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불거진 '규제' 리스크…K엔터에 중국은 영원한 계륵?
입력 2021.09.23 10:42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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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국이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문화를 금지한 조치) 이후 또다시 전면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 통제에 나섰다. 지난달 말 중국 공산당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무질서한 팬덤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온라인 팬클럽 단속에 나선다고 밝혔다. 연예인 모금 팬클럽 해산, 연예인 인기 차트 발표 금지, 음원 중복 구매 금지 등을 포함한 10가지 방안으로 규정했다. 

      중국 당국은 곧바로 ‘비이성적인 스타 추종 행위’에 압박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모금으로 방탄소년단(BTS) 지민의 사진이 붙은 항공기를 띄운 팬클럽이 60일간 웨이보 활동을 금지 당했다. 이어 BTS, 엑소(EXO), 블랙핑크, NCT, 아이유, 태연 등 K팝 팬덤 계정 21여개가 30일간 이용 중지 조치됐다. 트와이스의 쯔위 웨이보 팬클럽은 ‘bar(팬모임)’를 떼라는 지시를 받고 계정명을 수정했다. 중국의 최대 음악플랫폼 QQ뮤직은 한 명의 이용자가 음원을 중복으로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꽤 강력한 조치들이다. 팬덤을 규제하는건 아이돌 산업의 핵심을 건드리는 셈이다. 중국 당국은 심지어 아이돌의 외관까지 규제에 나섰다. ‘예쁜 외모의 남자’, 소위 ‘냥파오(娘炮)’로 불리는 남자 아이돌에 대한 팬덤을 제지하겠다는 것. 예쁜 외모(?)를 명확한 기준으로 나눌 수 없단 점을 고려하면, 결국은 당국 ‘입맛대로’ 대중문화를 휘두르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의 고강도 규제에 당연히 K팝 시장도 긴장하고 있다. 한국 아이돌 팬덤에 대한 규제가 K팝에 대한 추가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중국의 한 관영매체는 “중국의 스타 추종 문화는 한국이 근원이며, 당국의 연예계 정화 캠페인에서 한국 스타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한국 아이돌 팬클럽이 관련 조치의 대상이 될 것이란 신호”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외 실적 악영향에 대한 우려는 주가에 반영됐다. 중국 정부의 발표 직후 일주일간(8월 31일~9월 7일) 국내 대표 엔터4사(하이브·SM엔터·JYP엔터·YG엔터) 주가가 일제히 2~6%가량 하락했다. 하이브는 9월 초에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10일 장중 한때 9%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우선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시행된 한한령 이후 국내 엔터사들이 이미 중국 의존도를 낮춰왔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내 엔터사들은 한한령 이후 중국의 오프라인 콘서트, 한국 아이돌의 중국 내 광고 활동 등이 금지됐기 때문에 직접적인 중국 사업을 축소해왔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상반기 엔터4사 매출액에서 중국의 음반 매출액이 차지한 비중이 평균 2%에 불과했다”며 “중국이 없어진 동안 국내 엔터사들은 세계를 얻었고 K팝 팬덤 확대와 수익 모델 확장에 문제가 없을 걸로 보여 조정을 기회로 비중확대를 추천한다”고 판단했다. 

      K팝 시장에서 중국의 규제 리스크는 상수가 된 지 오래다. 과거 2016~2017년 한한령으로 국내 엔터주는 크게 하락했다. 엔터주는 ‘싼 적이 없는’ 섹터인데, 이벤트로 엔터 섹터가 주가가 무더기로 조정을 받은 건 중국의 한한령과 2019년 일본과의 무역분쟁 심화 정도다. 이후 중국과 외교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반복됐지만 의미 있는 진전은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중화권 매출이 낮다는 이유로 영향이 미미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중국이 K-엔터 산업과 여러 측면에서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점, 규제의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고 추후 확장될 수 있단 가능성을 고려해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정통한 한 IB업계 관계자는 “한국 엔터산업은 중국을 버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K팝 시장 다변화가 이뤄진건 맞지만 중국 시장 자체가 크기 때문에 타격이 없을 수 없다”며 “아이돌 산업에선 중국 네트워크가 음원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 K팝 산업에 중국 시장은 ‘완전히’ 포기하기엔 너무 크다. 과거 빅뱅의 전성기였던 2016년, YG의 중국 매출이 720억원에 달해 영업이익 300억원이라는 당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재 하이브를 포함해 국내 주요 엔터사들이 지역별 매출에서 ‘중국’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는 등 ‘중국 지우기’를 하고 있지만, 직·간접적인 중국향 사업 비중은 여전히 크다. 

