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에 ‘불공정’ 했나
입력 2021.10.08 07:09
    Invest Column
    오징어게임 글로벌 흥행 속
    수익 분배 문제 '불공정' 이슈
    넷플릭스 투자 방식 차이
    국내 콘텐츠 제작 긍정적 면도
    노동차 처우 개선 더 신경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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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 사업가가 사업 아이템 하나를 떠올렸다. 이걸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만 하면 대박이 날 것 같다. 그의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문제는 사업가에게 당장 재료도 살 ‘쩐(錢)’이 없다는 것. 사업가는 투자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타깃이 불분명하고 아이템 자체도 꽤 난해했다. 사업 추진을 포기하려고 할 때 ‘천사’처럼 한 투자자가 등장했다.

      투자자는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생산비와 마케팅비를 대주고 판로도 확보해주기로 했다. ‘적정’ 수준의 수익도 보장해주기로 했다. 대신 대박이 나면 그 수익은 투자자가 갖기로 했다. 사업이 대박이 날지 쪽박을 찰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사업가는 이 계약 조건을 받아들였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사업가는 리스크를 하나도 지지 않는 상태에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챙길 수 있었고, 투자자는 리스크가 큰 투자를 했지만 대박의 과실(果實)을 상당 부분 챙길 수 있었다.

      사업가와 투자자의 관계가 불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얘길 콘텐츠 투자에 적용해보자.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내에선 넷플릭스의 불공정 논란이 제기됐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될 정도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콘텐츠 제작사는 아무리 유명한 드라마를 만들어도 일정 수익 이상을 거둘 수 없다”며 “일정 부분 외주제작사의 지적재산권을 보장하는 등 상생 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넷플릭스와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익 대부분은 ‘설계자’인 넷플릭스가 가져가고, ‘말(馬)’인 국내 콘텐츠 제작사의 몫은 제한적이라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투자 방식은 기존 콘텐츠 업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넷플릭스는 사전 투자를 통해 제작비를 지급하고 제작사가 콘텐츠를 생산한다. 제작사는 흥행 실패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대신 판권과 저작권 등은 넷플릭스가 가져간다. 소위 대박이 나더라도 콘텐츠 회사가 추가적인 수익을 거두긴 어려운 구조다.

      누군가에겐 불공정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넷플릭스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또 그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정, 불공정 이슈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넷플릭스가 마련한 대담 자리에서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킹덤'은 없었을 것이다"라며 "수위부터 제작비까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넷플릭스가 흔쾌히 오케이 할지 몰랐다. 많은 지원을 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또 윤신애 제작자는 "'인간수업' 대본이 정말 좋았지만 넷플릭스 밖에 방법이 없었다.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시작 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을 보내줬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국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눈에 거슬리는 PPL이나 극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 섭외, 뻔하디 뻔한 극 전개, 여기에 돈을 ‘넣어주시는’ 투자자들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는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들은 바가 있다.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해서 지금 같은 글로벌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국내 인기 역시 외국에서의 인기가 역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징어게임이 여타 작품들과 비교하면 투입 제작비에 비해 가성비가 매우 높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만 결과론적인 분석이다.

      코로나 이후 콘텐츠 시장의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가 대세가 됐고 국내외 OTT의 전쟁이 시작됐다.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이 한국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여기에 HBO맥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까지 가세하게 되면 콘텐츠 시장의 수익 구조 변화 역시 빠르게 바뀔 수밖에 없다.

      과거 콘텐츠 투자자들은 흥행이 될만한 배우, 감독, 작품에 투자를 해 “하나만 걸려라” 하는 ‘로또’식 투자였다면 이제는 글로벌 대형 OTT가 수많은 콘텐츠에 투자를 하고 그 중에서 ‘유니콘’을 발굴하는 벤처캐피탈(VC) 방식이 대세가 됐다. 

      시장 구조가 바뀌었다면 공정과 불공정의 대상도 바뀌는 게 맞다. 넷플릭스의 세금 회피 의혹과 망 이용대가 지급을 둘러싼 논란은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공정’ 이슈다. 특히 OTT 중심의 콘텐츠 시장에선 노동 환경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OTT 플랫폼 산업 규모가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데 반해 노동자 처우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미국 할리우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28년 만에 파업을 결의한 배경도 이 때문이다. 매출 성장이 더뎌진 넷플릭스 등 대형 OTT들이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A급’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막대한 급여를 지급하면서 스태프 임금 등에서 비용 절감을 꾀해 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감을 지켜본 한 콘텐츠 제작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동안 콘텐츠 제작 환경에 관심도 없었던 국회가 오징어게임 흥행에 숟가락을 올릴려고 한다. 넷플릭스라는 외국 회사를 혼쭐내면 여론의 지지를 받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은데 겉만 핥는 정치쇼를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