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간 OCIO 경쟁 격화...'각자도생'에 중복투자 '비효율'
입력 2021.09.10 07:08
    ‘한 지붕 두 가족’ 같은 계열사 증권∙운용사 OICO 시장 진출 中
    계열사 간 OCIO 경쟁…“그룹 차원에선 손해 보는 싸움 아냐”
    반복되는 경쟁에 중복적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불가피
    계열사 간 조정 필요한데, 논의 없이 너도나도 확장하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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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산운용사가 주도하던 외부위탁운용(OCIO) 시장에 증권사들이 뛰어들면서 같은 계열사인 증권사와 운용사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장애인고용 및 임금채권보장기금(임채기금) 대체투자 주간운용사’ 자리를 두고 맞붙은 KB증권과 KB자산운용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한 지붕 두 가족’의 경쟁이 일상화할 전망이다.

      KB증권은 지난 20일 2000억원 규모의 ‘장애인고용 및 임채기금 대체투자 주간운용사’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KB증권은 나머지 심사를 거쳐 주간운용사로 확정되면 10월 1일부터 2025년 9월 30일까지 4년간 운용하게 된다. 

      특히 이번 주관사 선정에는 KB금융그룹의 계열사인 KB증권과 KB자산운용이 맞붙은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장애인고용 및 임채기금 대체투자 주간운용사’ 자리를 두고 KB증권을 비롯해 NH투자증권, 한국투자신탁운용, 한화자산운용, 멀티에셋자산운용 그리고 KB자산운용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그룹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증권사와 운용사가 OCIO 사업에 진출하면서 ‘한 지붕 두 가족’의 경쟁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OCIO 사업을 하고 있는 운용사와 같은 계열사인 증권사들도 OCIO 시장에 진출하고 있어서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은 OCIO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기금운용팀과 OCIO컨설팅팀을 신설했다. 기존 OCIO솔루션팀은 멀리솔루션본부 산하로 이동시키는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구종회 미래에셋증권 멀티솔루션본부장은 “내년 4월에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가 시행되는 만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시장 선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열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약 3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OCIO 시장점유율 2위 사업자다. 올해 초 연기금투자풀 주간운용사 선정과정에서 일반적인 성과보수보다 현저히 낮은 조건을 제시할 만큼 OCIO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OCIO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NH투자증권과 계열사인 NH-아문디자산운용 역시 최근 OCIO 사업 진출에 착수했다. 지난해 말부터 마케팅부문 내에 OCIO 관련 TF를 구성하고 외부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은 증권사 중에서 가장 많은 트랙레코드를 쌓은 곳이다. NH투자증권은 20조원 규모의 주택도시기금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성과보상기금(1조3000억원)의 운용을 맡아 증권사 중에서는 최대 규모의 OCIO 자금을 맡고 있다.

      이외에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이 OCIO 사업 진출을 검토하거나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어 같은 계열운용사인 삼성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신한자산운용과 맞붙을 전망이다.

      업계는 향후 OCIO 시장이 금투업계의 최대 수익창출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중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통과되면 이 시장이 10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특히 내년 4월 시행되는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 제도가 자리를 잘 잡게 될 경우 OCIO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많은 증권사와 운용사들이 OCIO 시장에 진출하고 있지만 운용보수가 워낙낮아 조직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며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등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시장을 미리 선점해 밀리지 않기 위해 작은 운용규모라도 사업을 따내려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계열사 간의 경쟁구도가 전체 그룹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OCIO 사업 담당 운용사 관계자는 “그룹 입장에서 보면 증권사와 운용사가 오픈된 RFT(입찰 제안 요청서)에 참여하는 게 확률이 두 배가 되는 거니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룹 차원의 계열사 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계열사끼리 같은 사업에 붙어서 번갈아 가면서 골고루 따면 좋은데 계속 비용만 투입되고 결과가 썩 좋지 않다면 비용이 중복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두 계열사가 참여하거나 이 사업은 증권사가, 저 사업은 운용사가 참여하라는 식으로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업계의 분위기는 그룹차원의 안배보다는 자사의 경쟁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계열사 간 논의 없이 각자도생으로 OCIO 사업을 확장하는 분위기다. 

      OCIO 사업 담당 한 관계자는 “최근 같은 계열사에서 OCIO 사업에 진출한다고 했는데, 사업영역을 어떻게 분담하고 나눌지 아직 교류는 없다”며 “이제 너도나도 뛰어드는 단계다보니 계열사끼리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는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