분히 돌려받을 수 있다.

      결론적으론 산업은행은 담보권 실행 없이 여신을 회수했다. 두산그룹의 예상되는 자금소요가 큰폭으로 줄어들면서 3조원 규모의 여신 회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반면 원금손실까지 감수한 FI들의 펀드 수익률에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일단 블라인드펀드  출자자(LP)들의 항의에 대한 뚜렷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수년 간 소송전을 이끌어 왔으나 원금 손실까지 기록한 투자자들의 평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