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에서도 '자산 경량화' 전략 색채 짙어진 롯데그룹
입력 2021.09.30 07:00
    확장 전략 펴왔지만 최근 수년새 부진으로 주춤
    유통·호텔 자산 경량화 추세…M&A도 단순 투자 늘어
    노동 문제·변동성 부담 줄어…그룹 M&A 역량도 약화
    위험 줄이면서 이익 향유…당분간 지분 투자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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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은 지난 수년간 부진을 겪은 유통 및 호텔사업의 자산을 유동화해 왔다. 성장성이 꺾이고 변동성은 커진 시기에 고정비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인데, 최근엔 M&A에서도 이 같은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한번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 경영권을 쥐는 것보다는 일단 소규모 지분투자로 경험을 쌓아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롯데그룹은 롯데제과와 롯데알미늄 설립으로 시작해 기업 인수로 사세를 확장해왔다. 2010년대 들어서도 확장세는 거침이 없었는데 삼성그룹과의 빅딜, 롯데렌탈(전 KT렌탈) 인수 등을 거치며 2014년 74곳이던 계열사가 2018년엔 107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하며 그룹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 유통업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수년째 부진이 이어졌다.

      국내외로 확장하던 롯데그룹의 전략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업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이 큰 자산들을 안고 가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판단했다. ‘부동산 부자’ 롯데는 부동산과 매장 점포를 내놓는 등 자산 경량화(Asset light) 전략을 적극 폈다. 시장 성숙기나 정체기엔 부동산 자산을 안고 가는 것보다 유동화해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신성장 동력에 투자할 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9년 롯데리츠 상장도 그 일환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통산업은 성장기까지는 자산을 직접 보유하면 레버리지 효과가 좋지만, 성숙기에 접어들면 고정 자산에 대한 비용이 커지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떨어진다”며 “롯데그룹은 상당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매각하면 고정비 부담을 줄고 신성장동력 투자 여력은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M&A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경영권 인수(buy out)에 집중하는 전략을 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은 주축 사업들이 타격을 입으며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도 컸다. 최근 들어선 경영권 인수보다 사모펀드(PEF) 옆에서 단순 투자자로 참여하는 사례가 잦았다.

      이달 롯데쇼핑은 IMM PE가 한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꾸리는 PEF에 2595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롯데하이마트도 PEF 출자자(LP)로 참여해 500억원을 댄다고 밝혔다. 빅딜로 인수한 삼성SDI의 케미컬 사업부는 인조대리석 관련 사업을 했어서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한샘 제품을 롯데하이마트에서 판매하고, 롯데건설 사업장에서 활용하는 전략도 기대할 만하다.

      롯데그룹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 강화에 공을 들였지만, 롯데온이 부진하고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성과가 많지 않았다. 롯데쇼핑은 상반기 PEF 컨소시엄의 중고나라 인수전에 참여해 수백억원을 출자했다. 중고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재무적 투자를 집행했다.

      작년엔 롯데정밀화학이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의 두산솔루스 인수에 투자자로 참여해 2900억원을 출자했다.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소재 산업 강화를 꾀했지만 속도는 더뎠다. 두산솔루스 투자에선 우선매수권 등 별다른 특권은 없음에도 기회를 잡는 데 우선했다.

      소수지분 투자는 경영권 인수에 비해 당장의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 그러나 적은 비용으로 사업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신사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

      기업 인수에 부수되는 노동 문제, 경기 변동 등에 대한 부담은 PEF가 진다. 감수할 ‘고정적 비용’이 줄어드는 셈이다. 물론 우선매수권이 없으면 말 그대로 단순 투자에 그칠 위험이 있지만, 그만큼 회사 상황을 살필 수 있으니 인수전에서 보다 명확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다른 잠재적 경쟁자보다 인수 가능성이 커진다.

      롯데그룹의 M&A 역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M&A 수장격이던 황각규 부회장이 오랜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작년에 물러났고, 전담 조직도 뿔뿔이 흩어졌다. 임원 인사가 점차 잦아지니 장기 비전을 가지고 경영권 인수 거래에 나서기 조심스럽다. 당장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훗날을 도모할 여지를 남기는 식의 투자 거래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그룹의 명운을 건 거래로 거론됐지만 처음 제시한 금액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무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줬다. 최근 한 계열사는 다른 그룹에서 내놓은 사업부 인수에 관심을 보였으나, 그룹 차원의 지원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순 검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인수 후 고정비 부담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한창 때는 경영권 인수에 집중했으나 팬데믹 이후엔 굳이 지금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도 있다”며 “앞으로도 위험 부담을 줄이고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지분투자, 조인트벤처, 아웃소싱 등 전략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