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벌었지만…출구전략 막막한 대우조선 M&A
입력 2021.10.22 07:00
    EU 기업결합 승인 회의적
    産銀, 대안 찾기 쉽지 않아
    출자 전환 등 재매각 시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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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우조선해양 M&A 성사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연말까지 시간은 벌었지만 이제와서 유럽연합(EU)을 설득할 묘수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글로벌 1, 2위 조선사를 합치겠다고 벌인 일이 무산되면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당장의 책임론에 더해 계속 대우조선해양을 안아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완전한 민간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찾을 시기가 또 미뤄지게 됐다. 누적된 채권단의 지원 부담을 감안하면 다음 주인 찾기 작업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2월 대우조선해양 M&A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각국 기업결합 심사 절차에 들어갔는데 핵심 시장인 EU의 벽이 높았다. 작년 6월 중간 발표를 냈지만 이후 심사는 지지부진했다. 절차가 늦어지자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계약 기간을 거듭 연장했다. 지난달에도 계약 종결 기한을 올해 말까지로 3개월 늘렸다.

      시장에선 사실상 거래 무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U가 공식적으로 최종 결정문을 내지 않았을 뿐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됐다는 것이다. 당사자들도 자문사를 통해 EU의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대우조선해양 M&A에서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운반선 독점 문제를 가장 집중적으로 살폈다. 원래도 한국 조선사의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이 높은 영역인데 올해 발주 물량도 싹쓸이하다시피 하니, EU 입장에선 선가 상승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은 친환경 선박 시장에 직접 진출하려는 의지도 강한 상황이라, 처음부터 거대 독점 조선소의 탄생을 반기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EU에 다양한 독과점 해소 방안을 제출했지만 설득이 쉽지 않았다. 해외 경쟁 선사에 LNG운반선 관련 기술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EU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LNG운반선 건조 사업을 대폭 줄이거나, 그룹 조선 계열사를 파는 것처럼 ‘극단적인’ 카드를 꺼낼 수도 없다.

      사정이 이러니 3개월의 기한 연장도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의 도움을 받아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틀을 짰으니 마지막까지 노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포기하기엔 기회비용이 크기도 하다. 한편으론 국정감사, 대선 후보 결정 등 민감한 시기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을 미뤄놨을 뿐이란 시선도 있다.

      대우조선해양 M&A 무산 시 대책 마련도 중요해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5일 국정감사에서 “매각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공식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내부적으로는 거래 무산 시 대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지 오래로 전해진다.

      거래 관계자들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은행은 거래를 추진하며 성공 가능성은 절반 이상이며, 컨테이너선의 기업결합 문턱이 높을 것으로 봤는데 오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선 ‘기업결합의 기본도 모르고 거래를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공정위도 2년여간 손을 놓고 있었던 만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의 사업부 분할 매각 방안이 검토됐지만 이는 도크 활용 등 문제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결론이 났다. 거래 무산 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산업은행이 회사를 계속 안고 가다가 최대한 빨리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 것이다.

    • 대우조선해양은 2분기 원자재 인상과 관련해 보수적인 회계처리를 하고, 분쟁 충당금도 쌓으며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당장 현금 흐름엔 큰 영향이 없고 조선업도 호황을 맞은 터라 단기적으로는 큰 위기가 없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그러나 주기를 타는 산업 특성상 장기 전망도 반드시 밝다고 낙관하긴 어렵다. 이미 M&A 불확실성 속에 영업 차질을 빚었는데, 다시 산업은행 품으로 가면 경쟁력이 더 약화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완수에는 관심이 많지만 신규 자금 지원엔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대우조선해양이 다음 매각 때까지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유지한다 해도 새주인을 찾는 것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금융사들은 2016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수조원 규모의 출자전환 및 채무조정을 단행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았으니 회수 기대치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마땅한 다른 원매자가 보이지 않지만, 있더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출입은행은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영구 전환사채(CB)를 갖고 있다. CB 이자율은 올해까지는 1%인데, 내년부터는 같은 신용등급 5년만기 공모 무보증회사채 기준수익률에 0.25%포인트 가산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물론 지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그 때문에 ‘자본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향후 대우조선해양이 ‘배당할 수 있는 기업’이 되면 그간 누적된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생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지금은 대우조선해양이 수출입은행 영구 CB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향후 배당을 하게 되면 이자도 내야 한다”며 “인수하려는 기업은 부담 요소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