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M&A 노쇼 사태, 근원은?
입력 2021.08.23 07:00|수정 2021.08.23 12:16
    남양유업, 7월 주총서 M&A 승인하기로 했으나 돌연 연기
    백미당 등 둘러싼 이견 시선…SPA에는 빠진 후 뒤늦게 추가 요구
    매각자 버티면 한앤컴퍼니 거래 이행 강제 가능성이 관건
    • 한앤컴퍼니가 지난달 주주총회를 거쳐 남양유업 인수를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오너 일가는 당사자간 계약 종결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주주총회를 연기했다. 여러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투자업계에서는 남양유업 아이스크림 브랜드 ‘백미당’ 분할 등을 위시한 매각 측의 추가 요구가 이번 논란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홍원식 전 회장 일가가 백미당 브랜드를 위시, 다양한 차원에서 이미 맺어진 M&A계약을 수정하고자 이번 사태가 불거졌을 것이란 지적이다.

      지난 5월 남양유업 오너 일가는 한앤컴퍼니에 경영권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지난달 30일 주주총회서 이를 승인하기로 했지만 돌연 일정을 6주 연기했다. 홍 전 회장은 언론을 통해 '거래 종결 준비가 더 필요하다' 주장했다. 한앤컴퍼니는 주주총회를 불과 하루 앞둔 저녁에 팩스를 한장 보낸 것 이외에는 일절 관련 연락이 없었고,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했다. 시장에선 오너 일가의 단순 변심이라거나, 한앤컴퍼니 이상의 금액을 제시한 투자자가 있을 것이라는 등 설왕설래가 오갔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노쇼(No show)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남양유업의 내부 브랜드 '백미당(百味堂)'이 거론돼 왔다. 오너 일가는 회사를 매각하더라도 백미당 브랜드는 계속 안고 가려 했지만 이런 내용을 계약서에 담지 못했고, 오너 일가는 이를 문제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거래는 김앤장이 오랜 고객인 한앤컴퍼니와 홍원식 전 회장 측을 모두 자문했는데 현재로선 사태 추이를 장담하기 어렵다. 홍 전 회장은 소송에 강점이 있는 '서초동의 김앤장' LKB앤파트너스를 자문사로 선임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백미당은 2014년 남양유업이 론칭한 아이스크림·디저트 카페 브랜드다. 100가지 다양한 맛을 만들어 건강한 식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다. 서울 35곳 포함 80여 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시작으로 주요 백화점과 쇼핑몰 등 입지가 좋은 곳에 점포를 내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다. 여러 논란 이후엔 백미당 브랜드에 남양유업 로고를 노출시키지 않을 정도로 이미지 관리에 신경썼다. 2017년 이후엔 홍콩 등 해외에도 매장을 열었다.

      백미당 브랜드는 남양유업 오너 일가의 애착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홍원식 전 회장의 부인 이운경 여사가 백미당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처음 브랜드 출시 때부터 깊이 관여했고 매장 디자인, 나아가 소품 구입까지 손수 공을 들였다. 일부 매장 소품엔 제품 주문자인 이 여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백미당의 본점격인 '백미당 공방'은 설계에서 공사 완료까지 1년여의 시간을 들이고, 디자인 자재의 종류와 색깔을 최소화하는 등 신중을 기하고 있다. 

      여기에 홍 전 회장의 차남 홍범석 상무도 백미당 브랜드 런칭에 참여했다. 홍 상무는 2009년 회사에 입사한 후 외식사업본부장을 역임하며 백미당 브랜드 출범을 맡았다. 매일유업의 폴바셋(Paul Bassett)과 비슷하다. 올 상반기 남양유업에서 외식사업 등을 포함한 기타 사업부문의 매출 비중은 28.9%에 달한다.

