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전방위 자금 조달에 자본시장 피로감도 점점 누적
입력 2021.09.23 07:00
    Weekly Invest
    ‘파이낸셜 스토리’ 화두에 전 계열사 경쟁적 자금 유치
    경험·전문성 쌓이며 깐깐해져…애먹는 거래도 늘어나
    “품 많이 드는 채권성 투자” “예전엔 순박했는데”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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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의 자금 조달 행보가 올해 내내 분주하게 이어지며 자본시장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성을 가지고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점에선 높은 평가를 받지만, 워낙 협상이 깐깐하고 전선도 넓혀둔 터라 모든 계획이 순탄하게 마무리되지는 않는 모습이다.

      SK그룹은 작년 10월 ‘파이낸셜 스토리’를 화두로 던졌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미래 성장산업을 키워 기업가치를 끌어올리자는 것인데, 그룹이 요구하는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빠르니 계열사들의 자본시장 활용 움직임도 숨 가빴다. 지분 매각, 재무적투자자(FI) 유치, 상장 등 ‘자본’을 활용한 거래가 줄이었다.

      SK그룹 계열사의 자본시장 활용 전략은 주요 그룹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데, 시장에서는 피로감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경험과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거래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SK그룹이 너무 조건을 재거나 시간을 끈 거래, 기업가치 접점을 찾지 못한 거래는 차질을 빚거나 무산되기도 했다. SK와 연을 맺은 사모펀드(PEF)가 워낙 많으니 웬만한 전략과 네트워크, 자금 조달력이 아니고선 파트너로 낙점받기 어려웠다. 

      SK에코플랜트는 에코엔지니어링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신설법인 지분 50%+1주를 PEF에 매각하는 안을 추진 중인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단위에 달하는 미상환 회사채 채권자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선데, 회사가 수익률 보장에 박했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SK그룹과 거래한 경험이 있는 PEF 운용사 여러 곳이 관심을 보였으나, 기대 수익률이 그리 높지 않자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지오센트릭(전 SK종합화학) 지분 49% 매각을 추진해왔는데, 최근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과 달리 흥행이 저조했고, 원매자들이 제시한 몸값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을 살펴 연내 매각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있지만, 임원 인사를 전후해서 움직이기는 부담스럽다. 한 번에 성사되지 않은 거래는 성사 허들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은 차일피일 미뤄진 끝에 IMM PE가 승리했다. 매각자는 회사 상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5.7%의 수익률을 보장하기로 했는데, 성장성이 크지 않은 업이다 보니 상장 전망은 불투명하다. IMM PE는 매각자가 보유한 지분까지 매각할 권리(Drag along)를 확보했는데, 그 경우 매각 후 먼저 챙겨갈 수 있는 금액이 IRR(내부수익률) 2.5% 수준이라 실효성이 없다. 투자금 소진을 위한 대출성 거래를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올해 증시에 입성해 승승장구했다. 작년 10월 3000억원 규모 상장전투자(pre IPO)를 집행한 프리미어파트너스도 큰 성과를 거뒀는데, 투자 과정은 쉽지 않았다. SK그룹 전사적으로 달라붙었던 거래라 프리미어파트너스도 SK로 들어가 꼬박 몇 달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거래는 성사됐지만, 보통 소수지분 투자와 달리 최소 수익 보장 조건은 얻어내지 못했다. 워낙 유망 산업이라 실패할 위험은 크지 않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SK㈜와 SK E&S의 플러그파워 투자 유치도 쉽지 않았다. 플러그파워 지분을 인수하고 주가가 급등한 후에야 투자금 절반을 조달하려 하니 시장의 호응이 미지근했다. 이후 회계 문제 등으로 주가가 떨어지자 다시 시장에 내놓는 안을 검토했는데 결국 실행하지 않았다. 잠재 투자자 사이에선 ‘한 번 손을 탄 거래다 보니 투자하기 쉽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다.

      SK E&S의 투자 유치도 투자자의 고민이 많을 거래로 꼽힌다. 회사의 미래 전략에서 도시가스의 중요성이 크지는 않지만, 당장 캐시카우를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선택지를 투자자들에 넘겨준 형국이다. 형식은 우선주 인수지만 투자자들은 회수기에 도시가스 자회사를 인수할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투자자가 도시가스만 보고 우선주를 인수한다면 SK E&S의 성장 산업의 과실은 누리기 어렵고, 5년 후 시장 변화에 대한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SK E&S는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부산도시가스 상장폐지를 추진 중이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SK E&S 투자유치 등 SK그룹 거래는 채권형 대체투자 구조로 유동성장을 잘 활용하고 있다”면서도 “채권 투자라면 하루만에 집행할 수 있는데 대체투자는 실사부터 심의까지 오랜 시간이 들어가니 기관 입장에선 힘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SK배터리 투자도 품이 많이 들 거래로 꼽힌다. 회사는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상장 전까지도 대규모 신규 투자가 필요한만큼 국내외 대형 PEF들은 상장전투자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다만 상장전투자 유치에 나서려면 여론이 납득할만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그만큼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몰릴 유망 산업이니 SK아이이테크놀로지 때와 같이 회수 안전장치를 얻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SK그룹 계열사들이 예전에는 ‘순박’했지만 이제는 경험과 전문성이 쌓이면서 협상이 늘어지고 조건도 박해지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SK’라는 글자가 가장 앞서 있고 유동성도 많으니 PEF 입장에서는 SK그룹을 찾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