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돈은 안 되는데"...보험社 디지털 전환 '갈팡질팡'
입력 2021.10.18 07:00
    수입보험료 기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판매채널보다 계약심사나 상품 개발 쪽으로 디지털화
    • 보험사들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파도 앞에서 갈팡질팡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지만, 당장은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고 업계에 영향을 미칠만한 수준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앞서 출범한 디지털손보사의 지지부진한 실적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캐롯손해보험(이하 캐롯손보)과 하나손해보험(이하 하나손보) 등 국내 주요 디지털 손보사들은 여전히 의미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캐롯손보는 출범 첫 해인 2019년에 91억원 수준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손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순손실 규모는 266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순손실 381억 원의 69.8%에 해당한다.

      하나손보는 올해 상반기 5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다만, 하나금융지주는 더케이손보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한 지난해 상반기 이후 실적 발표에서 하나손보 인수 성과를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나손보 인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방증이란 분석이 증권가에서 제기된다.

      디지털 손보사의 경우 가격 경쟁력이 최대 무기인 만큼 보험료 인상을 통한 손해율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상품을 다양화해 손해율을 개선시키자는 원론적인 방법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보험사가 수입보험료 기반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모델이 나온 것도 아니고,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돈을 벌어야지 회사가 유지되고 성장하니까 수입보험료 기반의 모델을 포기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1개 손해보험사의 초회보험료는 49조5113억원으로 이 중 대면 모집을 통해 발생한 보험료는 85.4%(42조2634억원) 비중이었다. 같은 기간 생명보험사 24곳이 설계사를 통한 대면 영업 방식으로 벌어들인 보험료는 7조7079억원으로 전체 초회보험료 7조7815억원 중 99.1%를 차지했다.

      신평사 관계자는 “보험업 경우 설계사를 통한 판매가 불가피한데, 이것이 보험산업의 디지털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36개 생명·손해보험사 소속 전속 설계사는 모두 19만 7418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18만 4499명)보다 7%(1만 2919명) 늘었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2016년(19만 5435명)과 2017년(18만 7669명), 2018년(17만 5777명)까지 전속 설계사가 지속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19년과 2020년 들어 증가세로 전환됐다.

      이런 수치들은 디지털 전환이 모든 보험사의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되는지 미지수라는 평가를 낳게 하고 있다. 회사마다 편차도 심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디지털이 뭐야?’ 생각하는 CEO가 많았다. 지금은 인식이 달라져 시장 변화의 가능성은 커졌으나, 공염불에 그치는 회사도 많다”라고 말했다. “어느 회사가 무슨 투자를 했으며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보험사는 여전히 성장이 정체된 보험시장에서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 보험연구원에서 발표된 ‘2021년 보험회사 CEO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우선순위를 두는 분야는 디지털 전환(26.1%), 판매채널 경쟁력 확보(24.8%) 순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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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삼정KPMG)

      그러나 보험사의 디지털 판매채널은 금소법 영향으로 당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전망이 나온다. 지난 7일 금융당국이 금융플랫폼 서비스의 금융상품 추천·비교 서비스를 ‘광고’가 아니라 ‘중개’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언더라이팅이나 상품 개발쪽으로 디지털화가 이뤄질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화가 되면 보험 가입 설계도 장기적으로 비대면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존 보험 계약처럼 정형화된 보험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계약이나 특약을 선택하는 보험이 출시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한 고객이 간암은 걸릴 것 같은데 위암은 안 걸릴 것 같다는 건강 데이터를 받아보게 되면 간암 보험만 가입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보험사의 디지털화는 판매·보상 중심에서 언더라이팅쪽에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