      이러다보니 남양유업 매각 계약이 이뤄진 후 오너 일가가 "주식은 팔았지만 사업은 여전히 우리 것"이란 주장을 펴고 다닌다는 언급이 다수 나왔다. 아울러 백미당 브랜드만큼은 '사모님 사업', 나아가 회사를 팔더라도 지켜야 할 브랜드라는 평가가 나올 상황이다. 오너일가 입장에서도 후퇴하는 유제품에 고집스레 매달리느니 인기를 끈 프리미엄 브랜드를 안고 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에 매각 측은 협상 초기부터 백미당은 따로 떼서 안고 가겠다는 의사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남양유업 M&A 계약서에는 백미당 사업 분할(Carved out) 등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홍 전 회장이 적극적으로 이런 의사를 피력하고 협상에 임했는지, 매각과정에서 계약서에 담도록 주문했는지는 미지수. 자문사가 이를 놓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계약서는 체결됐고 돈과 주식을 교환하면 거래는 끝나고, 당연히 백미당 사업을 분할하고 넘겨 받을 기회도 없어진다. 홍 전 회장의 계산으로는 백미당을 갖고 가지 못하면 ‘거래를 종결할 준비가 미비한 상태’인 셈이고, '사모님 사업'을 지키지 못한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기업 M&A에서 오너 일가 의견 조율 부재로 거래가 엉킨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M&A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화그룹은 갤러리아 백화점, 한화생명 주식, 기타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해 6조원의 인수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이 무렵 갤러리아 백화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부인 서영민 여사가 애착을 가진 사업이었기 때문에 매각이 중단됐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아울러 백미당 브랜드를 별도의 사업 회사로 분할하려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 남양유업 오너 일가로선 사업분할 없이 경영권 변경 안건만 올라간 주주총회를 거치면 백미당을 안을 기회가 사라진다. 이러니 주주총회를 돌연 연기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사업부 분할은 상당한 작업을 수반해야 한다. 해당 사업부를 홍 전 회장 측이 가져간다고 할 경우 어떤 직원은 유력 사모펀드(PEF) 아래로, 다른 이들은 잡음 많은 오너 일가 아래로 소속이 바뀐다. 내부의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당장 주주총회는 열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 측에서 주주총회 일정을 잡아놓고 이제 와서 사전 협의가 미비하다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백미당은 별도 자회사가 아니라 남양유업 외식사업부내의 일개 사업일 뿐이기 때문에 홍 전 회장 일가가 백미당을 계속 가지고 가려고 했다면 어떻게 분할을 하고, 어떤 방법으로 백미당 브랜드를 가져갈 수 있을지 미리 매매계약서에 상세하게 명시했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오너 일가가 그렇게 해당사업에 애착이 많다면 이 부분을 빼먹었을 리가 없는데다, 설상 빼먹었더라도 M&A계약을 이미 체결하고 거래 종결 직전에 이제와서 "계약서에 본인들이 빼먹은 부분이 있으니 다시 협상하자"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오너 일가 역시 자문사를 고용했으니 뒤늦게 주총연기라라는 일방적인 팩스 한장만 보낸 지금의 움직임을 '단순 변심'으로 보고 있다. 

      남양유업은 이에 대해 "대주주 관련 일이라 전혀 알지 못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정이 어떻든 지금 상황은 계약까지 맺어진 M&A가 매도자의 심경 변화로 차질을 빚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승인을 얻고 출자자(LP)들에 캐피탈콜(Capital call)까지 요청해둔 한앤컴퍼니 입장에선 법적 대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계약에서 계약금·보증금 명목으로 금전 등을 지급했다면 매각자는 그 배액 상환, 인수자는 계약금 포기로써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거래 성사가 최우선 목표인 M&A 거래에선 민법 565조(해약금) 적용을 배제한다거나, 계약금 배액 상환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단다.

      이번 M&A에선 계약금도 주고받지 않았으니 배액을 상환하거나 이를 몰취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도 없다.

      한앤컴퍼니가 거래 이행을 강제하거나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결국 소송전이 불가피하다. 거래 대금을 공탁하고 주식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PEF가 3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그렇게 장기간 묶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LP들도 이에 응할리 없다. 손해배상도 손해액의 입증부터 실제 집행 완료까지 난관이 많다. 우리 법원은 거래 비용 등 통상 손해는 인정하지만 그 외의 특별 손해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PEF 운용사로서 평판 하락 위험도 염려된다. 물론 이는 일반론일 뿐 M&A 계약 내용에 따라 실제 대응은 달라질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