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버리고 '수소'로 뭉친 재계…수익 확보 갈길 먼데, 연속성 관건
입력 2021.09.16 07:00
    빨라진 탄소중립 시계…대안은 '수소', 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 필요
    독자 대응 불가, '동맹' 구축해 인프라 투자…완성도·효율 높아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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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움직임에 국내 대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졌다. 국회에서 탄소중립 기본법이 통과하자 주요 그룹이 수소 에너지를 중심으로 연합체를 구성했고, 곧바로 43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는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겠단 취지로 해석된다. 

      탄소중립 대전제 아래 기업들은 사업 재편, 신사업 발굴에 속도를 내지만 수익성 확보까진 여전히 변수가 많다는 평가다. 정부 차원 ‘수소 경제 활성화’, ‘그린뉴딜’ 정책으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도 정책의 연속성과 기업의 사업 재편 움직임이 합을 맞춰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단 지적도 있다. 

    • 국내 10대 그룹을 포함한 15개 회원사는 이달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을 발족했다.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수소 동맹을 결성해 투자금 마련부터 기술 확보까지 수소 생태계 조성 전반에서 협력에 나선다. 현대자동차·SK·포스코·한화·효성 등 5개 그룹은 2030년까지 수소 사업에만 43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국내 기업의 주요 수출 시장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EU는 기존 예상보다 가파른 감축 계획(NDC)를 내놓고 탄소국경조정제도(CABM) 도입을 공식화했다. 한국 역시 지난 8월 국회가 탄소중립 기본법을 통과시키며 14번째로 대열에 합류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기업의 경우 독자적 대처가 불가능한 속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업의 탄소 배출 비용은 폭증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자동차·발전·화학·철강 업종으로선 수소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수소에너지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수소 에너지가 기존 에너지 산업의 밸류체인 전 과정에 비해 여전히 비싸고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결국 수소 가격을 낮추는 게 관건이다. 

      국내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환경 보호 목적의 규제 강화를 넘어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관세장벽 역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불확실성이 너무 높아진 상황”이라며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활용까지 전 과정에서 기술 개발과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하는데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이 불가하기 때문에 동맹을 구성하고 비용을 분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43조4000억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 중 상당 부분은 SK와 현대차, 포스코그룹의 몫이다. SK그룹은 18조5000억원을, 현대차그룹은 11조1000억원을, 포스코는 10조원을 투입한다.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을수록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모습이다.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도로교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11.9%, 철강과 석유화학은 각각 7.2%, 3.6%로 세 그룹의 주력 사업과 일치한다.

      협의체 출범 이전부터 주요 그룹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수소 밸류체인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이 쏟아졌지만 좁혀 들어가면 한계가 명확했다. 그렇기에 이번 동맹체 결성을 통해 국내에 수소 밸류체인이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연료전지와 모빌리티 등 수소 에너지 활용처에서 가장 앞서 있다. 단기적으로는 현대제철의 부생수소를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대량 생산·공급에는 적합하지 않는 평가다. 더군다나 부생수소가 수소 에너지의 가장 초기 단계인 '그레이 수소'로 분류되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량 절감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SK그룹은 국내 1위 천연가스(LNG) 사업을 보유한 SK E&S를 중심으로 국내 블루수소 대량 생산과 공급을 맡게 된다. 블루수소는 탄소 배출량이 제로에 가까운 그린수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현재 LNG 자원에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이 각광을 받고 있다. 포스코그룹 역시 암모니아를 활용한 그린 수소 대량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에 각 그룹이 보유한 전국의 충전소 부지와 물류망을 활용해 수소의 저장과 운송 전반에서 협력할 경우 투자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평이다. 이 과정에서 탄소 비용이 불어나는 과거 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새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관측된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수소 에너지는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경제성 확보가 불가능한데 규제 리스크가 급증하며 다른 기업들도 수소 에너지를 중심으로 사업적 기회를 모색하게 됐다"라며 "특히 수소 비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현대차그룹 입장으로선 각국 정부의 환경 규제가 오히려 수소 사업 확장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의 협의체 구성과 공동 대응에도 불구하고 2030년 이전 수익성을 확보하고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할 수 있을지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수소 위원회에서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보고서에 기반해 “수소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선 2030년까지 주요 지역에서 700억달러(원화 약 82조원) 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각국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돼야 달성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 과정에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일부 전환도 필요하다. 같은 수소 에너지라 하더라도 발전원이 신재생에너지가 아닐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온전히 떨어뜨리는 데 한계가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기업의 경우 운송, 저장, 수소 모빌리티 등이 메인인데 수급은 이제 막 블루수소 생산을 준비하는 차원인 데다 워낙 계획이 장기적이고 방대해서 당장 평가가 어렵다"라며 "결국에는 수입을 해서라도 신재생에너지와 여전히 개발 단계인 전기분해 기술을 활용해 그린수소를 써야 하는데 이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수소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 계획이 지속될 지도 아직은 장담하기 이르다. ‘그린뉴딜’을 비롯한 현 정부의 국책과제가 영속하고, 기업들의 인프라 구축과 세재혜택, 보조금 지원 등 다각적인 이뤄지기 위해선 현 정부의 지속과 상관없이 작동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단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