      음악시장 성장 속도도 글로벌에서 가장 빠르다. PwC에 따르면 2018년~2023년(추정) 중국의 음악시장 규모 단순연평균성장률(CAGR)은 11.4%에 이른다. 미국이 5.0%, 일본이 0.1%다. 한국은 3.8% 수준이다. 

      팬덤의 규모와 영향력도 압도적이다. 중국 팬덤은 거액의 모금을 진행하거나 앨범·음원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큰 손’이다. 그 활동이 저지되면 아이돌로서는 타격이 크다. 최근 아이즈원(IZ*ONE) 멤버였던 장원영의 중국 팬들은 장원영의 ‘생일 선물’을 위해 무려 4억원을 모금했다. 팬덤의 활동 자체가 아티스트의 가치를 결정하고, 수익과 연결되는 아이돌 산업의 생태계를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다.

      한한령으로 활동이 제한되긴 했지만 국내 엔터사들은 꾸준히 중국 시장을 노려왔다. 최근까지도 국내 엔터사들은 아이돌 그룹에 중화권 멤버를 포함시키며 중국 시장을 의식해왔다. 대형사들은 오히려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기도 했다. 2018년 9월 JYP엔터는 중국 텐센트그룹과 JV를 맺고 전원 중국인 멤버로 구성된 ‘보이스토리’를 출범했다. 2019년 초 SM엔터는 중국인 멤버로만 구성된 웨이션브이(威神V, WayV)를 중국에서 공개했다. 

      중국인 멤버를 포함한 그룹을 보유한 회사들은 이번 규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에서 데뷔해 활동하고 있는 중국 출신 아이돌 멤버들에 대한 추가 규제가 나온다면 팀 활동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재 중국인을 포함한 팀을 구상 중인 경우에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중국인 멤버는 K팝 아이돌 시장에서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가 2014년 엑소(EXO)의 중국인 멤버들과 연이어 계약 파기를 겪었던 사건이 시발점이다. 다만 SM엔터의 이수만 대표는 뒤통수(?) 이후에도 중국 시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꾸준히 중국 대륙에서 오디션을 벌였고, NCT와 최근의 에스파까지 중국 멤버들을 포함시켰다. 반대로 타 엔터사들은 SM엔터 사태의 교훈과 한한령까지 겹치면서 전략 수정에 나섰다. YG는 일본, 동남아에 집중했다. JYP도 일본인 멤버를 포함한 트와이스, 전원 한국인인 스트레이키즈를 내놨다. 

      다수의 중국인 인기 K팝 아이돌들이 중국 활동을 늘리며 자연스러운 탈퇴나 그룹 해체를 겪었고, 이에 중국인 멤버는 ‘인기를 얻으면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멤버’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BTS의 ‘초대박’을 가능하게 한 요인 중 하나로 전원 한국인 멤버인 점이 꼽히기도 한다. 아이돌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역사·외교적 마찰에서 대응하기 용이하고, 소위 ‘애국심’을 고취하는 활동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걸그룹 1위 블랙핑크에도 태국 출신 리사가 있지만 그 외는 전부 한국인이다. 

      여러 대형 엔터사를 대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중국인 멤버의 ‘도망’을 방지할 방법도 없고, 중국에 가버리면 계약 자체가 실행이 안되니 어차피 실효성이 없다. 한마디로 법이 안통하는 셈”이라며 “전체 팬덤도 있지만 개인의 팬덤이 날라가는 것이고,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면 일종의 완결성이 떨어지니까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현재 수준으로는 이번 규제로 K팝에 어떤 영향이 추가적으로 있을지 예단하긴 어렵다. 후속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의 움직임을 살펴봐야 한다. 아직은 온라인 플랫폼 위주 규제가 진행됐다.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 규모는 매력적이지만 불가항력인 정책에 대응할 수도 없는 ‘계륵’이라 한국 회사들이 끙끙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중국의 규제가 미칠 영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이 들은 답변은 결국 “잘 모르겠다”였다. 중국은 오랜 기간 엔터업을 봐온 관계자들도 ‘잘 모르겠는’, 즉 ‘불확실한’ 상대다. 확실한 건 시장은 불확성을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